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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자본은 악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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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우리 사회의 반외자(反外資) 정서가 심상치 않다. 경영권 방어를 위한 기업들의 경계의식에 정치권과 일부 시민단체의 묵은 반감이 맞물리면서 외국자본 '때리기(bashing)'로 비화하는 양상이다. 외국자본의 부정적 측면들이 집중 부각되면서 '경제 민족주의' '신흥 국수주의'라는 말도 거침없이 나돈다. 경제에 보탬만 된다면 외국자본이든 국내자본이든 상관없다고 우리 모두 입을 모은 적이 언제였던가.

1997년 외환위기 극복에 외국자본은 '구세주'였다. 물론 이 과정에서 단기 차익을 노리는 일부 '투기성' 펀드가 활개치고, 손발이 묶이고 여력이 없어진 국내 기업들에 상대적 박탈감을 안긴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외국자본의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했던 우리 경제의 비용이기도 했다.

국내시장에서 외국인의 존재와 영향력은 날로 커지고 있다. 시중은행 8개 중 3개가 외국인 소유이고 나머지 5개 중 4개는 외국인 지분이 절반을 넘는다. 주식시장의 외국인 보유비율은 40%대에 이르고, 상장기업 10개 중 1개꼴로 외국인 지분이 국내 최대주주의 지분을 웃돈다. 외국인 보유 토지는 외환위기 당시 여의도 면적의 6배 규모였으나 지난해 말 현재 18배로 늘었다. 싫든 좋든 외국자본은 이미 우리 현실경제의 중요한 일부가 돼 있음을 뜻한다.

이들 외국자본의 폐해와 부작용은 물론 최소화해야 한다. 그렇다고 외국자본을 양질의 자본과 투기자본으로 구분해 대응을 달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자본은 선악(善惡)을 넘어 어디까지나 자본이고 항상 투자와 투기의 양면성을 갖는다. 제일은행과 한미은행을 인수해 막대한 차익을 남기고 판 뉴브리지캐피털과 칼라일은 주주가 수십, 수백 명에 불과한 '사모펀드'들이다. 외국의 망한 은행을 사들이는 것은 국제금융가의 큰손들 입장에서도 대단한 모험이다. 리스크 높은 곳에 투자해 고수익을 노리는 것이 이들 사모펀드다. 제일은행과 한미은행이 스탠다드차타드 및 씨티은행에 재매각된 것은 이들이 인수해 리스크를 줄였기 때문이다. 자본시장을 개방한 이상 별별 투자자가 드나들게 마련이고 특정 펀드들을 투기세력으로 지목해 출입을 막을 수는 없다.

수천억원의 차익을 내고도 세금 한 푼 내지 않는 외국자본의 행태는 우리 정서상 용납하기 어렵다. 이들은 편법으로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세우고 법망을 우회한다. 따라서 이들이 과세를 회피하는 제도적 허점을 찾아 글로벌 기준에 맞게 보완하는 게 근본적인 방책이다. 한국적 투망식 세무조사로 접근하는 것은 무리다.

증시에서의 막대한 시세 차익에다 고율 배당 등 '국부 유출'도 걱정되지만 그만큼 우리 기업이 글로벌화하고 주주 및 기업가치가 올라가는 긍정적 효과도 무시하지 못한다. 오늘의 반외자 정서는 외국자본 우대에 따른 국내기업 역차별에 큰 원인이 있다. 따라서 역차별을 시정해 적대적 인수합병에 맞설 수 있도록 국내기업들의 체질 강화가 시급하다. '방파제 쌓기'가 능사가 아니고 외국자본의 밀물.썰물에 따른 글로벌 파도 타기에 우리 기업과 경제가 익숙해져야 동북아 금융허브도 가능하다.

문제는 기업계의 역차별 하소연에 편승해 경제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반외자 포퓰리즘이다. 외국자본의 양적 확대는 우리 경제의 변동성이 그만큼 높음을 의미한다. 섣부른 자주와 반외자 포퓰리즘이 상승 작용해 안보와 경제를 함께 위험에 빠뜨리는 대재앙을 경계해야 한다.

변상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