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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칼럼] 노벨이 노벨상을 만든 이유? 대형 오보 덕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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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1888년 프랑스 한 일간지에 부고(訃告)가 실렸다. “죽음의 상인, 알프레드 노벨 서거하다.” “숱한 생명을 순식간에 날려버리는 폭약의 발명가가 죽었다.”는 기사에 노벨(Alfred Nobel, 1833-96)은 충격에 빠진다. 죽은 사람이 자신의 부고를 읽을 수는 없을 터, 어찌 된 영문이었을까. 루드비히의 사망을 잘못 알고 몇 개 대형 오보를 냈기 때문이었다.

다이너마이트를 비롯해 350종의 특허를 낸 기업가이자 과학자인 노벨은 그 부고를 계기로 재산의 94%(2012년 기준 4억7천2백만 달러)를 기부해  노벨상을 제정하라는 유언을 남긴다. 그래서 1901년부터 스웨덴의 노벨상이 수여되기 시작한다.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이 상의 상금은 재단의 재정상 2012년부터 우리 돈으로 11억3천만 원으로 내려갔다.

‘죽음의 상인’에 관련해서는 또 다른 에피소드가 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폭약 군수산업으로 사세를 확장한 듀퐁(Du Pont)사는 1934년 미국 상원 특별의원회에 불려 다니며, 죽음의 상인이란 비난을 받으며 곤혹을 치른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이 맨해튼 프로젝트로 원폭 생산시설을 설계하고 건설하는 과정에서 듀퐁사는 산업체로서 참여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그러나 듀퐁사는 그 시절의 악몽 때문에 망설인다.

그러다 결국 1942년 플루토늄 생산 공장 건설에 참여하기로 하고 계약서를 체결한다. 특이하게도 “회사가 받는 수수료는 단돈 1 달러이고, 소요 경비는 정부가 조달한다.”는 것이 계약조건이었다. 당시 듀퐁의 엔지니어들은 듀퐁 호텔의 브랜디 와인 룸에 몰려가 애국심의 의무로 회사가  전혀 이익을 취하지 못하는 데 대한 애도의 술잔을 들었다고 한다.

스웨덴의 노벨상 얘기를 했으니, 최근 아시아의 노벨상이라는 대만의 탕 프라이즈(Tang Prize, 唐?)를 소개한다. 아카데미아 시니카(Academia Sinica)가 주관하는 이 상은 2014년부터 격년제로 지속가능발전, 바이오약제과학, 중문학(Sinology), 법률학(Rule of Law)의 4개 부문에 시상한다. 상금은 연구보조금까지 합쳐 노벨상보다 많은 167만 달러다. 대만 갑부 사뮤엘 인(Samuel Yin) 박사가 선친의 가르침을 받들어 1989년 재단을 설립한 후 14만 명의 교육·연구를 지원하는 사업의 하나인데, 지식 창출과 나눔으로 더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것이 목표다.

기부왕이라면 석유왕 록펠러(John D. Rockefeller, 1839-1937)를 빼놓을 수 없다. 1870년 오하이오 스탠더드 오일사를 세운 그는 공급과잉으로 석유 값이 떨어지자 경쟁사를 모조리 사들인다. 1882년에는 40여 개 기업으로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를 조직해 국내 석유 생산과 공급의 95%를 독점한다. 거기서 얻은 막대한 수익은 철도·은행·광산·산림 등에 투자해 절대 권력의 거대자본을 형성한다.

미국의 산업화 과정은 환경재난과 불가분의 관계였다. 환경재난 가운데  가장 악명 높은 것 중 하나가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의 쿠야호가(Cuyahoga) 강 화재사건이다. 타임지의 보도로 1969년에 발생한 화재가 가장 유명해졌다. 그러나 실은 1860년대 말부터 십여 건의 더 심한 화재가 잇달았던 역사를 갖고 있다. 다만 1969년 사건이 환경재난에 대한 사회적 위기감을 고조시켜 1970년 ‘지구의 날’ 제정, 1970년 미국 EPA 설립, 1972년 클린워터법(Clean Water Act) 제정 등으로 이어진 것이 언론 보도의 효과였다.

쿠야호가 강에서는 왜 그리 화재가 잦았을까.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그 당시 클리블랜드로부터 이리 호 주변 지역은 석유, 철강, 타이어, 페인트, 화학 산업 등의 산업체가 몰려 있었다. 거기서 폐기물이 쏟아져 냇가와 강으로 버려지고 있었기 때문에 불똥이 튀면 대형 화재로 번지기 알맞았다. 그 산업체 가운데 록펠러의 오하이오 스탠다드 오일사가 있었고, 록펠러는 이 지역의 20여개 정유시설을 합병한다. 정유과정에서 남는 폐기물 수십만 배럴이 인근 강변으로 흘러 나갔고, 제거할 방법도 마땅치 않았다. 당시에는 자동차가 다니기 전이라 휘발유도 정유산업의 폐기물이었다!

쿠야호가 강의 최초의 화재는 1868년에 발생하나, 대형 화재는 1883년 스탠다드 오일 정유시설에서 발생한다. 그 후 1893년 화재에서는 스탠다드 오일사가 입은 피해만 30만 달러, 다른 산업체의 피해는 5십만 달러 수준이었다. 1969년 화재는 달리는 기차에서 튄 불똥으로 발화된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뉴욕타임즈에는 “한국의 LG전자가 북미 지역 본부 신사옥의 높이를 43미터에서 21미터로 낮추기로 5개의 환경단체와 합의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건축허가도 다 받고 합법적임에도 그렇게 낮추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 배경은 신축 부지의 허드슨 강 맞은편에 있는 클로이스터즈 뮤지엄에서 바라보는 경관이 훼손된다는 이유로 래리 록펠러(Larry Rockefeller)가 반대했기 때문이라 한다. 그는 석유부호 록펠러(John D. Rockefeller Sr)의 증손자다.

그 뮤지엄은 1938년 록펠러 주니어(John D. Rockefeller Jr)가 60에이커 부지에 프랑스 등 다섯 곳의 수도원에서 가져온 자재로 중세 수도원 풍으로 건설해 기부한 명소다. 당시 허드슨강 반대편 경관을 보존하기 위해서 록펠러 가문은 뉴저지의 땅 700에이커도 사들여 기부했다고 한다. 한 때 미국의 가장 심각한 환경오염의 주범이다시피 했던 기업이 대를 이어가며 자연보호에 가장 앞서가는 선도자가 된 것이다.

19세기 말 록펠러의 기업 합병 과정에서 빚어진 저임금의 노동 착취와 무자비한 기업 죽이기는 악덕 재벌의 대명사였다. 미국에서 안티트러스트법(Sherman Antitrust Act)이 1890년에 제정된 것도 록펠러의 기업 경영 때문이었다. 결국 독점금지법 위반으로 소송에 걸리고, 1911년 연방최고재판소로부터 위반 판결을 받아 34개 회사로 해체되기에 이른다. 시오도어 루즈벨트(1901-09년 재임) 대통령은 “부의 축적과정에서 저지른 악행은 그 재산으로 어떤 자선을 하더라도 보상될 수 없다.”고 말했다 하니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던 그가 55세에 지병으로 은퇴를 한다. 중병이라고 했지만 97세까지 살았다. 당시 그의 재산은 미국 GDP의 1.5%였다.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은퇴 후 냉혈 기업인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꾼 그의 자선사업은 6대를 이어가며 또 다른 전설로 계승되고 있다. 1890년부터 막대한 기부로 시카고 대학을 명문으로 키우고 아이미 리그를 비롯한 국내외 70여 개 대학을 지원한다.

어릴 때 그의 포부는 10만 달러를 벌고 100살까지 사는 것이었다. 평생 술도 담배도 입에 대지 않은 그는 근면함으로 “얻을 수 있는 건 다 얻어라, 힘껏 저축하라, 줄 수 있는 대로 다 주라.”를 실천한 거부였다. 1913년에 설립된 록펠러재단은 세계 의료·공중보건·교육·과학연구 등의 기부천사가 된다.

록펠러 재단보다 먼저 혁신적인 자선사업 재단을 설립한 것은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1835-1919)였다. 스코틀랜드에서 14살 때 이민 온 이 소년은 이런 저런 일꺼리를 찾아다니다가 철도회사에서 일하면서 침대차 회사에 투자해 부자가 된다. 1892년에는 카네기 철강회사(Pittsburgh  Carnegie Steel Company)를 설립해 국내 철강 생산의 25% 이상을 차지한다. 1901년에는 J. P. 모건에 팔아(당시 4억8천만 달러) U.S. 스틸사(U.S. Steel Corporation)를 출범시켜 국내 철강시장의 65%를 지배하게 된다.

그가 남긴 숱한 경구 중에서 “부자로 죽는 것은 명예롭지 못하다”는 유명하다. 당시 자신의 재산 3억 5000만 달러 중 90%를 내놓았다니 배포도 크다. 1911년에 설립한 뉴욕 카네기 재단(Carnegie Corporation)은 세계 평화와 교육, 과학연구 등의 지원에 주력한다. 인슐린의 발견과 핵무기 해체까지 연구를 지원하는 등 지식의 창출과 전파도 그 재단의 기여였다. 그의 이름을 붙인 뮤지엄과 트러스트 등은 여덟 개가 된다.

특히 5천5백만 달러를 투입한 도서관 건립은 잘 알려져 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세계 곳곳에 2509개소 도서관을 세웠고, 그 중 1679개소가 미국에 설립됐다. 일찍이 도서관 사업에 공들인 것은 책을 접하고 배우려는 사람은 자신의 경우처럼 스스로 깨우칠 수 있고 이민세대로서 미국의 새로운 문화적 지식을 쌓는데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의 위기를 소재로 한 재난영화 ‘투모로우’를 찍은 뉴욕 공립도서관은 뉴욕시에 92개소의 분관을 운영하고 있다. 그 건립 초기에 520만 달러를 기부한 것도 바로 철강왕 카네기다.

카네기 사후 30년 뒤의 일이지만, 스탠다드 오일사처럼 U.S. 스틸사도 미국의 가장 심각한 환경재난 사건과 연루된다. 1948년 펜실바니아 주 피츠버그 인근의 도노라(Donora) 스모그 사건이 그것이다. 닷새 동안 갈색의 숨막히는 스모그로 지역주민 20명이 사망하고 7,000명(총 인구 14,000명)이 호흡기 질환을 앓다가 한 달 뒤 50명이 추가로 사망한 사건이다. 60년이 지난 2008년에 뉴욕 타임즈는 이 사건을 재조명하면서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기오염 재앙의 하나”라고 규정했다.

이 계곡에는 산업 시설이 여럿 있었지만 특히 U.S. 스틸사의 도노라 아연 공장과 American Steel & Wire(AS&W) 공장의 두개 시설이 입지해서 플르오르화 수소, 이산화황 등이 배출되는 일이 잦았다. 1948년 사고는 설상가상으로 심각한 기온반전이 일어나 대기오염 물질이 상공으로 확산되지 못해 가라앉았던 탓에 피해가 컸다. 짙은 갈색의 자극성 스모그가 황산, 이산화질소, 불소 등으로 천식, 폐질환 등 증세가 심해졌다.  닷새 뒤 비가 내리면서 겨우 진정 국면에 들게 됐다. 가축도 800마리가 희생됐다.

원인 규명과 피해 보상을 둘러싼 공방 끝에 U.S. 스틸사에 대한 소송이 걸린다. 회사 측은 기온반전 탓에 발생한 자연재해(act of God)라 주장한다가 결국 1951년에 2십3만5천 달러의 피해보상금으로 합의를 본다. 소송을 건 피해자는 80명이었는데 소송 비용에 다 들어간다. AS&W에 대한 소송은 훨씬 규모가 크고 복잡했다. 우여곡절 끝에 U.S. 스틸사는 두 개 공장을 다 폐쇄하게 된다. 광석이 고갈되고 기술이 낙후되고 일자리도 줄어드는 등 사양길로 접어 든 것이었다.

U.S. 스틸사와 얽힌 도노라 스모그 사건은 미국인들에게 단기간의 대기오염이 피해가 얼마나 심각할 수 있는지를 깨우치는 계기가 됐다. 그리하여 1970년 청정대기법안(Clean Air Act)가 제정되는 발단이 된다. 2008년에는 도노라 스모그 뮤지엄이 설립되고 "깨끗한 공기가 여기서 시작됐다(Clean Air Started Here)".라는 슬로건이 나붙는다. 도노라 주민 수는 계속 줄어들어 6,000명 이하가 됐다.

이렇게 외국의 기부 얘기를 한 것은 우리 기부문화를 살리는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의 세법 개정은 오히려 기부 확산에 역행하고 있다. 2014년 개정 시행된 소득세법이 발단이다. 과거에는 기부금 전액에 대해 소득공제 혜택을 주던 것을 3천만 원 이하의 기부금은 15%, 그 이상은 25% 세액공제로 바꾸었다. 때문에 중산층과 고소득자의 기부금 세제 혜택이 줄어들었다. 혜택이 줄어들다 보니 지난 해 정부 세입은 3천억 원쯤 늘었으나 기부금은 2조 원 이상 줄어들었다. 일 년 새 사회공헌을 위한 대규모 공익 재원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기부 활성화 관련해 입장을 밝혔다. 미국은 소득의 50% 한도 내에서 기부금 전액에 대해 소득공제를 한다. 영국은 기부 금액의 20~40% 범위에서 소득공제를 한다. 프랑스는 세액공제를 하지만 공제율이 대체로 66%다. 우리의 법인 기부금은 전액이 비용으로 인정되지 않고 한도가 정해져 있다. 한도 이상 기부하는 기업 수는 1만 개가 넘고, 한도 초과로 혜택을 못 받는 액수는 1조 원이 넘는다. 그러니 개인의 고액 기부 기준인 3천만 원은 낮추고 세액 공제율은 올리며, 법인 기부의 비용처리 한도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일본은 최근 개인에게만 허용되던 '고향 납세제도'를 기업에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기업이 지방자치단체에 내는 기부금의 60%를 세금 공제를 받게 하는 제도로서 지자체의 재원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 한다. 그 배경은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기부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만큼  세제 혜택 확대로 기부를 활성화한다는 전략이다. 우리 사정과 비슷하다.
일본의 고향 납세제도는 2009년에 개인을 대상으로 2000엔 이상 기부하는 경우 전액을 세액에서 감면해주는 것이다. 기업 대상의 고향 납세제도는 기업 기부금의 60%에 대해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것으로 돼 있다. 예를 들어 기업이 100만 엔을 기부하면 현행보다 세금이 30만 엔 추가로 감면돼 기업의 부담이 40만 엔으로 줄어들게 된다. 그러나 부작용의 우려도 있다. 특정기업이 기부를 하면서 지자체로부터 입찰 우대를 받는다던지 하는 유착의 우려가 있으므로 투명성을 확보하는 조치가 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복지예산의 확대로 재정 효율화가 점차로 중요해지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나눔 문화 확산으로 사회공헌과 사회통합에 기여할 수 있는 공익재원을 확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게 하려면 정부가 제도적인 유인책을 내놔야 한다. 기부문화가 청교도 정신의 나눔과 박애에 바탕한 서구와는 달라 우리나라의 기부문화는 키워야 할 필요가 있다. 기부 지수가 세계 153개국 중 81위인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러니 일단 제도적으로 크고 작은 기부가 쏟아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편법 운영하지 못하도록 투명성도 더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때마침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관련 법안의 개정을 다루고 있다 하니, 기부 활성화로 공익 재원을 확충할 수 있도록 좋은 법안이 반드시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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