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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와 함께 호랑이 포효 연구…현대차 사운드디자인 리서치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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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엔 시동을 끄고 30초만 늦게 내려볼 것. 쏘나타는 원래 그렇게 타는 겁니다.”

2013년 EF 쏘나타는 차 안에서 듣는 빗소리를 내세우며 세상에 등장했다. 1998년 “어떤 길을 달리는지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라며 정숙성을 광고하던 EF 쏘나타의 변신이었다. ‘무소음’을 뜻하던 정숙성의 정의가 ‘듣기 좋은 소리’로 변해온 것이다.

현대차 사운드디자인 리서치랩에선 방향지시등 깜빡이 소리부터 선루프 열리는 소리까지 디자인된다. 박동철 연구위원은 “광고 음악부터 현대차가 참가하는 전시회 테마 음악까지 모든 소리는 브랜드 정체성을 입는 과정을 거친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사운드디자인 리서치랩에선 기계공학도들과 작곡가 출신 디자이너가 함께 일하고 있다. 연구원 선발시 음반 제작이나 음악 동아리 경험을 고려하기도 한다. 박 위원은 “시각보다 청각 요소가 정보 전달에서 비중이 크다”며 “백호(白虎)의 울음소리를 본뜨는 ‘바이오 미메시스(모방)’와 같은 다양한 방식이 시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음악적 감각을 지닌 인재들과 더불어 10억원을 들인 사운드 스튜디오나 최신 시뮬레이터는 사운드 디자인의 기술적 기반이다.

박 위원은 “해외 자동차 회사 대부분이 소리 개발을 외부 업체에 맡기는데 현대차에선 오롯이 내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뉴 벨로스터'의 엔진사운드 이퀄라이저는 내부의 격한 반대를 뚫고 탄생했다. 몇년 전 BMW에서 처음 인공 엔진음을 내놓았을 때 시장에서 비난이 일었던 것과 비슷한 이유였다.
박 위원은 “음악계 일부가 신디사이저를 악기로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인공 엔진음에 대한 천시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뉴 벨로스터는 80여 회에 걸친 전문가·일반인 시승회의 피드백을 통해 단련되는 과정을 겪으며 완성도를 높여야 했다.

요즘 이 곳은 보행자 보호를 위한 전기차 가상 엔진 사운드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박 위원은 “향후 7~8년치 개발 계획도 미리 짜놓고 있다”며 “소리를 요리하는 기술이 더 많은 차량의 곳곳에 스며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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