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 칼럼] '弱體 정부'로는 어렵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며칠 전 점심 자리에서 이런 얘기들이 나왔다. 지금 우리 상황은 보통 난국이 아니다. 타개해 나가자면 밉든 곱든 노무현 정부의 안정과 역량강화가 시급하지 않으냐.

무슨 방법이 있겠느냐. 그러자 대뜸 한 사람이 "지금 盧정부의 가장 큰 위기는 대통령 설화(舌禍)가 빚은 신뢰성의 위기"라며 더 이상 盧정권의 자기 실수가 안 나와야 한다고 했다. 다른 어떤 이는 비관론자였다.

"盧정부로서는 어렵다는 게 이미 판명됐다"면서 내년 총선의 야당 승리로 야당내각이 들어서는 여야 동거정부 또는 조기 내각제 개헌 등의 정계아이디어를 소개했다.

***盧정권 역량강화 두가지 방안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런 얘기들이 문제의 해답은 못 되는 것 같다. 재임 중 대통령이 자기권력을 제한하는 동거정부로 나갈 것 같지도 않고 또 그 정부가 잘 된다는 보장도 없다. 대통령의 말조심은 꼭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난국이 풀릴 수도 없다.

그렇다고 지금 상황은 이대로 가만 있기에는 너무 심각한 것 같다. 안보는 북핵을 둘러싼 북.미 간 긴장고조 속에 샌드위치 격이 돼 있고, 경제 침체는 벌써 위험수준이며 정치는 대선 이후 국회 부재(不在).정당 부재라 할 만큼 기능을 잃고 있다.

그런 가운데 파업과 집단이기주의.국론분열이 나라를 휩쓸고 있다. 문제는 이런 난국을 헤쳐나갈 盧정권의 '실력'인데 여태 시스템 타령만 할뿐 통 미덥지가 못하다. 이렇게 5년을 어떻게 가겠느냐는 소리가 도처에서 나온다. 무슨 방법이 있을까. 필자는 盧정권의 안정과 역량강화를 위해 두가지를 말하고 싶다.

하나는 범여(汎與)역량동원체제로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보면 盧정권은 주요 문제들을 청와대팀과 내각만으로 다뤄나가고 있다. 각종 파업이나 집단행동도 거의 청와대를 목표로 삼고 있다. 청와대만 바쁘고 죽을 지경인 형국이다.

盧정권엔 지금 여당도 없고 역성을 들어줄 지역기반도 아직은 없다. 이런 고립화.소수화 현상부터 깨야 한다. 盧정권도 동원할 세력은 많다. 우선 민주당이 있다. 친노(親盧).반노(反盧)로 갈등이 많지만 대통령이 하기에 따라 정권안정세력 또는 보조세력으로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 그걸 못하고 있는 것은 실책이다.

토론공화국을 외치면서 토론의 본산이라 할 국회와 정당을 무력화 상태로 두는 것은 앞뒤가 안맞는 일이다. 지금 각종 집단행동의 쟁점도 주 5일제.새만금.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등 제도와 정책사항이 대부분이다. 입법-행정부가 같이 져야 할 짐이다. 이런 문제로 국회.정당에서 격론이 벌어지고 이익집단들이 그 추이를 지켜보는 과정이 있어야 정상국가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바로 다 청와대로 가지 않는가.

이처럼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좁은 코드에서 벗어나 내편을 넓혀 나간다면 동원가능한 지혜와 역량이 엄청나게 확대될 수 있다. 굳이 왕수석만 바쁠 게 아니라 신망높은 조순형(趙舜衡)의원도 좀 뛰게 하고, 정치를 통해 '파업반대 여야합의'같은 것도 만들어낸다면 일이 얼마나 수월해질까.

또 한가지는 공직사회 장악문제다. 행정부 공무원은 당연히 대통령 지시를 따라야 한다. 대통령이 따라 달라고 부탁하고 간청할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요즘 보면 盧대통령은 공무원들에게 사뭇 사정을 하는 것 같다. "나한테 투자하라" "지금 노무현은 안된다고 하는데 투자하면 배당이 클 것"이라는 말을 하고 다닌다. 처량한 일이다. 공무원은 승진과 영전을 바라는 사람들이다. 어떻게 하면 승진.영전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목표와 기준을 줘야 뛰게 된다.

***공무원에게 간청하는 대통령?

과거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증산.수출.건설.새마을운동 등 구체적 목표가 있었다. 지금 공무원들은 무엇을 잘 해야 출세할 수 있을까. 국가개조니 문화개혁이니 업무혁신이니 하는 모호하고 추상적인 말로는 공무원을 움직이기 어렵다. 공무원이 뛰고 각급 행정조직이 움직여야 사회갈등이 바로 청와대로 가지 않고 초기에 하급행정단계에서 걸러질 수 있게 된다.

요즘 많은 사람이 시국을 걱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지금 떠내려가고 있다는 걱정소리가 도처에서 나온다. 盧정부는 이런 걱정에 빨리 자신있는 회답을 보내야 한다. 산적한 국가 현안들을 안정감있게 해결하는 '능력'말고는 다른 회답은 소용없을 것이다.

송진혁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