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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가수 김장훈과 바둑

중앙일보

입력

김장훈의 인터뷰를 통보하는 취재기자가 바둑담당이었다.
가요담당이 아닌 바둑담당이 그를 인터뷰 한다고 하니 웬일인가 했다.

대뜸 인터뷰를 하는 이유를 물었다.
가수 김장훈, 그가 바둑홍보 대사라 했다.

김장훈과 바둑, 선뜻 연결이 되지 않았다.
가수가 아닌 바둑 홍보대사로서 사진을 찍기 위한 실마리가 필요했다.
미리 가닥이 잡히지 않을 땐, 인터뷰를 집중해서 듣는 게 상책이다.

그가 스튜디오로 왔다.
김장훈 특유의 차림이다.
레이스가 있는 셔츠에 재킷, 바둑과는 전혀 어울리는 않는 차림이다.

오자마자 화장실부터 찾았다.
그의 손에는 치약과 칫솔, 조그만 손거울이 들려 있었다.
짐작건대 양치를 하겠다는 의미였다.

양치 후, 손거울을 보며 머리를 잠깐 다듬고선 나를 슬쩍 쳐다봤다.
사진 찍을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였다.

일단 자리에 앉으라 했다.
인터뷰를 듣고, 실마리가 잡히면 사진을 찍겠다고 했다.

귀를 쫑긋 세웠다.
도대체 바둑에 대해 뭔 얘기를 할지 궁금했다.
바둑을 처음 접하고 좋아하게 된 이유를 쭉 이야기했다.

그가 한 말을 요약하면 이렇다.
‘일곱 살에 처음 바둑을 접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 병원에서 링거 꽂고 살다시피 했다.
기관지 천식과 악성 빈혈이었다.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담당 의사가 아마 5단이었다.
그 의사와 가끔 뒀는데 기재 있다고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김수영 프로기사가 운영하는 도장에 나갔다.
입단할 만하다고 했다.
바둑 도장에 다닐 체력도 안 된 터라 그만두었다.
성인이 돼서도 바둑을 잊지 못했다.
바둑 월간지를 구독하고 기원에 다니면서 바둑 공부를 했다.
연예인이 되어서도 세계 바둑대회를 관전하러 다녔다.
신동엽, 신대철과 자주 뒀다.
신동엽이 나에게 치킨 100마리 정도 물려있다. 빨리 치킨 사라고 기사 써 달라.
음악 방송 리허설 중간에 신대철과 잔디밭에 앉아 대국을 두곤 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가관이라고 했다.
기력은 프로 기사와 두세 점 깔고 둘 정도다.’

프로 기사와 두세 점 깔고 둘 정도의 기력이라면 아마 최강자 수준이다.
바둑의 장점을 이야기해달라는 취재기자의 질문에 자신을 빗대어 이야기했다.

“ 워낙 욱하는 기질이 강하고 참을성이 없어요.
바둑을 배우면서 인격적 수양이 된 셈입니다.
그나마 바둑을 둬서 이 정도지 만약 바둑을 몰랐다면 교도소를 꽤나 들락거렸을 겁니다.”

이어지는 마지막 한마디가 가슴을 쳤다.
“자본주의 사회는 이기는 법만 가르치지 지는 법을 가르치지 않죠.
하지만 바둑은 기도(棋道)를 중시하기 때문에 지고 난 뒤에도 복기를 하고 인사까지 해야 하거든요.
이렇듯 바둑은 수많은 대국을 통해 패배를 인정하는 법을 배울 수 있어요.”

‘패배를 인정하는 법’, 바둑을 모르면 쉽사리 할 수 없는 말이다.
이 말을 듣고 사진 찍을 준비를 했다.
콘셉트를 정했다.
‘김장훈 안에 바둑 있다.’였다.

컴퓨터 모니터에 바둑 화면을 띄웠다.
3m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모니터를 마주보라고 했다.
그리고 김장훈과 모니터 가운데에 유리판을 세웠다.
컴퓨터 뒤쪽에서 유리판을 통해 김장훈을 찍으면,
유리에 비친 컴퓨터 화면이 김장훈과 겹쳐지는 사진이었다.

촬영을 막 시작하려는데 그가 말했다.
“유리에 비친 모니터 화면과 제가 함께 찍히는 건가요?”

사실 이렇게 사진을 찍으면 다들 의아해 할 뿐, 자신이 어떻게 찍히는지 대부분 모른다.
그런데 그는 시작하기도 전에 어떻게 찍히는지 알아챘다.
일찍이 바둑을 배운 탓에 사진기자의 수를 미리 읽고 있는 듯했다.

김장훈과 바둑,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레 짐작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찍으며 그에 대한 새로운 기대가 생겼다.
다름 아닌 바둑 홍보대사로서 김장훈의 행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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