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파업이라고 해서 모두 공권력 투입해선 안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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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흥은행 파업사태의 타결과 관련,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은 23일 "법과 원칙이 꼭 공권력 투입과 같은 말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노동 현장에서 노사 갈등을 조정하는 근로감독관 1백78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한 특강.오찬 간담회 자리에서였다. 공권력을 투입하지 않고 마무리된 이번 사태에 대해 "또 노조에 굴복한 게 아니냐"는 지적과 혼선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의 한마디였다.

盧대통령은 이날 "조흥은행 문제는 불법 파업이므로 쉽게 해결되지 않으면 공권력을 투입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고 소개했다. 일단 조흥은행 노조의 파업에 대해서는 '불법'이라고 명백히 규정을 한 것이다.

그러나 盧대통령은 "불법 파업에 대해 모두 공권력을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라는 말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며 "공권력 투입은 국민의 신체.재산.생명이 급박한 위기를 당할 때 필요한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예도 들었다. "조폭처럼 조직화된 폭력이라면 원칙을 갖고 뿌리를 뽑아야 한다"며 "그러나 일시적인 폭력이라면 유연하게 대처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盧대통령은 "집단행동에 대해 무조건 온정적으로 대화나 타협만 하거나, 원칙대로 공권력 투입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가장 중요한 원칙은 국민과 노사 모두에 이익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 자신의 노사 문제 해법을 설명했다.

이런 시각에서 盧대통령은 조흥은행 사태를 다시 설명했다. "조흥은행의 경우 어쩌면 파업이 없었더라도 매각 조건은 어제 (타결시의)결론과 비슷했을 것"이라고 했다.

또 "조흥은행 사태로 예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주식값도 떨어지는 심각한 상황이었다"며 "그렇게 되면 매수자도 포기하려 하지 않았겠느냐"는 논리도 꺼냈다.

盧대통령은 "경제부총리가 법과 원칙을 말해놓고 왜 타협을 했느냐고 시비를 건다"며 "그러나 파업하는 사람들에게 타협하겠다고 말하면 협상이 잘 되겠느냐"고 주장했다. "협상이라는 게 시시각각 정보에 따라 조건이 달라질 수 있다" "공권력 출동을 위해 장비를 다 꺼내놓고 했지만 법과 원칙을 획일적으로 생각할 게 아니고 (노조가) 느끼고 판단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도 덧붙였다.

즉 '공권력 투입'은 일종의 압박카드였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盧대통령의 이 같은 정황 설명은 차후 불법 파업이 재발될 경우 정부의 '공권력 투입'경고를 엄포로 듣게 할 가능성도 초래할 수 있다.

당초 청와대 측은 공권력 투입의 기준을 "폭력.파괴는 물론 물리력을 사용한 업무방해, 공익이나 국민 경제에 대한 심대한 타격을 주는 행위라고 판단될 경우"(박태주 노사개혁 T/F팀장)라고 설명했었다.

때문에 盧대통령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공권력이 투입돼야 할 불법과 그렇지 않은 불법의 기준이 여전히 애매모호하다는 지적을 낳고 있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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