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너희 덕에 열흘간 행복했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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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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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널티킥을 실축한 이승우(오른쪽)는 서럽게 울었다. 최진철 감독이 그를 위로했다. 손흥민도 지난해 브라질 월드컵 예선탈락 후 펑펑 운 뒤 절치부심해 한국축구 에이스로 성장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이승우(17·바르셀로나B)는 그대로 멈춰섰다. 잠시 후 동료들에게 다가가 일일이 포옹을 하고 악수를 한 뒤 등까지 두드려줬다. 그의 감정이 북받쳐 오른 건 그 이후였다. 본부석의 한국 교민들에게 인사한 뒤 그라운드로 돌아가 쓰러지듯 엎드리더니 눈물을 펑펑 쏟았다. 대표팀 스태프는 물론 벨기에 선수들과 밥 브로와이스(48) 감독까지 찾아가 위로했지만 소용 없었다. 이승우는 최진철(45) 감독이 다가가 손을 내밀자 비로소 몸을 일으켜 라커룸으로 향했다.

5일 휴식에 경기 감각 무뎌져
벨기에와 16강전 0-2로 패배
PK 실축한 이승우, 눈물 펑펑
최진철 “아픔 딛고 더 발전하길”

 17세 이하(U-17)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본선에 출전한 한국 대표팀이 16강에서 멈춰섰다. 한국은 29일 칠레 라 세레나의 라 포르타다 스타디움에서 열린 벨기에와의 16강전에서 0-2로 졌다. 전반 11분 요른 반캄프(17·안더레흐트)에게 첫 실점을 허용했고, 후반 22분 마티아스 베레트(17·에인트호번)에게 추가골을 내줬다. 한국은 역대 최고 성적인 8강(1987·2009)을 뛰어넘지 못한 채 도전을 마쳤다.

 한국은 지난 18일 조별리그 B조 브라질과 1차전을 시작으로 기니와 잉글랜드를 차례로 상대하며 2승1무를 기록, 1위로 16강에 올랐다. 하지만 D조 3위로 결선에 턱걸이한 벨기에에겐 고전을 면치 못했다. 지난 24일 조별리그 최종전 이후 5일 간의 휴식이 오히려 독이 됐다. 체력은 회복했지만 경기 감각이 무뎌졌다. 전반 초반 상대의 강한 압박에 밀려 주도권을 빼앗겼고, 먼저 실점하면서 수세에 몰렸다. 후반에는 만회골을 위해 공격에 치중하다 추가 실점했다.

 불운이 겹쳤다. 훈련 과정에서 중앙수비수 김승우(17·보인고)가 부상(발바닥 미세골절)을 당했다. 선발로 나선 이승모(17·포항제철고)는 수비 리더 이상민(17·현대고)과의 호흡에 문제점을 드러냈고, 수비 실수로 첫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다. 후반 들어 중앙수비수로 깜짝 출전한 공격수 오세훈(16·현대고)은 베레트의 돌파를 막지 못해 추가골을 내줬다.

 주포 이승우의 골 침묵도 아쉬웠다. 0-2로 뒤진 후반 25분 위험지역을 돌파하던 오세훈이 로랑 르무안(17·클럽 브뤼헤)에게 파울을 당해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하지만 키커로 나선 이승우의 슛이 골키퍼에게 막혔다. 만회골 기회를 놓친 한국은 르무안의 퇴장으로 얻은 수적 우세를 살리지 못한 채 영패했다.

 브로와이스 벨기에 감독은 조별리그와 견줘 달라진 라인업으로 한국의 허를 찔렀다. 최진철 감독이 주의할 선수로 지목한 두 공격수 데니스 판 파에렌베르흐(클럽 브루헤)와 이스마일 아자우이(볼프스부르크)는 경기 내내 벤치를 지켰다. 경기 후 최 감독은 “상대 선발 라인업에 미처 확인하지 못한 선수들이 많았다”면서 “벨기에가 예상과 전혀 다른 축구를 해 당황스러웠다”고 실수를 인정했다.

 경기 후 라커룸은 눈물바다였다.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부둥켜 안고 울었다. 주장 이상민은 “4강 이상을 목표로 동료들과 오랜 시간 함께 준비했다. 꿈이 컸는데 여기서 멈춰서다니 안타깝다”면서 “조별리그 성적에 취해 정신적으로 해이해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승리 뿐만 아니라 패배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도 많다”면서 “소중한 경험을 통해 우리 선수들이 더 발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라 세레나(칠레)=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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