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아프간서 국경 없는 의사회 병원 폭격당해…19명 사망

중앙일보

입력

최근 탈레반과의 치열한 교전이 벌어진 아프가니스탄에서 '국경 없는 의사회(MSF)' 병원이 폭격당해 최소 19명이 숨졌다.

이번 폭격이 미군의 오폭으로 확인되면서 미국은 국제사회의 비난에 직면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 등 미 수뇌부는 애도의 뜻을 표하고 철저한 조사를 약속했다. 이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인도적인 구호 단체와 민간인이 애꿎게 희생된 이번 폭격 사고가 오바마 정부의 아프간 정책에 '뼈 아픈 오점'으로 남게 될 공산이 커졌다.

3일(현지시간) 새벽 2시경 아프가니스탄 쿤두즈주(州)에 위치한 MSF 외상치료센터가 미군의 공습을 받아 최소 19명이 사망했다고 CNN 등이 보도했다.

사망자 19명 가운데 12명은 의사·간호사 등 MSF 직원이었으며 7명은 환자였다. 환자 7명 중 3명은 어린이였다. 37명은 부상을 입었다. 당시 병원에는 환자 105명과 의료진 80여 명이 있었다. 공습으로 병원은 아비규환이 됐다. 폭격 당시 근무중이던 한 간호사는 워싱턴포스트(WP)에 "집중치료실에 있던 환자 6명이 침대에 누운 채 불타는 모습을 목격했다"며 끔찍했던 상황을 전했다.

MSF 측은 "폭격을 피하려고 몇 달전부터 아프간·미국 등 교전과 관계된 모든 단체에 여러 번 우리 시설의 정확한 위치를 알렸음에도 이번에 폭격이 30분~45분 계속됐다"고 주장했다.
MSF 외상치료센터는 쿤두즈에서 중증 부상자 치료가 가능한 유일한 병원으로 병원의 자체 수용능력을 이미 초과해 환자를 돌보던 상황이었다.

MSF 측은 "이번 공격은 국제법을 심각하게 위반한 행위"라며 즉각 조사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국경 없는 의사회는 세계 최대의 비(非)군사·비정부 긴급 의료구호단체다. 정치·종교·인종·이념을 초월해 분쟁지역 등에서 헌신적인 의료활동을 펼쳐온 공로를 인정받아 9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으며 세계 20여 개 지역 사무소를 두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비극적인 사고로 의료진과 민간인들이 숨진 데 대해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한다"며 "폭격으로 피해를 입었거나 소중한 가족을 잃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또 그는 "미 국방부가 폭격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며 "최종 판단을 하기 앞서 국방부 조사 결과를 지켜보겠다"고 덧붙였다.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은 이날 "병원 공습에 대해 철저한 조사에 착수했다"며 "미군은 당시 병원 인근에서 탈레반 반군을 상대로 작전중이었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폭격의 구체적인 정황까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중무장 지상 공격기 AC-130이 공격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AFP통신이 정부 관계자의 말을 빌려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아프간 정부군을 지원하고 있는 미군 특수부대가 탈레반의 공격을 받아 AC-130로 반격했다"며 "AC-130은 불이 붙은 채 귀환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병원 건물에 탈레반 반군이 은신해 있었고 병원을 '인간 방패'로 삼았기 때문에 미군이 공격을 감행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에 MSF 측은 "병원 안에는 환자와 직원, 보호자만 있었다"면서 탈레반 반군이 병원에 침입했다는 주장 자체를 부인했다.

존 캠벨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사령관도 희생자와 가족들에게 애도를 표하고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이 쿤두즈 인근에서 탈레반 소탕 작전을 계속함에 따라 이들을 조언하고 지원하는 일을 지속할 것"이라며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한 모든 합리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미군의 공습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한 사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2009년 5월에도 미군의 공습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140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군이 2016년말~2017년초까지 아프간에서 완전히 철수하겠다고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습으로 피해자가 양산되면서 '민간인 사상자를 최소화하는 데 실패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서울=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