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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광장] 울산 큰 애기 낳은 영남 알프스

중앙일보

입력

S형!

아홉 개의 봉우리가 서로 어깨를 건
억새와 단풍 어우러진 천상의 비단
만추에 울산 민심과 알프스 체험을

격조했습니다. 그새 가을이 깊어버렸습니다. 실은 조금 일찍 편지를 쓰려 했으나 여기도 여러 가지 일이 많았습니다. 마음만 바쁜 건 아닌지 모르겠지만, 형이나 나나 일 없이는 못사는 축이니 그 너른 가슴으로 품어 주십시오. 저는 요즘 영남알프스에 빠져 지냅니다. 무슨 한가한 소리냐고 나무라는 소리가 예까지 들립니다. 그러나 형도 가을의 영남알프스를 보신다면, 제 심정이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

지금쯤 북한산도 가을이 절정일 테죠. 요즘도 가끔 설악산을 찾으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삶에도 무늬가 있듯이 산도 그렇습니다. 설악의 웅장함과 웅혼함은 압도적입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상이 넘칩니다. 북한산도 북한산의 매력이 있습니다. 그처럼 영남알프스도 독특한 무늬가 있습니다. 사람을 품어주는 산입니다. 인심 좋은 울산 큰 애기를 낳은 산이고 너른 들을 풀어 사람을 기른 산입니다.

형이 한 잔술에 맛깔나게 부르던 가곡, ‘깨끗한 언양물이 미나리꽝을 지나서'로 시작하는 ‘물방아’의 고향입니다. 골골을 적신 맑은 물과 영남알프스에 반했던 울산의 민속학자 눈솔 정인섭 선생이 쓴 시가 노래가 되었습니다. 크기는 속리산과 덕유산 국립공원과 비슷합니다. 9개의 봉우리가 어깨를 걸고 있습니다. 전체가 모여 하나가 된 듯하고 하나라고 생각하고 보면 아홉이 되는 산입니다. 9가지 색으로 짠 천상의 비단입니다.

어디에도 없는 매력이 있습니다. 억새와 단풍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산입니다. 강변이나 습지에 사는 억새가 울산에서는 산정에서 삽니다. 지리산 세석평전과 맞먹는 고원에 억새가 지천입니다. 달이라도 뜨는 밤이면 은빛바다로 변합니다. 이효석이 소금을 뿌려놓은 것 같다는 봉평의 메밀밭이 아니라 소금을 품은 은빛바다입니다. 단풍과 절경에 빠져 걷다가 탁 트인 산정에서 만나는 억새평원, 상상해보십시오. 불립문자, 언어도단의 세계입니다.

S형!

몇 년 전, 어떤 산을 명산이라고 하는가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높은 산에 명산이 많지만 높다고 명산은 아니라는 것이 그때 우리의 결론이었습니다. 에베레스트가 높아도 고산이라고해도 명산은 아니지 않습니까. 명산은 사람을 품어야 명산이고 사람을 만나야 명산이 아닙니까. 영남알프스에는 연간 300만 명이 다녀갑니다. 설악과 한라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KTX가 개통되면서 매년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일찍 아침밥을 먹고 산을 휘휘 둘러 울산에서 점심을 먹고 서울로 돌아가도 초저녁입니다.

이런 보석을 두고 우리끼리만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영남알프스에 빠져 있습니다. 산을 좋아하는 형과, 형처럼 산을 좋아하는 서울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내친 김에 산정에서 음악제도 열고 억새축제도 더 멋지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해발 1000m가 넘는 산봉우리를 잇는 트래킹 코스, 하늘억새길도 만들었습니다. 내년에는 대한민국에서 보기 힘든 세계산악영화제도 처음으로 막을 올립니다.

영남알프스의 매력을 나누고 싶어 로프웨이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산을 오히려 망친다는 분들도 있지만 며칠 전에 50만 명의 시민이 서명을 했습니다. 물론 양쪽의 이야기를 무겁게 받아 들여 잘 해나가겠습니다. 시월에는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 산악관광회의를 열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처음이었습니다. 알프스라는 이름을 가진 세계의 도시들이 모였고, 산에서 평화를 찾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울산에 모였습니다. 탈렙 리파이 사무총장은 “기회가 되면 다시 방문하고 싶은 산”이라고 했습니다. 산에 대해서는 세계적인 사람이기에 솔직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왜 울산에서 산악관광회의를 했는지 의아했는데, 와보니 알겠다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해서 초대합니다. 단풍이 낙엽이 되기 전에, 억새가 봄의 푸른 꿈을 꾸고 있을 때 다녀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준비물은 따로 없습니다. 빈 가방에 빈 가슴이면 족합니다. 가방에는 울산의 인심을, 가슴에는 영남알프스를 담아 가시면 됩니다. 가을의 초대장을 기쁜 마음으로 보냅니다. 조금씩 추워집니다. 첫 추위에 떨면 겨우내 떤다는데, 따뜻하게 지내십시오.

김기현 울산광역시장

#영남알프스 #김기현 #정인섭 #UNWTO #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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