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아픈 남자가 선사하는 아름다움과 즐거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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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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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
소설가

20대 초반에 혼자 고민했던 주제가 있다. 그때 그 시절 언어로 말하자면 “시는 잘 쓰지만 성질 더러운 시인과, 시는 그럭저럭해도 인간성 좋은 사람 둘 중에 어떤 사람이 돼야 할까?”

자의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님에도 그런 의문을 품었던 이유는 재능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의 유난스러움이 불편했기 때문이었던 듯하다. 훗날 “나쁜 사람은 아픈 사람이다”는 명제처럼 “아픈 사람이 재능 있는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이해한 후 옛 고민이 해소되었다.

 인간 정신의 창조성과 질병, 천재성과 광기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미국 의학자 필립 샌드블롬은 『창조성과 고통』이라는 책에서 위대한 창조자들의 질병을 망라해 보여준다. 파스칼의 장 결핵, 플로베르와 도스토옙스키의 간질병, 프리다 칼로의 선천적 척추 결함, 말러의 선천적 심장판막 결함, 프루스트의 알레르기성 천식 등등. 신체 질병뿐 아니라 정신 증상도 소개된다. 몬드리안의 강박적 정리정돈벽, 뭉크의 분열증적 성향, 슈만과 고흐의 조울증. 특히 조울증은 많은 예술가가 경험하는 증상이어서, 조증 상태에서 휘몰아치듯 창작 활동을 한 후 울증의 시기가 오면 내면의 고통 속으로 침잠한다. 샌드블롬은 “모든 고통은 그만의 것을 표현한다. 건강은 말이 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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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정신의학자 보리스 시륄리크는 『불행의 놀라운 치유력』이라는 책에서 불행에는 스스로를 돌보는 ‘복원력’이 있다고 제안한다. 그는 고통스러운 유년기를 보낸 사람들이 어떻게 고통을 승화적으로 표현해 삶을 승리로 이끌었는지 연구한다.

그의 책에는 고통스러운 유년을 통과한 작가들이 열거돼 있다. 발자크, 스탕달, 모파상, 에밀 졸라, 알렉상드르 뒤마, 보들레르, 랭보, 조르주 상드 등등. 시륄리크는 말한다. “우리는 결핍의 괴로움, 상실의 고통 때문에 상징에 매달린다. 예술은 죽은 자를 살아나게 하고 철학은 상처에 붕대를 감아준다.”

 재능이나 창조성이 당사자의 고통이나 불편한 욕동이 승화적으로 표현된 결과물이라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다. 승화적으로 표현되지 못한 에너지가 당사자를 공격할 때 그들은 무너지기도 한다. 병이 끝까지 발전해 창조성을 약화시키지 못하게, 창조성만이 질주해 그 힘에 홀려버리지 않게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 그들의 과제라고 한다. 우리가 향유해온 아름다움, 위로, 즐거움 등이 어떤 이의 고통 위에 핀 꽃이라는 사실이 새삼 미안해지는 날이다.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