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는 극복하는 게 아니라 적응하는 겁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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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시각장애 변호사인 김재왕씨는 “장애인을 둘러싼 주변 환경이 변하면 장애인의 사회 참여도 달라진다”고 말했다. [사진 대법원]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애인이 성취를 거두면 ‘장애를 극복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장애는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존재합니다. 장애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과 사회가 잘 적응해야 하는 대상입니다.”

첫 시각장애 변호사 김재왕씨
판사·법원직원 상대 순회 강연
“로스쿨 시험 때 음성 듣고 풀어
배려 없었다면 변호사 못 됐을 것”

 국내 첫 시각장애인 변호사인 김재왕(37) 변호사가 2일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법원에서 판사·법원 직원들 앞에 섰다. 대법원의 초청으로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에 나선 김 변호사는 이날 서부지법을 시작으로 다음 달 21일까지 전국 11개 법원에서 ‘장애의 다양성과 장애인 사법지원’이란 주제로 강연을 한다.

 1997년 서울대 생물학과에 입학한 김 변호사는 2012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졸업하고 제1기 로스쿨 변호사가 됐다. 이후 공익인권변호사 모임인 ‘희망을 만드는 법’에서 장애인 등 소수자의 인권 옹호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오른쪽 눈이 보이지 않았던 김 변호사는 왼쪽 눈마저 시신경이 위축돼 보이지 않게 되자 시각장애인의 삶을 살게 됐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생물학을 계속 공부할 수 있을지,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했을 땐 장애를 신체·정신적 손상 정도로만 인식했는데 그때부턴 장애로 인한 생활 속 어려움을 고민하게 됐지요.”

 2008년 지인의 소개로 로스쿨 제도를 알게 된 그는 로스쿨 입학 시험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시야가 좁아 글을 제대로 읽을 수 없었던 그에게 법학적성시험(LEET)은 큰 벽으로 다가왔다. 점자 문제지와 확대 문제지가 제공됐지만 후천적으로 시력을 잃은 그는 점자도 빨리 읽지 못했다. 김 변호사는 로스쿨협의회에 문제를 음성으로 변환해 읽어주는 컴퓨터 제공을 요청했고 협의회가 이를 받아들여 그해 첫 로스쿨 입시에 합격했다. 그가 장애를 ‘극복’ 대상이 아닌 ‘적응’의 대상이라고 설명한 것도 이 경험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제 장애는 바뀐 게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를 둘러싼 환경, 즉 음성형 컴퓨터 제공 여부나 시험 자격요건 등에 따라 삶이 달라진 것입니다. 즉 장애인은 새로운 것을 배우고 도전해야하며 주변 환경은 장애인을 위해 배려하고 소통해야 하는 거죠. 장애인과 사회가 잘 적응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김 변호사는 장애인 사법지원에 있어서도 적응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장애인은 진술조력인이나 의사소통 보조인 등이 필요하다”며 “장애인과 소통하려 노력하고 인내심을 갖고 경청하는 자세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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