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올바른 한국사 교과서’의 전제조건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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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가 12일 중·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방침을 발표했다. 내년 11월 말까지 집필을 끝내고 2017년 3월부터 이른바 ‘올바른 한국사 교과서’를 보급하겠다는 계획이다. 국정교과서는 개방성·다양성·창의성을 위해 역사해석의 권한을 민간이 향유하고 있는 국제적 흐름에 역행한다. 전 세계적으로 북한과 베트남 등 극소수 국가만이 채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국정교과서를 강행하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다. 하지만 이왕 발행하기로 결정한 만큼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다음과 같은 전제 조건을 충족시킬 필요가 있다.

 첫째, 실력과 균형감을 갖춘 최고의 필진을 구성해야 한다. 현재 검정교과서의 필진은 대개 교수 두세 명에 교사 서너 명으로 돼 있다. 이 정도의 필진으로는 편향성에 치우칠 위험이 있고, 정확성도 기대할 수 없다. 대부분의 기존 검정교과서는 좌편향된 기술로 논란을 일으켰다. 교육부는 국정교과서의 질을 높이기 위해 국사편찬위원회를 책임 편찬기관으로 지정할 계획이다. 국사편찬위는 1974년부터 2010년까지 국사교과서를 편찬했던 기관이다. 하지만 과거 국정교과서도 친일사관, 독재 미화 논란이 있었던 만큼 균형감 있는 필진을 구성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둘째, 논란이 많은 현대사 비중은 현재보다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육부도 현재 5대5인 고대·중세사와 근현대사 비중을 6대4로 바꾸기로 했다. 하지만 아직 역사의 당사자와 직계후손이 살아 있는 상황에서 해방전후사나 현대사를 중·고교 과정에서 자세히 가르쳐야 할지는 고민해야 한다. 특히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견해가 맞서는 사실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셋째, 객관적 사실에 대한 검증을 강화해야 한다. 기존 검정체제에서도 좌편향과 우편향 교과서 모두 1000개가 넘는 오류가 나왔다. 교육부의 수정명령 요구에 6종 교과서 집필진 12명이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1·2심에서 패소했는데도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명백한 오류도 인정하지 않으면서 다양성을 주장하는 것은 소비자(학생)를 아랑곳하지 않는 공급자(집필진·출판사)의 독선이다. 최소한의 품질을 담보하지 못하면 교과서 발행 방식에 상관 없이 논란과 비난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국정교과서의 순수한 집필 기간이 채 1년도 안 된다는 점이다. 2020년까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세계사와 일본사를 합친 역사총합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일본과 대조적이다.

 정쟁에 휘말릴 경우 기한 내 정상적인 집필이 어려울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을 우려해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조차 국정교과서에 부정적인 의견을 낸 바 있다. 검정제가 순리라는 얘기다. 국정교과서는 5년마다 정권이 바뀌면 정권의 입맛에 맞게 수정될 우려도 있다. 만약 시간에 쫓겨 국정교과서에도 오류나 편향 논란이 발생한다면 졸속 발행을 주도한 정부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