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불법 파업에 부총리가 웬 협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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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조흥은행 파업 협상에 김진표 경제부총리가 협상 파트너로 나선 것은 정부가 주장해온'법과 원칙'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행동이다. 공적자금이 2조7천억원이나 투입된 은행의 직원들이 매각을 반대하며 파업을 강행해 고객과 은행 경영, 금융시스템에 위협을 가한 일은 명백한 불법이다.

정부도 엄정 대처 입장을 수차 밝혔다. 그러나 경제부총리가 노조와의 협상에 직접 참석함으로써 노사 문제에 정부가 개입하는 나쁜 선례를 남기는 동시에 불법 파업을 합법한 것으로 인정하는 우(愚)를 범했다.

물론 조흥은행 문제는 협상 주체가 모호한 부분은 있다. 은행 매각에 조흥은행 경영진이 나설 수도 없고, 아직 주인도 아닌 신한금융지주가 주체가 될 상황도 아니다.

또 부총리가 참석해야 한다는 노조 측 요구가 있었으며, 국가 경제를 위협하는 사태에 부총리가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보여줄 필요성도 인정한다.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불법 파업에, 그것도 고용승계 등 구체적 경영 사안들을 협의하는 밤샘 협상에 부총리가 자리를 함께 한 것은 결코 현명한 판단이 아니었다.

두산중공업 등의 예에서 보듯 현 정부 출범 이후 노사 관계는 정치적 판단과 정부의 친노(親勞)적 개입 때문에 원칙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노조가 합작투자나 경영권 문제에 개입하는가 하면, 공기업 민영화에 반대해 파업에 나서는 등 시장경제 시스템 하에서는 납득하기 힘든 행동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는 또 외국인 투자자들의 발길을 돌리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노사 관계가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법과 원칙이 존중돼야 한다. 정당한 노조의 요구는 적극 수용하되, 불법 행위는 가차없는 대처와 책임 추궁이 따라야 한다.

본격적인 하투(夏鬪)를 목전에 둔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이 불법 노동행위에 대해 엄격하게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를 계기로 노사 관계에 법과 원칙을 보다 분명하게 적용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을 정부에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