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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꾸준히 증가하는 고령택시기사 사고…업계 반발로 면허 갱신도 엄격히 못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0일 오후 7시 10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주차장 입구. 갑자기 들이닥친 검은색 그랜저 모범택시가 입구에 주차돼있던 포르셰 파나마라·포르셰 카레라4S 등 고급차들을 잇따라 들이받았다. 모범택시 운전자는 올해 75살 된 서모씨. 즉시 출동한 경찰에 의해 현장에서 검거된 서씨는 사고 직후 경찰 조사에서 “내가 운전 경력이 40년인데, 차량이 급발진하며 사고가 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이 사고 당시 영상을 확인한 결과는 달랐다. 주차장 입구에 들어선 택시 차량이 급격한 가속 없이 차량들을 들이받은 것이다. 영상을 확인한 경찰이 서씨를 추궁하자 그는 그제서야 전방 부주의로 인한 과실을 인정했다. 이 사고로 포르셰 카레라4S는 앞범퍼가 파손됐고 파나메라와 에쿠스는 뒷범퍼와 차문이 찌그러져 수리비만 5000만~7000만원에 달하는 상황이었다. 서씨는 경찰 조사에서 "개인보험으로 사고 비용을 처리하겠다"고 했지만 이는 보험사의 배상 한도를 초과하는 금액이다.

지난 1월 경북 안동에서도 택시 기사 김모(75)씨가 운전한 택시가 할인마트로 돌진 해 시민 4명이 부상당한 사고가 일어났다. 김씨 역시 급발진을 주장했다. 그러나 블랙박스 영상을 조사한 경찰은 김씨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로 잠정 결론냈다. 당시 영상에서 천천히 움직이던 김씨 차량이 갑자기 속도를 냈기 때문이다.

65세 이상 고령의 택시 운전 기사가 교통사고를 내는 경우가 늘고 있다. 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2010년 2140건이던 고령 택시운전 기사 사고는 2012년 2891건으로 증가하더니 2014년 3832건으로 늘었다. 그러나 고령 운전자의 면허 갱신 제도는 여전히 미흡한 상황이다.

◇고령 택시 운전 기사 사고 현황

※단위 건

기사 이미지

자료: 교통안전공단

도로교통공단이 실시한 운전정밀검사 결과 고령 운전자일수록 차량 속도에 둔감하고 장애물 회피·긴급 대처 능력 등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큰 문제는 고령인 택시 운전기사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1년 774명이던 70대 이상 택시 기사는 2014년 1만6177명으로 증가했다. 이는 지난해 집계된 전국 택시 운전 기사(28만 4077명) 수의 약 5.7%에 해당하는 수치다. 65세 이상(4만8946명)을 합치면 전체의 21.8%로, 5명 중 1명은 65세 이상의 고령 택시 운전자인 셈이다.

우리나라보다 고령화가 일찍 진행된 해외의 경우엔 고령 운전자에 대한 자격 기준을 엄격히 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1998년부터 운전면허 자진반납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또 고령운전자는 의무적으로 운전 교육을 수강해야 면허 갱신이 가능하다. 운전 교육에는 동체시력·야간 시력·반응 속도 등을 검사하는 프로그램이 포함돼 있다. 미국 일리노이주나 뉴햄프셔 주의 경우 75세 운전자는 도로주행시험을 통과해야 면허 갱신이 가능하다.

지난 2014년 국토교통부도 65세 이상의 버스 운전 기사의 경우 2016년부터 3년마다 자격 유지 심사를 받도록 운수사업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그러나 택시 운전 기사는 해당되지 않는다. 국토부는 "택시업계의 반발이 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 국토부 관계자는 “택시는 개입택시 업계의 반발이 심해 지속적인 협의를 거치면서 적용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는 2011년 65세 이상 택시 기사들에 대한 운전정밀검사를 강화 방안을 국토부에 건의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를 반영한 정책은 나오지 않았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 4월 65세 이상 운전자의 자격을 3년마다 갱신하는 제도를 국토부에 재차 건의했지만 이 직후 개인택시 운전들이가 국토교통부 앞에서 1인 시위를 펼치는 등 반발이 심한 상황이다.

도로교통공단 책임연구소 관계자는 “65세 이상 고령자는 비고령자에 비해 반응속도에서 60%차이가 발생했다”며 “고령 시기엔 운전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병현 기자 park.b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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