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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식당에 무차별 총격 … 3시간 만에 120여 명 희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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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3호 3 면

13일 저녁(현지시간) 테러범들의 총기 난사로 100여 명이 사망한 파리 바타클랑 콘서트홀에서 구조대원들이 총상을 입은 여성을 후송하고 있다. [파리 AP=뉴시스]

13일 저녁(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시내는 즐거운 흥분으로 들썩이고 있었다. 주말의 시작인 금요일 저녁인 데다 프랑스와 독일의 축구대표팀 친선경기가 파리에서 열리기 때문이었다. 그 누구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테러로 파리 전체가 얼룩진 ‘피의 금요일’이 될 줄 상상하지 못했다.


 시작은 파리 시내 레퓌블리크 광장 동쪽 인근 10구의 한 술집이었다. 오후 9시20분쯤 마스크를 쓰지 않은 검은 옷의 괴한 한 명이 차에서 내려 알리베르가의 ‘카리용’ 바에 들어왔다. 그는 들고 있던 AK-47 소총을 손님들을 향해 난사하기 시작했다. 벤 그랜트라는 목격자는 “총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쓰러지자 테이블 밑으로 숨었다”며 “우리 앞에 시신 더미가 쌓여 있어 술집 안에 갇혀 있었다. 너무나 끔찍했다”고 BBC에 전했다. 괴한은 주점을 나와 맞은편의 캄보디아 식당 ‘프티 캉보주’로 들어가 또다시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식당 안에 있던 한 생존자는 “모두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젊은 남자가 소녀를 팔에 안아 옮겼는데 이미 죽어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고 CNN이 전했다. 두 곳에서 모두 14명이 사망했다.


 다음으로 테러범들이 향한 곳은 남쪽 11구 샤론가였다. 9시50분쯤 이곳에 있는 술집 ‘벨 에퀴프’로 들어간 2명의 테러범은 테라스를 향해 총을 난사했다. 한 목격자는 “총질이 3분간 이어졌고 이후 타고 온 차로 돌아가 샤론역 방향으로 향했다”고 말했다. 이후 샤론가의 한 일식점과 퐁텐 오 루아가의 피자가게 등에서도 총격을 가해 2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같은 시간 파리 외곽 생드니의 ‘스타드 드 프랑스’에선 프랑스와 독일 간 친선 축구경기가 진행 중이었다. 전반 19분인 오후 9시 19분 경기장 밖에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축구에 열광하던 경기장 안 관중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TV 중계로 축구 경기를 보던 시청자들도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였다. 경기장에서 축구를 관전하던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누군가에게 보고를 받고는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조용히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경기장에 있던 뱅상이라는 이름의 기자는 “전반전에 큰 폭발음이 두 차례, 작은 폭발음이 한 차례 들리고 하프타임 때 헬기 한 대가 경기장 위를 날아다니기 시작했다”고 프랑스 일간 리베라시옹이 전했다.


 폭발음은 경기장 밖 맥도날드 매장 옆 등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들로 인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테러범 3명과 시민 최소 1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이는 비극의 서막에 불과했다. 파리 11구 볼테르가에 위치한 공연장 바타클랑 콘서트홀에선 미국 록그룹 ‘이글스 오브 데스 메탈(EODM)’이 공연을 벌이고 있었다. 극장의 1500석 좌석은 팬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오후 10시쯤 검은 옷차림의 20대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뒷문을 통해 조용히 극장에 들어왔다. 손에는 AK-47 자동소총으로 보이는 무기가 들려 있었다. 알리베르가와 샤론가에서 테러를 벌인 이들로 추정된다.


 테러범들은 극장 허공에 총을 쏘아대기 시작했고 객석은 관객들이 엎드리며 내지르는 비명으로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한 테러범은 “너희 대통령 올랑드의 잘못이다. 프랑스는 시리아에 개입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외쳤다고 AFP 통신이 목격자를 인용해 전했다. 아랍어로 “신(알라)은 위대하다. 시리아를 위해”라고 외친 테러범도 있었다고 현지 BFM TV가 보도했다.


 이후 2시간30분가량 인질극을 벌이던 테러범들은 0시30분쯤 관객들을 향해 소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콘서트홀 안에 있던 쥘리앵 피에르스는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모두 바닥에 엎드리고 머리를 감쌌지만 테러범들은 아무 말 없이 바닥의 사람들을 10~15분간 쏴댔다. 너무나 끔찍했다”고 BBC에 털어놨다.


 총격범들은 이 와중에 서너 차례 재장전을 했고 피에르스는 이 틈을 타 무대 위로 뛰어올라가 비상구를 통해 탈출했다. 공연장 주변 길바닥에도 20~25명이 총상을 입고 쓰러져 있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총소리를 들은 경찰이 극장 안에 진입하자 용의자 3명은 입고 있던 폭탄 벨트를 터뜨려 자폭했고 1명은 사살됐다.


 이 사건으로 콘서트홀에 있던 80여 명이 숨졌다고 파리 검찰은 밝혔다. 총기 난사 당시 EODM 멤버들이 무대에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밴드 멤버들은 모두 안전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지난 1월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테러 공격을 받은 잡지사 샤를리 에브도 사무실은 바타클랑에서 불과 500m 떨어진 곳에 있다.

테러 발생 후 스타드 드 프랑스에 머물고 있는 관중.

 축구 경기장에서 피신한 올랑드 대통령은 안전지역에 대피했다가 마뉘엘 발스 총리, 베르나르 카즈뇌브 내무장관과 함께 내무부에서 긴급회의를 열었다. 이후 오후 11시 TV 연설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파리에서 일어난 최악의, 전대미문의 테러”라 규정하며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전면 대응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올랑드는 바타클랑 테러 사건이 종결되자 발스 총리 등과 함께 현장을 심야 방문했다.


 14일 날이 밝자 프랑수아 몰랭 파리 검찰청장은 13일 밤 파리 시내 6곳 이상에서 테러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14일 오후 2시 현재 127명이 사망했다. 부상자는 200여 명인데 이 가운데 80명이 중상이어서 사망자는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 폭스뉴스는 바타클랑에서만 118명이 죽고 다른 곳에서도 40명이 숨졌다고 보도하는 등 일부 매체는 이미 사망자가 150명을 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규모로 보면 191명이 사망하고 2000명이 부상한 2004년 스페인 마드리드 열차 테러 이후 유럽에서 발생한 최악의 테러로 기록됐다.


 당국은 바타클랑에서 4명을 비롯, 모두 8명의 테러 용의자가 사망했다고 밝혔다. 아녜스 티보 레퀴브르 파리 검찰청 대변인은 AP통신에 “7명은 자살폭탄을 터뜨려 사망했고 1명은 경찰에 사살됐다”며 “아직 붙잡히지 않은 테러범이 더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테러는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의 소행으로 보인다. IS 공식 선전매체는 이날 아랍어와 프랑스어로 성명을 내 IS 전사들이 프랑스 수도의 여러 곳을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올랑드 대통령도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이번 테러를 “(프랑스 내) 공모와 함께 IS에 의해 외국에서 계획되고 조직된 전쟁 행위”라고 밝혔다. 그는 이번 공격이 “혐오스럽고 야만적”이라며 “무자비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프랑스는 미국 주도의 대IS 공격에 동참해 왔지만 그간 공습 지역을 이라크로만 한정해 왔다. 그러다 지난 9일부터 난민 문제 해결 차원에서 시리아 공습을 시작했다.


 프랑스 정부는 테러 직후 경찰 외에 별도로 1500여 명의 군 병력을 긴급 투입했다. 프랑스 교육부는 테러 이튿날인 14일 파리 지역 모든 학교를 임시 폐쇄했다. 에펠탑 입장도 무기한 중지됐다. 올랑드 대통령은 15~16일 터키 안탈리아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취소했다.


이충형 기자, 김도원 인턴기자(경희대 언론정보학 3)?adc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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