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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빨려드네, 원초적 미술의 마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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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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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 브뤼’ 대표 작가인 제라르 센드리의 전시작품들. 직관으로 잡아낸 인체의 입체적 형태화로 인간의 특성을 파헤친다. 기존 미술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시각과 이미지가 관람객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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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랑그너, ‘완성’ (2008년)

기존 문화 습속에 매여있지 않은 원초적 미술 ‘아르 브뤼(Art Brut)’가 한국에 본격 도착했다. 7일 경기도 용인시 양지리 6-10번지에 개관한 ‘아트 뮤지엄 벗이(The Versi)’는 의료법인 용인병원이 세운 아르 브뤼 전문 미술관이다. 미술치료와 연계한 아르 브뤼 또는 아웃사이더 아트(Outsider art)를 국내에 본격 소개하는 중심지로 문을 열었다. 1945년 프랑스 작가 장 뒤뷔페가 아르 브뤼 개념을 정립한 이래 70년 만에 우리 현실에 적용될 수 있는 아웃사이더 아트 연구소가 생긴 셈이다.

용인 ‘아트 뮤지엄 벗이’ 개관
미술치료와 연계한 ‘아르 브뤼’
아마추어·어린이·정신장애인 등
“본능에 충실한 그림이 더 창조적”

 개관 기념전 ‘예술의 발견, 순수의 시작’은 국내에 낯선 아르 브뤼의 역사와 예술성을 더듬는 특별전이다. 흔히 아마추어 미술가나 정신 장애인들처럼 관습적 미술에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무의식적이고 자발적으로 그린 그림을 말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예단은 금물이다. 직업 화가들보다 솔직하고 자유로운 화면을 보여준다. 이 분야의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손꼽히는 스위스 로잔의 ‘로잔 아르 브뤼 미술관’과 오스트리아 ‘구깅 미술관’의 작품 20여 점과 아트 포스터 50여 점은 기존 제도권 미술에서 볼 수 없는 신선하고 강력한 이미지로 보는 이들 감각을 일깨운다.

 새를 즐겨 그려 버드맨(Birdman)으로 불리는 한스 랑그너(51)는 밑그림 없이 바로 물감 작업만으로 대작을 완성하는 즉석 예술로 이름났다. 검은 윤곽선으로 스타일화한 새의 형상은 선화(禪畵)처럼 보인다. 치안판사 출신의 제라르 센드리(87)는 나이 마흔이 넘어 그림을 시작했는데 단순화한 인체 해부도로 인간의 특성을 날카롭게 집어낸다. 포스터 속 그림을 뜯어보노라면 기존 미술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시각과 직관의 마력 덕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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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경기도 용인시 양지리에 국내 최초 ‘아르 브뤼’ 미술관으로 개관한 ‘아트 뮤지엄 벗이’.

 지난 5일 오후 한국정신보건 미술치료학회원들을 초대해 연 학술세미나에서 ‘아르 브뤼의 역사’를 주제로 강연한 요한 파일라허 구깅 미술관장은 “직관 미술, 비전 미술, 현대 민속 미술 등 아웃사이더 아트의 개념은 점차 확장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그는 “아르 브뤼는 개개인의 창조적 잠재력에서 오고 문화에 속박되어 있지 않으므로 시간을 초월해서 그 어떤 미술 사조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의정 홍익대 초빙교수는 “아르 브뤼가 1970년대 반(反) 문화 시대로 접어들며 특이 예술, 규범 밖의 예술, 새로운 창작 등의 이름으로 많은 지류를 이루며 예술의 경계를 허물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초대 관장을 맡은 이충순 박사(용인정신병원 경영고문)는 “기술발전이나 부의 축적이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깨달음과 함께 정신세계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시점에서 벗이미술관을 준비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 관장은 “문화와 예술로 대변되는 정신세계의 무한한 가치를 접목시키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의 어떠한 분야에서도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절박함으로 이 미술관을 많이 활용해달라”고 부탁했다.

 전시는 내년 2월 28일까지. 031-288-0376.

  용인=글·사진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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