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장 권한 침해 말라' 민원 나오자 스스로 교장 된 서울 사립고 이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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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사립 고교에서 설립자 2세가 이사장을 맡으며 학교 운영에 지나치게 관여해 교사들이 '학교장 권한을 침해한다'고 문제를 제기하자 이사장이 스스로 교장을 맡는 일이 일어났다. 서울시교육청은 '이사회 임원이 학교장 권한을 침해할 경우 교육청이 임원 승인 취소를 요구할 수 있다'는 규정에 따라 이사 임원 신분 취소와 교장직 해임을 해당 학교법인에 요구했다.

서울교육청은 서울 중구의 한 사립고인 H고 감사결과를 20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학교 설립자 딸인 김모씨(60)는 2012년 이 학교 재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이사장이 된 김씨는 학생 등교시간과 교사 출근시간을 앞당기는 등 학교 운영에 깊숙이 관여했다. 학교통신망을 통해 2, 3일 단위로 학사일정, 학생수련활동, 학교운영위원회 안건 등을 세세히 보고받기도 했다. 또 교과별 교사 모임, 학년별 교사 간담회, 간부 교사 회의 등 교사들 회의에도 직접 참석했다. 학사 일정에 없던 축구대회 개최를 학교에 지시하고 학기 중에 보직교사를 교체하기도 했다.

이를 참다 못한 이 학교 교사 53명이 지난 7월 16일 서울교육청에 "재단 이사장이 학교장 권한을 침해하고 있다. 우리 학교를 감사해 달라"고 민원을 제기했다. 교육청 감사가 시작되자 김씨는 8월 7일 이사회를 소집해 "이사장직을 사임할 테니 나를 교장에 임명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사회는 김씨가 이사장직을 사임하되 이사 신분은 유지하고 이 학교 법인 소속의 중·고교 교장이 되도록 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김씨는 지난 9월 1일 이사장에서 학교장으로 직함이 바뀌었다. 하지만 학교 홈페이지에선 20일 오전까지도 김씨를 이사장으로 소개하고 있다. 김씨는 교육청 감사에서 "이사장의 권한이 어디까지인지 잘 몰랐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교사들은 “이사장에게 '부당하게 학교 운영에 관여한다'고 문제 제기를 했으나 이사장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교육청 감사가 시작되고서 스스로 교장이 된 것은 황당한 처사"라고 주장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사는 “학교를 명문고로 만들기 위한 취지였는지 모르지만 이사장의 행동은 교사들의 권한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학교의 명예를 떨어뜨렸다”고 말했다.

이 학교 학생들도 이사장이 '만기친람' 행태를 보였다고 본지에 증언했다. 이 학교의 한 1학년 학생은 "이사장님이 매일 교실을 돌며 잠자는 아이를 깨웠다"고 말했다. 이 학교의 3학년 학생은 "이사장님이 학교 축제 등을 놓고 선생님들과 갈등을 빚다 결국 자기 뜻대로 결정을 했다. 이사장님이 지난 9월 교장이 된 뒤에 학교 분위기가 더욱 나빠졌다”고 말했다.

본지는 학교 측을 입장을 듣고자 했으나 학교 관계자들은 "아무말도 하지 않겠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백민경 기자 baek.mi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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