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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꿈을 요리하는 마법카페<8> 꿈을 조리하기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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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야기 초등학교 5학년 디아는 학원 수업이 취소돼 골목을 헤매다 우연히 ‘꿈꾸는 지구’ 카페에 들어간다. 매일 그곳에서 주인인 ‘꿈 부자 언니’를 통해 자신의 꿈을 찾고 준비하던 중, 같은 반 남학생 정혁이로부터 고백을 받는다. 한편, 디아의 아빠는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하는데….

꿈을 찾는 여덟 번째 숙제
5년 후, 10년 후, 20년 후, 30년 후의 내 미래의 삶을 상상해 A4용지 3장 분량의 미래 자서전을 써보세요.

엄마는 초췌해 보였다. 어젯밤 아빠의 정리해고 선언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 밤새도록 엄마·아빠 방에서 큰소리도 났다가 흐느낌도 들려와 나도 잠을 잘 수 없었다. 엄마가 대충 반찬통과 찬밥을 식탁에 올려둔 것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중에도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이제 우리 집 망한 건가? 앞으로 어떡하지? 세계일주를 갈 수 있을까?’ 시름에 잠긴 표정이던 엄마는 책가방을 메는 내 뒤통수에 한마디를 던졌다.

“어제 지나 엄마가 전화했어. 지나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울고 있다고…. 문정혁이라는 애 때문이라던가… 참! 그런데 학원 원장님 아프시니?”

“어… 늦었다! 저 다녀오겠습니다!”

“어머, 너 양말 신고 가야지!”

수업 시작 전, 선생님이 오늘은 짝꿍을 바꾸는 날이라고 말씀하셨다.

“선생님! 저희 이번에는 원하는 사람끼리 앉으면 안 돼요?”

문정혁이었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의 정혁이는 나를 보며 윙크를 했다. 난 피식 웃으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여러분이 원한다면 이번 한 달만 원하는 친구와 함께 앉을 수 있도록 해줄게요. 단, 남학생은 남학생끼리, 여학생은 여학생끼리 앉기로 해요.”

“왜요? 그런 게 어딨어요?”

또 정혁이었다. 나와 정혁이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남자 여자 같이 앉으면 싸우고 삐치고 하다가 공부에 집중을 못하잖니. 자, 준비됐으면 일어나서 자리를 바꿀까요?”

교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모두 일어나 두리번거리는 사이, 나는 지나에게 다가갔다.

“지나야 우리 같이 앉자!”

지나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매섭게 노려보더니 책상을 탁 치고 일어나 다른 아이에게 가 버렸다. ‘어? 지나가 왜 저러지?’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짝꿍을 찾아야 했다. 다른 친구들에게 함께 앉자고 눈빛을 보냈지만 모두들 내 시선을 피했다. ‘다들 왜 이러지?’ 머리가 어지럽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다들 짝을 찾아 자리에 앉는 가운데 멍하니 서 있다가 한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 반 공식 왕따인 전민정이었다. 늘 허름한 옷을 입고 표정이 어두운 아이. 아이들과 말도 안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는 아이. 종종 준비물을 안 가져와서 선생님에게 혼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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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혜승(떠다니는 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마지막 남은 빈 자리에 앉자 민정이도 내 옆에 앉았다. 정혁이가 걱정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부끄러운 마음에 고개를 돌렸다. 괜찮은 척 활기차게 민정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민정아, 한 달 동안 잘 부탁해.”

“응….”

민정이는 어색해 하며 손을 내밀었다. 멀리서 지나가 나를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초조한 오전시간이 지나 급식시간이 됐지만 여전히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아이들은 내 곁에 오려다가도 지나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결국 혼자 앉아 있던 민정이 곁에 앉는 순간, 눈물이 툭 떨어졌다.

“나디아! 너 우냐?”

문정혁이였다. 쟤는 왜 하필 지금…. 마치 아이들의 수군거림이 귓가에 들려오는 듯했다.

“말 걸지 마.”

“야! 너 대답해줄 거 있잖아.”

“넌 눈치도 없니? 이게 다 너 때문이라구!”

“이게 왜 나 때문이야?”

정말 모르는 걸까? 이 상황을 어떻게 말하지? 내가 말없이 밥만 먹자 정혁이는 아무 말 없이 나가버렸다.

너무나 긴 하루였다. 교문을 나서는 순간,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주저앉고 싶을 따름이었다. ‘꿈꾸는 지구’ 카페로 가는 골목에서 키츠가 ‘야옹’하며 반기자 참고 있던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내가 뭘 잘못했지? 지나는 그렇다 쳐도 왜 다른 애들까지 나를 따돌리는 거야? 정혁이는 이제 나를 싫어하겠지? 사귀자고 한 걸 취소할지도 몰라. 앗, 그러고 보니 꿈 부자 언니에게 약속한 세계일주 준비노트엔 손도 못 댔네. 아빠가 일자리를 잃었는데 여행을 갈 수 있을까?’

딸랑~ 하고 카페 문이 열렸다. 달랑거리는 방울 장식이 달린 붉은빛 스카프를 두른 언니는 더더욱 이국적인 모습이었다.

“우리 디아 왔구나~! 이제는 이상하게 이 시간만 되면 디아가 기다려진다니까?”

“우와… 언니 옷 정말 이뻐요!”

“고마워. 오늘은 드디어 지하 라운지가 다 준비되었단다~! 구경해볼래?”

“여기에 지하가 있어요? 내려가는 계단이 안 보이는데요?”

“내가 특별한 마법을 걸어놨지~!”

언니는 책장의 한쪽을 밀었다. 마치 마술처럼 책장이 회전하면서 신비한 빛을 뿜어내는 등이 걸린 계단이 나왔다. 계단을 내려가자 태어나서 한번도 보지 못한 이국적인 공간이 보였다. 천장엔 보랏빛 실크가 걸렸고 사방에서 조명들이 신비로운 빛을 뿜어냈다. 카펫과 쿠션이 깔린 바닥 곳곳엔 키 작은 황동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와… 이게 다 뭐예요? 이런 거 처음 봐요!”

“북아프리카 모로코 스타일로 라운지를 만들어봤어. 어른들이 밤에 이야기도 나누고 공연도 할 수 있게끔. 그나저나 디아의 세계여행 준비노트는 시작했니?”

“… 언니 저 사실은….”

갑자기 나도 모르게 엉엉 울어버렸다. 마치 어젯밤 자그마한 식당에서 꺼이꺼이 울던 아빠처럼,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한참을 아무 말 없이 나를 꼭 안아주며 눈물을 닦아준 언니는 조용히 어딘가로 가더니 지글지글 소리를 내는 꼬깔 모양의 도자기를 들고 돌아왔다.

“자, 이것 좀 먹어봐. ‘시련을 펄펄 끓여 열정을 부글부글 끓어오르게 하는 양고기 따진’이야.”

“따진…이 뭐예요?”

“모로코식 찜요리 랄까? 이 뚝배기 같은 것에 양고기와 살구 등을 넣고 200도 뜨거운 오븐에서 푹 고으면 양고기 특유의 비린내가 사라지고 야들야들해지지. 삶의 시련들도 마찬가지야. 그 순간엔 너무 끔찍해서 손댈 수 없는 힘든 일들도 시간이 지나면 더 큰 열정의 원동력이 되는 거거든.”

“그렇지만… 어떻게 견뎌요? 전 당장 내일 학교 가기가 두려운걸요.”

“이걸 먹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걸? 먹고 나서 얘기해보자.”

입맛은 없었지만 억지로 한 숟갈을 먹었다. 양고기는 질기다고 들은 것 같은데 놀랍게도 소고기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가끔 씹히는 말캉한 살구의 단맛 역시 진한 국물과 부드러운 고기를 감싸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먹는 모습을 흐뭇한 모습으로 지켜보던 언니는 말을 이어갔다.

꿈꾸는 지구 레시피 ⑧

시련을 펄펄 끓여 열정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게 하는 양고기 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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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올리브오일 2스푼, 양파1, 마늘2, 코리앤더, 양고기(다리) 600g, 호박 200g, 말린 살구 200g, 토마토 400g, 양고기 혹은 소고기 육수 500ml, 레몬즙 1스푼, 쿠스쿠스, 요거트 팁 ‘따진’은 모로코 전통 도자기 그릇에 요리하지만 뚝배기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요리법 1뚝배기에 기름을 두르고 썬 양파와 마늘을 볶는다. 2양고기·호박·살구를 함께 넣어 볶은 후 육수와 으깬 토마토를 부어 끓인다. 3뚜껑을 덮은 채 200도 오븐에서 1시간 정도 조리한 후 1시간 정도 저어주고 30분 더 조리한다. 4레몬즙과 코리앤더를 얹고 쿠스쿠스와 요거트를 곁들인다.

“언니가 전에 인도 영화 출연이라는 꿈을 안고 뭄바이에 간 적이 있어. 현지 말도 모르고 아는 사람 한 명 없는데 무작정 가서 100명의 영화 관계자들을 찾아 다녔지. 다들 나를 미쳤다고 했어. 동양인 얼굴의 배우를 필요로 하는 역할 자체가 없었으니까. 여기저기서 거절당하고, 심지어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마저 당하자 화가 나서 1주일간 밥도 못 먹었지.”

언니의 눈빛은 차분했다. 수백여 개 구멍 사이로 빛을 뿜는 등이 깜빡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했단다. 소설, 영화 할 것 없이 모든 명작을 보면 주인공이 편하게 잘 먹고 잘 살다 죽는 경우는 없어. 엄청난 시련이 주어지지만 주인공은 그것을 이겨내지. 그렇다고 시련 때문에 주인공이 꿈을 포기하고 한평생을 남 탓 사회 탓 하고 살아간다는 이야기 들어봤니?”

“없는 것 같아요.”

“마찬가지야. 인생이 한 편의 영화라면, 우리는 그 영화의 감독이자 주인공이야. 영화 내용을 스스로 결정할 거란 말이지. 힘든 일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래서’ 포기할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할 것인지 우린 선택할 수 있단다. 그 선택에 따라 명작과 졸작이 나뉘어.”

‘선택’이란 소리에 어젯밤 아빠의 말이 떠올랐다. ‘선택을 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야…’, ‘디아야 너만큼은 매끼 진수성찬을 먹었으면 좋겠어….’

“나도 인도영화라는 내 인생의 한 챕터를 반전으로 만들기로 했어. 유명한 감독님을 설득해 나를 위한 배역을 만들게 하겠다는 시나리오를 미리 쓰고, 수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 그걸 현실로 만들었지.”

내가 생각에 잠기자 언니는 말을 멈추고 내 눈을 한참 빤히 쳐다보았다.

“디아야, 넌 네 인생을 어떤 영화로 만들고 싶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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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작가]

김수영은 작가이자 여행가. 기업인, 콘텐트 제작자로도 활동 중이며 80여 개국을 여행한 꿈쟁이이자 사랑쟁이. 한때 중학교도 자퇴한 문제아였으나 꿈이 생긴 후 독학으로 공부해 최초로 골든벨을 울렸고, 연세대에 진학했다. 암 수술 후 ‘해외에서 커리어 쌓기’ ‘부모님 집 지어드리기’ ‘다큐 제작’ ‘킬리만자로 & 에베레스트 등반’ 등 73개의 꿈 목록을 만들고 지난 10년간 61개의 꿈에 도전했다. 저서로는 『멈추지마 다시 꿈부터 써봐』 『드림레시피』 『당신의 사랑은 무엇입니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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