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년 스토리 담은 한지의 우수성 세계가 인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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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지 상품 개발 디자인 경연대회’에서 우수 디자인으로 선정된 그레이트마이너의 ‘메아리’. 한지와 석고를 이용해 만든 방향제로, 향을 내는 액체가 한지에 스며들게 해 은은한 향이 오래 남도록 했다.

한지가 진화하고 있다. 글을 쓰는 종이 역할에서 벗어나 멋스러운 가방이 되고 은은한 빛을 내는 조명이 된다. 한지는 세계적인 디자이너와 예술가로부터 내구성과 보존성을 인정받아 새로운 예술적 가치를 만들고 있다. 이달 초 미국 뉴욕에서는 한지의 우수성을 소개하고 소재로서의 가능성을 논의하기 위해 동서양 종이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워싱턴 폴저 셰익스피어 박물관
4대 지류 보존 자료로 사용
다양한 미술작품 소재로도 적당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이 주관한 ‘2015 한지 세계화 전략을 위한 국제 세미나’가 지난 9일 미국 뉴욕 ‘SVA(School of Visual Arts)’에서 열렸다. ‘천년 한지, 세계와 만나다’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세미나는 한지의 우수성에 대해 논의하고 소재로서의 세계화 방안을 찾는 자리였다. 특히 한지 관련 세미나로는 처음으로 해외에서 진행돼 종이 전문가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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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2015 한지 세계화 전략을 위한 국제 세미나’ 현장.

한·미·유럽 종이 전문가 대거 참석

미국 뉴욕서 한지 국제 세미나

이 세미나에는 한국·미국·유럽의 서적 복원가와 소재 디자이너, 미국의 박물관·미술관·국립도서관 소속 전문가가 대거 참석했다.

특히 세계 최대 규모의 셰익스피어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미국 워싱턴의 폴저 셰익스피어 박물관에서 지류(紙類) 보존 처리 전문가로 활동 중인 레아 드스테파노가 한지의 강한 내구성과 보존 용지로서의 가능성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한지는 2000년 초에 미국 내 보존 처리 전문가에게 처음 소개됐다”며 “한지는 지류 보존 자료로서 재질의 일관성이 뛰어난 점이 인정돼 현재 폴저 셰익스피어 박물관에서 주요 4대 지류 보존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지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기록물 유산 11건 중 ‘훈민정음해례본’ ‘조선왕조실록’ 등 9건의 재료로 사용될 만큼 높은 밀도와 강도를 지녀 내구성과 보존성이 우수하다.

미술작품에서 사용할 수 있는 한지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논의됐다. 한지를 이용해 회화 작업을 하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하버퍼드대 미술학과장인 김희숙 교수는 “한지는 쉽게 번지는 다른 동양지와는 달리 놀라운 수용력을 지니고 있는 덕에 유성 판화 잉크까지도 모두 표현할 수 있다”며 “그 때문에 한지를 순수미술 분야에서도 응용할 수 있다”며 한지의 우수성을 설명했다.

소재로서의 한지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논의됐다. 유명한 소재 디자이너인 영국 출신 크리스 래프테리는 “소비자로부터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도구는 스토리”라며 “1000여 년이라는 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여러 번의 제작 과정을 거쳐 탄생하는 한지의 ‘스토리’야말로 전 세계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지로 만든 각종 생활용품 선봬

최근에는 한지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상품의 소재로도 사용되고 있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은 한지의 우수성을 알리고 한지 제품 발굴을 돕기 위해 2011년부터 매년 ‘한지 상품 개발 디자인 경연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경연에 참가한 작가들은 ‘한지는 전통 종이여서 고리타분하다’는 편견을 깨고 세련된 디자인과 석고, 나무와 같은 재료를 한지와 함께 활용해 새로운 한지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경연대회에서 눈길을 끌던 상품으로는 김정혜의 ‘지앤사각토트백’과 그레이트마이너의 ‘메아리’가 꼽혔다. ‘지앤사각토트백’은 한지로 만든 가방으로, 전체 소재는 한지이지만 가방의 손잡이는 코르크 시트로 만들어졌다. ‘메아리’는 한지와 석고를 이용해 만든 방향제다. 이 대회에서 우수작으로 선정된 작품들은 해외 아트페어에 출품돼 한지 상품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다.

글=라예진 기자 ra.yejin@joongang.co.kr, 사진=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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