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미 전문가 "변방 후보가 美대통령되면 한반도에 큰 위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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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국 대선 기간 동안 한반도와 관련한 이렇다 할 사안이 나오지 않고 있는 건 분명 좋은 일이다. 대체로 미국의 선거 기간 중 나오는 여러 이야기들은 사려 깊게 생각해 나오는 것보다 정치적 편의에 의한 것들이다. 한반도 관련 대선공약을 내놓고 대통령에 당선된 이들도 '선거기간 중 한 공약을 지키는 건 힘들겠구나'고 깨닫기 마련이었다.

1968년 출마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당시 린든 존슨 정부를 공격했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북한과 같이 보잘것없는 '4류 권력'이 미국을 공격하고 도망치게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 해 1월 미국 첩보함 푸에블로함이 동해에서 북한에 나포된 것을 언급한 것이었다. 그런데 북한은 닉슨 취임 후 4개월만인 69년 4월 미 정찰기 EC-121를 격추시켰다. 하지만 닉슨 정부는 선거기간 중 그렇게 강경하게 말했으면서도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8년 후 지미 카터 대통령도 베트남전 이후 미국 내 분위기를 활용하기 위해 "모든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것"이라고 맹세했다. 하지만 취임 후 한·미 동맹 유지를 택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유세 중 발언과 달리 북한의 공격에 직면했을 때 '전략적 인내'를 골랐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 미래를 예측한다면 미 대선에서 한국에 대한 세 가지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TV토론에 한국과 관련한 내용이 나오면 한·미 동맹에 좋지 않다는 점, 둘째, 미 대통령들은 한반도 정책 관련 공약을 지키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점, 셋째, 결국 대통령이 되는 사람이 (개인적 성향에 따라) 한·미 정책을 알아서 처리한다는 점이다.

셋째 교훈의 측면에서 보자면 이번 대선에서 한국에 중요한 건 어느 당 후보가 당선되느냐가 아니다. '핵심(core) 후보'가 백악관을 장악하느냐, 아니면 '변방(periphery) 후보'가 백악관 주인이 되느냐다.

'핵심 후보'는 민주당에선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공화당은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마코 루비오 플로리다주 상원의원이 될 것이다. 이들이 당선되면 당장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실현될 것이다. 작고 세세한 부분에선 이견이 있을지 모르나 핵심 후보 주변에는 이전 정권 혹은 워싱턴의 싱크탱크 출신 정책 고문들이 즐비하다. 그들은 미국이 글로벌 리더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잘 알고 있다. 한·미 동맹에 가치를 두고 북한 비핵화와 핵 억지에 진력할 것이다. 무역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오바마 8년의 시기와 비슷할 것이다. 물론 다소의 변화는 있을 것이다. 예컨대 북한의 계속되는 핵 개발에 대응하는 '뭔가 다른 대처'를 동맹들에 요구하게 될 지 모른다.

대표적 변방 후보들은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벤 카슨, 칼리 피오리나, 랜드 폴 등이다. 민주당의 경우 버니 샌더스다. 이들은 워싱턴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다. 워싱턴 경험이 전혀 없거나 거의 없는 정책 고문들에 자문을 구한다. 어떤 이는 자문을 구할 고문이 아예 없기도 하다. TPP 같은 지역간 경제통합에도 비판적이다. 이런 성향 때문에 이들이 대권을 잡으면 대 한국, 대 북한 정책에 큰 위험이 올 수 있다. 또 한미 동맹의 붕괴가 당장은 아닐지 모르나 '무한한 가능성'으로 남을 것이다. 동맹이 유지된다 해도 닉슨 때처럼 주한 미군을 대폭 줄이거나, 무역적자가 너무 많다며 보호무역으로 치달을 것이다. 북핵 문제에 대한 관심도 떨어질 것이다.

◇밴 잭슨 교수는= 미 공군 정보분석관을 거쳐 국방부장관 보좌관실 한국 담당,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객원연구원, 싱크탱크 미국신안보센터(CNAS) 연구원 역임. 현재 하와이의 아태안보연구소(APCSS)에서 한국·일본 담당 정치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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