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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냄새' 물씬한 생물학 에세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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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여린 감성보다는 정곡을 찌르는 솔직.담백이 우세인 분위기다. 인기 에세이를 읽어보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떨어지는 낙엽 한 장에도 '파르르' 떨던 예전 감성 대신 세상에 딴지걸 듯 한마디씩 툭툭 던지는 진솔함이 매력으로 통한다. 본인은 마다할지 모르지만, 생물학자 최재천(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지금 시대에 가장 각광받는 에세이스트의 한명이 아닐까 싶다.

중.고교 교과서에 실렸다는 그의 글 뿐 아니라,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효형출판) 등 그가 쓴 책들이 10대부터 중년 독자까지 읽히는 것을 봐도 그렇다. 월간 '현대문학'에 연재했던 글을 모은 '열대예찬'은 최교수의 어린 시절, 젊은 시절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기 이전에 코스타리카.파나마 등 열대 연구소에서 민벌레, 길이 3m에 달하는 뱀 부시매스터 등을 관찰하며 보낸 20여년을 추억하며 쓴 글이다. 그의 기억은 열대정글을 휘젓다가, 강릉 고향집으로 되돌아가기도 하고, 통기타 메고 노래 부르던 친구와 어울리던 학창시절 기억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작가도 아닌 그가 쓴 글이 어째서 흡인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일까. 방학만 되면 친가 강릉으로 내달아 1년의 석달 반을 꼬박 그곳에서 쇠똥구리.노루.가시고기를 보며 지냈다는 최교수. 어른이 되어도 이 쇠똥구리 친구들을 계속 보며 살 수는 없을까 고민하다가 작가가 되려했다는 문학지망생이 그이다.

여기에 유머 감각과 순수함까지 묻어나니 인기를 끌 수밖에 없다. 또 그가 인간 사회에 빗대어 들려주는 동물, 곤충 이야기의 정보량은 얼마나 무궁무진한지.

'섹스와 기생충'이라는 에세이 한토막을 보자. 코스타리카 늪지대에서 연구하다 모기가 새까맣게 들러붙은 밥을 모르고 먹은 이야기, 초록색 테이프로 몸에 붙은 진드기를 떼내 누가 더 많이 달고 있었는지를 내기걸어 파나마 맥주를 상으로 마시던 에피소드를일단 들려준다.

그러다 이야기는 섹스라는 주제로 튄다. 생물학자들도 섹스의 진화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인간이 섹스를 즐기는 이유를 '종족 보존 본능'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최교수를 비롯한 생물학자들의 생각은 그렇지가 않다. 싸워도 죽지 않을만큼만 물어뜯는 맹수, 새끼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동물들을 보면 무조건 종족 보존 행위로 규정하고 마는 것은 단순논리다. 그러면서 최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적어도 나는 인류의 종족 보존을 생각하며 안사람과 잠자리를 같이 한 적은 없다"고.

딴은 인간이 암수로 나뉘어 서로를 갈구하게 된 까닭이 기생충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시작한 글이다. 진화 속도가 빠른 기생충에 맞서려고 인간은 새로운 유전자 조합을 만들 수 있게 암수로 나뉘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그가 펼쳐놓은 글 마당에 빠지면 그가 앞서 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를 까먹을만큼 빠져들고 만다.

또 책은 "나는 진정 영원한 촌놈"이라고 외치는 최교수의 성격과 생각을 읽어볼 수 있게 한다. 본인이 가지 못한 길 하나가 '춤의 길'이었다며, 연구소에서 벌어진 할로윈 파티에서 암컷 하루살이를 중심으로 춤기둥을 이루는 하루살이 수컷들처럼 밤새 춤을 췄던 이야기에서는 의외의 파격을, 잎꾼 개미 행렬을 쫓다 정글에서 길을 잃을 뻔한 대목에서는 그의 학자적 집요함도 엿볼 수 있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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