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만 그루 싹둑 … 제주도 재선충 몸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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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는 2013년부터 최근까지 재선충병 소나무 106만 그루를 베어냈다. 사진은 제주시 해안동에서 병에 걸려 말라 죽은 소나무를 처리하는 모습. [사진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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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선충을 옮기는 솔수염하늘소.

지난 10일 제주도 북부인 제주시 오라동 민오름(해발 250m) 인근. 군데군데 밑둥만 남은 소나무가 보인다. ‘소나무 에이즈’라 불리는 재선충병에 걸린 나무들을 베어낸 자리다. 벌목된 소나무 때문에 이 부근을 높은 곳에서 보면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빠진 머리처럼 보일 정도다.

1년새 소나무 54만 그루 발생
전국서 발생한 피해 3분의 1
처리 못한 고사목 29만 그루
예산 부족, 파쇄 늦어져 비상

 그게 전부가 아니다. 가지가 힘없이 처진 채 말라죽은 소나무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재선충병에 걸렸지만 잘라내지 못한 소나무다. 오라동 민오름뿐 아니라 제주시 건입동 사라봉과 화북1동 별도봉쪽도 등산로 초입부터 말라죽은 소나무가 늘어서 있다.

 제주도가 재선충병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13년부터 올해까지 3년간 재선충병에 걸려 베어낸 소나무가 106만 그루에 이른다. 이미 말라죽었지만 아직 손대지 못한 나무도 29만여 그루다. 지난해 5월부터 올해 4월까지 전국에서 발생한 재선충 고사목 174만 그루 중 약 3분의 1인 54만4000그루가 제주도 소나무다.

 소나무가 사라지면서 산사태와 지하수 부족을 우려하는 소리가 나온다. 나무가 없으면 폭우 때 산사태에 취약하기 마련이다. 김찬수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장은 “숲이 잘 조성되면 뿌리 때문에 땅 속에 공간이 많아져 빗물의 35% 정도가 지하수로 흘러들어가지만, 나무가 없으면 빗물 대부분이 땅 표면을 타고 흘러내려 10%만 지하수가 된다”고 말했다. 나무가 줄면 지하수 역시 줄어든다는 얘기다. 지하수를 식수·생활용수로 많이 쓰는 제주도에서 소나무를 걱정하는 이유다.

 환경도 변하고 있다. 침엽수인 소나무가 베어진 자리에 활엽수인 후박나무 등이 자라기 시작했다. 이런 나무들은 아직 어려 큰 소나무처럼 산사태를 막아주고 빗물이 지하수로 흘러들 공간을 만들어주는 역할은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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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선충병은 1988년 부산시 금정산에서 처음 발견됐다. 처음엔 크게 번지지 않다가 2005년부터 기승을 부렸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온난화와도 연관된 것으로 보고 있다. 재선충병을 옮기는 곤충인 ‘솔수염하늘소’가 평균 기온 25도 이상일 때 빠르게 번식하기 때문이다. 온난화로 국내에서 평균 기온 25도 이상인 날이 많아지면서 재선충병을 퍼뜨리는 솔수염하늘소 숫자가 많아졌다는 설명이다.

 전국적으로 보면 재선충병은 2013년을 고비로 사그라드는 추세다. 하지만 제주도에서는 갈수록 병에 걸려 죽는 나무가 늘고 있다. 재선충병 때문에 베어낸 소나무가 2013년 22만1100그루에서 지난해 45만5700그루로 늘었고, 올 들어서는 지난 4월까지 38만3000그루를 처분했다. 제주도 측은 “일손이 부족해 병에 걸린 나무 모두를 베어내지 못했고, 베어낸 나무도 솔수염하늘소를 완전히 없애기 위한 약품·파쇄 처리를 충분히 못해 자꾸 병이 번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병에 걸린 나무를 다 처리하지 못해 계속 다른 나무에 병이 옮는 일종의 악순환에 걸렸다는 의미다.

 당장 올해도 비상이다. 오는 15일 시작하는 3차 방제에서 모두 29만여 그루를 처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예산 143억원이 필요하지만 현재 93억원만 확보한 상태다.

제주=최충일 기자 choi.choo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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