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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특성을 고려한 치유의 쉼터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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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것 그대로의 자연은 완벽한 디자인이 아닐까 싶다. 바람과 빛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나무를 비롯한 식물이 풍성하고, 물소리와 새소리가 들리는 자연은 가장 편안하고 안정된 곳이다. 현대인들은 삶에 지쳐 힘들 때마다 푸른 숲과 시원한 바다를 떠올린다. 모든 것이 편안하고 완벽한 곳인 자연을 그리워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인 셈이다. 하물며 아픈 환자들은 오죽할까.

사용자의 특성을 담아낸 치유정원 사례

병원의 디자인은 환자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환자 중심의 디자인은 병원을 치료 기능의 공간에서 치유의 공간으로 바꾸고 있다. 치유의 공간, 즉 다친 몸뿐만 아니라 상처 입은 마음마저 어루만져주는 공간으로 진화 중이다.

때로 무섭기도 한 병원이 치유의 공간이 될 수 있었던 데는 쉼터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자연의 정서를 만끽할 수 있는 쉼터 말이다. 쉼터가 병원 공간에 반영되기 시작한 초기에는 쉼터를 만든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다. 치료와 입원, 사무와 보관 등 기능 위주의 병원 공간 일부를 차츰 환자들에게 배려의 공간으로 내어준다는 것만으로 커다란 변화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물론 초기에는 다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쉼터를 만든다는 게 너무 이상적인 형태를 추구하는 바람에 병원의 특수성을 다소 고려하지 않은 디자인도 많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병원 곳곳에 자연스럽게 자연환경의 쉼터인 정원을 만들어 놓은 덕분에 안성맞춤의 옷을 입고 있는 셈이다.

정원은 환자와 보호자 말고도 병원의 의료진과 직원들까지 심리적인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이제 정원은 치유 공간으로 병원 디자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간인 듯하다. 환경심리학자인 텍사스 A&M 공대의 로저 울리히 교수는 30년 전인 1984년에 물리적인 공간이 치유에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를 발표했었다. 미국에서는 이미 울리히 교수가 말한 공간과 치유의 선순환 구조를 병원에 적용하고 있다. 치유 정원을 만들기 위해 조경 건축가를 포함한 다양한 헬스케어 디자인 관계자들이 시도를 하는 중이다.

“공간은 사용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사용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져야 한다”라는 상식과 원칙은 치유 정원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각각 다른 환자의 생리와 여러 사용자들의 욕구에 맞춰 공간이 디자인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치유 정원이라고 해서 달리 적용되는 게 아니다. 미국의 헬스케어 디자인 잡지인 [Healthcare Design Magazine]의 기사를 한번 보자. “Designing Outdoor Spaces To Fit Specific Patient Populations”라는 기사에는 “작은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 포함한 환자에게 정원을 사용하여 걷는 행위를 자극하고, 부드러운 산책 경로로 고관절 교체 환자의 재활을 돕고, 외래 환자의 화학 요법 회복에 도움을 주고, 아픈 아이가 의료 시설에 대한 무서움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정원”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환자라 해도 각각의 증상에 따라 정원의 치유 효과는 개별적인 영향을 끼친다.

▲ 샤프 메샤 비스타 병원 : 이용자들의 상황헤 따라 의자들의 위치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서 태양의 이동에 따라 그늘을 찾아 다닐 수 있도록 하였다.

▲ 예일 뉴해븐 병원 : 암병원 안에 실제 계곡 같은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치유정원

▲ 산니치커뮤니티 병원 : 노인일수록 야외에서 머물고 활동하는 시간을 길게 두길 권장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참고 사진과 설명내용은 아래의 글을 참고하여 인용하였습니다. “Designing Outdoor Spaces To Fit Specific Patient Populations” - April 1, 2014 by Clare Cooper Marcus and Naomi A. Sachs: http://www.healthcaredesignmagazine.com/article/designing-outdoor-spaces-fit-specific-patient-populations)

치매 노인을 대상으로 한 치유 정원이 있는 제천 청풍호 노인사랑병원

예전에 나의 블로그에서 <무서운 병원>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글을 시리즈로 올린 적이 있다. 지난 2013년에 “자연을 담아 치유하는 병원들”이라는 주제로 당시 조사했던 국내외 병원의 사례와 내 경험을 언급한 적이 있는데, 오래 전부터 병원 공간의 치유 기능에 대해 고민을 해왔다. 특히 실용적인 기능성을 극대화하는 것 말고도 자연의 긍정적인 힘을 치유의 환경으로 활용하는 것을 꾸준히 연구해오던 중 몇 해 전 시골 마을의 치매 노인을 대상으로 치유 정원을 디자인하게 된 기회가 온 것이다.

아무래도 농촌 지역의 노인들은 최첨단의 세련된 이미지보다 고향집의 정겨운 광경에 더 편안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이런 고향의 풍경을 떠올리며 옛날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스토리텔링의 공간을 만들어 치유 효과를 높이기로 했다. 그래서 어느 병원에서도 볼 수 없는 노인들의 감성을 살리고자 노력했다.

치매 노인이 머무르며 치유가 되고 생활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제천의 청풍호 노인사랑병원은 한국의 정원을 많이 이해하고 있는 조경건축가 린디자인 윤영조 소장과의 협업으로 작업이 이루어졌다. 시골의 분위기가 살아 있는 이곳의 자연 환경을 작은 시냇물로 병원 안팎으로 이어지게 보이도록 하였는데, 이곳의 정원에 누워 하늘을 보면 유유자적의 여유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와유(臥遊)’의 분위기를 구상하고 시작한 이 작업은 명지병원 이왕준 이사장님의 치밀한 리서치 사례들이 많은 도움이 됐다. 전 세계를 왕래하며 보았던 다양한 치유정원 사례는 우리의 시야를 넓혀줬던 자극제였다. 이러한 자극을 밑거름 삼아 만들었던 치유 환경의 정원은 시골의 전원 풍경을 담아냈다. 이 정원에서 치매 노인들은 그동안 살았던 자신의 삶과 동떨어지지 않은 익숙하고 평온한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 제천청풍호노인사랑병원 : 산책을 하며 더듬더듬 옛 추억을 회상하는 일상의 반복은 치매환자들에게도 작은 치유의 도움을 줄 수 있다. 원두막에 놓인 야채나 과일들의 숫자를 세며 기억을 잃지 않도록 하고, 작은 텃밭을 일구면서 삶을 영속하는 프로그램들이 환경에 녹아들도록 계획했다.(사진제공 제천 청풍호 노인사랑병원)

병원에서의 쉼터는 단순 휴게공간 그 이상을 포함한다.

병원의 쉼터와 정원은 단순한 휴게의 공간만이 아니다. 시각적으로 트인 외부와의 연결로 오는 만족감을 포함하여 병원의 물리적 치료 그 이상을 충족시키는 상생의 치유 공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이 주는 효과를 통해 다양한 질병들에 치료의 특성을 찾아 공간에 반영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로 더 많은 사례들이 생겨나길 바란다. 물론 이 곳을 디자인할 때 안전을 비롯한 환자에 대한 보호와 보안은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병원의 쉼터가 병원의 기능을 반영하는 특수 공간에만 설계에 중심에 두고 남는 공간로 방치되지 않기를 바란다. 단지 수목이나 의자를 배치하는 것의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심리적, 물리적 영향을 근본적으로 살피면서 환자들이 질병을 직접 치료 받는 공간 이외에더 이 곳을 통해 치유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목 하나의 선택이 어떤 치유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염두를 두고 설계가 이뤄진다면, 보이는 것을 넘어 보이지 않는 것까지 배려하는 전인적 치유 병원으로 완성되는 공간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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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미경 대표 기자 webmaster@ndsoft.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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