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반군세력 121억 몸값 요구 … 피랍 70대 한국인 추정 시신 발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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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에서 이슬람 반군세력에 납치된 홍모(74)씨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됐다. 홍씨는 지난 1월 무장 괴한들에게 납치됐다.

납치 10개월 만에 도로서 발견
외상 없어 … 병으로 숨지자 버린 듯

 AP통신 등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필리핀 남부 술루주 파티쿨 마을 도로에서 한국인 노인의 시신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필리핀 군 당국은 총상과 같은 외상이 없다며 장기간 납치된 상황에서 질병으로 사망하자 범인들이 시신을 버린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 외교부는 1일 “필리핀 민다나오섬 삼보앙가에서 홍씨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됐다”며 “시신이 우리 국민으로 최종 확인되면 사망 경위와 상황을 필리핀 정부를 통해 면밀하게 파악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홍씨는 지난 1월 24일 민다나오섬 삼보앙가시 부근의 소도시 수라바이에 있는 아들의 집에서 납치됐다. 당시 경찰복을 입은 7~8명의 괴한이 총기로 무장한 채 집으로 들이닥쳐 홍씨와 홍씨의 아들 등 집에 있던 한국인 5명을 납치하려 했다. 이들이 저항하며 몸싸움이 벌어졌고, 납치범들은 실신한 홍씨만 차에 태워 달아났다. 그동안 홍씨의 가족들은 외교부와 필리핀 정부의 도움을 받아 납치범들과 석방 교섭을 해 왔다.

납치범들은 지난 2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홍씨로 추정되는 인물의 사진을 공개하며 몸값을 요구했다. 얼굴을 가린 5명이 홍씨로 추정되는 노인을 에워싸고 총을 겨누고 있었다. 당시 노인은 앙상하게 마른 모습이었다. 이들은 “이 노인은 매우 아프고 위중한 상태에 있다”며 “목숨을 살리고 싶으면 5억 페소(약 121억원)의 몸값을 내야 한다”고 위협했다.

 홍씨를 납치한 괴한들은 자신들이 민다나오섬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이슬람 과격단체 아부사야프라고 밝혔다. 2000년대 들어 아부사야프는 내·외국인 납치와 살인 등을 일삼고 있다. 2000년에는 유럽인 관광객 21명을 납치했다가 거액의 몸값을 받고 풀어줬다. 스스로를 수니파 무장조직(이슬람국가·IS) 연계세력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으나 확인되진 않았다.

 정부는 그동안 피랍자에게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해 언론에 비보도를 요청해 왔다. 지난달 30일엔 석방 교섭에 진척이 있어 홍씨가 곧 풀려난다는 설도 나왔으나 이틀 만에 사망으로 추정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올 들어 필리핀에서 살해당한 한국인은 9명이다. 특히 민다나오 지역은 이슬람 반군세력이 세를 떨치고 있어 치안이 불안하다. 흑색경보(여행 금지)가 내려진 곳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필리핀 정부와의 구체적인 공조 내용 등에 대해선 추후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박유미 기자yumi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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