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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신연희, 현대차 1조7030억 공공기여금 줄다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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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옛 한국전력 본사 부지. 현재 서울시와 강남구청이 서울 동남권 개발계획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다. [박종근 기자]

10조55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 낙찰액수, 500m가 넘는 빌딩 높이. 숱한 화제를 일으킨 서울 삼성동 옛 한국전력 부지 개발사업이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에 휘말렸다. 땅 주인이 한국전력에서 현대차그룹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개발을 둘러싸고 서울시와 강남구청 간 이해 다툼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5일 한전 부지는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등 3개 계열사가 잔금(약 3조1650억원)을 한전 측에 모두 내면서 법적 소유권이 현대차그룹으로 넘어왔다. 현대차그룹은 삼성동에 105층 초고층 사옥을 포함해 컨벤션센터와 호텔, 자동차 박물관, K팝 공연장 등 ‘자동차 테마파크’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현장 속으로] 정치싸움에 휘말린 옛 한전 부지 개발

서울시·동남권 복합지구 개발에 사용”
강남구·영동대로 원샷 개발에 써야”

강남구, 지구단위계획 무효 소송
현대차서 신청한 변전소 이전 불허

구룡마을 등 두 사람 ‘악연’ 되풀이
현대차 신사옥 2020년 완공 지연 우려

 표면적인 걸림돌은 삼성동 한전 부지 한복판에 있는 변전소 이전 문제다. 옛 한전 사옥 별관 지하 2층에 3294㎡ 규모로 자리 잡고 있는 이 변전소는 삼성동 일대 6000여 가구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부지 개발을 위해 현대차그룹은 올 6월 강남구에 변전소 이전·증축을 신청했으나 강남구가 반려했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동남권 국제교류복합지구 지구단위계획’의 세부 계획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게 강남구 측 반려 사유다.

 사실 강남구청 측의 반려 이유는 따로 있다. 현대차그룹 측이 한전 부지 개발을 위해 내겠다고 약속한 공공기여분(1조7030억원) 집행에 강남구가 직접 참여해야 한다는 논리다. 반면 서울시는 공공기여분을 송파구를 포함한 서울 동남권 국제교류복합지구 개발사업에 사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서울 동남권 개발계획은 박원순 시장의 핵심 사업으로 잠실종합운동장 일대를 포함한 서울 동남권을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와 같은 마이스(MICE, 기업회의·관광·컨벤션·전시회)산업 중심지로 개발하겠다는 프로젝트다. 당초 서울시의 동남권 개발계획은 삼성동 일대로 국한됐지만 올 5월 송파구에 속한 잠실종합운동장까지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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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공공기여금 사용처를 둘러싼 서울시와 강남구의 갈등이 한전 부지 개발을 가로막는 핵심 사항이다. 강남구청 측도 이러한 갈등을 부인하지 않는다. 신연희 강남구청장은 “현대차가 낼 공공기여금을 서울시가 영동대로 개발에만 쓰겠다고 약속하면 책임지고 허가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강남구 간 입장 차이는 팽팽하다. 강남구는 서울시를 상대로 지구단위계획 변경 무효 소송까지 제기했다. 서울시가 2009년 결정된 서울 동남권 지구단위계획 결정고시를 강남구와 상의 없이 변경했다는 이유다. 지난달 3일에는 강남구민 1만5672명이 소송추진단으로 참여했다. 강남역·선릉역·삼성역 등 강남 곳곳에는 박원순 시장의 결정을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한전 부지가 강남구 내에 위치해 있는 만큼 공공기여금을 지하철 6개 구간이 환승하게 될 영동대로 ‘원샷 개발’에 먼저 사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 시장과 새누리당 소속 신 구청장의 대립은 한전 부지가 처음이 아니다. 양측의 갈등에는 ‘구원(舊怨)’이 얽혀 있다. 2011년 말 박 시장은 취임 일성으로 서울 최대 판자촌인 개포동 구룡마을 개발 방식을 100% 시 공영 개발에서 환지 방식으로 변경하겠다고 밝혔다. 환지 방식은 토지 수용비를 절약하는 대신 일부 토지주에게 개발이익을 돌려주는 구조다. 당시 사업 허가권을 가진 강남구는 서울시 계획에 정면으로 맞섰고, 강남구는 구룡마을 개발과 관련된 서울시 전·현직 간부 3명을 공무집행 방해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약 3년이 지나서야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강남구 방식을 전면 수용하겠다”며 구룡마을 개발 재개를 선언했다. 신 구청장이 일단 ‘1승’을 거둔 셈이다.

이번 갈등은 내년 4월 총선을 둘러싼 정치 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박 시장과 같은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구청장 20명은 지난 8월 “한전 부지 개발이익금이 강남구에만 투자된다면 강남·북 간 격차를 좁힐 수 없다”며 성명서를 발표했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강남구청 측이 내년 이후 정치 스케줄을 염두에 두고 지속적이면서도 의도적으로 갈등을 악화시키고 있다”면서 “신 구청장이 내년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둔 행보를 벌이는 것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물론 강남구를 비롯한 서초·송파·중랑·중구 등 새누리당 소속 구청장 5명은 서명에 참여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지방자치의 한계를 뛰어넘어 최고 노른자위 땅을 제대로 개발해 국가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내년 초 착공, 2020년 말 완공’을 목표로 하는 현대차그룹의 신사옥 착공 계획도 기약 없이 늦어지고 있다. 고려대 강성진(경제학) 교수는 “강남구는 개발에 따른 이익도 누리지만 비용도 동시에 부담하는 만큼 서울시와 강남구는 서로를 대화 상대로 인정해야 할 파트너”라면서 “토의를 통해 적절한 해결 방법을 찾는 게 강남구민, 더 나아가 서울시민을 위한 길”이라고 조언했다.

글=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S BOX] 삼성동은 벌써 현대차 타운 … 취업설명회까지 열어

지난 7월 서울 삼성동 옛 한국전력 사옥에는 한전 로고가 이미 없어진 대신 파란색 계통의 현대차그룹 공식 마크가 붙여졌다. 한전 사옥에는 현대위아 서울사무소 직원 20명을 시작으로 현대글로비스(650명), 현대파워텍(40명), 현대종합특수강 직원들이 근무 중이다. 현대차 내부에선 옛 한전 사옥을 ‘강남 사옥’으로 호칭을 통일했다. 지난달 4일 현대차그룹은 이곳에서 취업준비생 1300여 명을 대상으로 올 하반기 취업설명회를 개최했다. 현대차 측은 삼성동 근무 직원이 주변 식당에서 쓸 수 있도록 한 끼 6000원씩 식권을 지급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한전이 전남 나주로 이전하면서 주변 소상공인의 생업에 지장이 있다고 판단했다”면서 “구내식당을 없애고 직원들에게 식권을 지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하철 2호선 삼성역을 경계로 한전 부지 바로 건너편에도 현대차 사옥이 있다. 계동 사옥에 입주했던 현대차 국내영업본부가 지난해 3월 대치동 오토웨이타워로 이사했기 때문이다. 한전 부지가 매물로 나오기도 전이다. 오토웨이타워는 당초 SK네트웍스가 신사옥을 마련하기 위해 건설했지만 자금난으로 인해 건물을 매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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