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훈범의 생각지도

김무성의 ‘안심공천’을 지지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이훈범
이훈범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기사 이미지

이훈범
논설위원

새누리당은 이름만큼이나 이상한 당이다. ‘새누리’라 함은 ‘새로운 세상’을 일컬을진대, 새 세상이 뭔지 저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모였다. 생각이 다르니 눈높이가 다르고, 눈높이가 다르니 초점이 맺히는 거리가 다르다. 초점거리가 다르니 한 곳에 서서는 같은 물체도 달리 보이고, 다르게 보니 생각은 더 달라진다. 그런 지독한 부동시(不同視)들이 새누리라는 똑같은 안경을 쓰고 어찌 새로운 세상을 찾아가겠나.

 ‘정의로운 보수’를 향한 개혁을 주장하던 사람을 원내대표로 뽑아놓고는 그 개혁에 노상 시비 걸다가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통과된 법안을 핑계로 쫓아내더니, 완전국민경선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사람을 대표로 뽑아놓고는 완전국민경선제는 꿈도 꾸지 말라고 다그치다가 여야 대표가 합의한 완전국민경선제 ‘라이트 버전’을 핑계 삼아 다시 내칠 기세다.

 생각이 다른 건 자연스럽다. 생각이 모두 같다면 오히려 위험할 터다. 하지만 같은 걸 비껴 보는 건 문제가 될 수 있고, 그런 사시(斜視)의 원인이 사심(私心) 또는 사심(邪心) 때문이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회법 개정안이 정답이 아니었듯,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또한 정답은 아닌 게 사실이다. 하지만 모범답안은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새로운 세상만큼이나 실체가 잡히지 않는 게 정답 아닌가. 목적지는 서울이지만 가고자 하는 길은 다 다르니 말이다. 당 안에서도 생각이 다른데 당 밖과는 얼마나 더 다르겠나. 그렇다고 안 갈 수도 없고 우선 수원까지라도 가고 봐야 한다. 그러려면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고, 양보하고 타협해서 한 걸음부터 디뎌야 한다. 그게 모범답안이다. 정답이 어려우면 모범답안이라도 찾는 게 정치고 정치인이 할 일이다.

 그런데 자신들이 선택한 길이 아니면 한 발짝도 못 가겠다고 버티고, 그것에 거슬러 여야 합의를 이끌어낸 당 대표를 뒤흔들며, 당 일에 끼어들어 대표를 욕보이는 청와대 참모들 앞에선 입을 닫는 건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기를 포기하고 청와대 여의도 출장소의 성실한 ‘거수기’가 되겠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그러는 이유조차 가소롭다. 그들이 ‘듣보잡’이라 욕하는 안심번호 여론조사는 새누리당이 공정을 기한다고 2012년 대선후보 경선 때 도입한 제도고, 그걸로 대선후보가 된 사람이 박근혜 대통령이다. 19개 선거구 중 14개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한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 재·보선의 후보들도 안심번호로 공천됐다. 후보를 정할 때 당원과 국민 여론을 50대 50으로 듣자는 게 지금 새누리당의 당헌·당규고, 그걸 여론 100퍼센트로 하자는 게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일 뿐이다.

 그런데도 안 된다고만 하는 건 뭔가 다른 셈법이 있기 때문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물론 정당이 자기네 후보를 역선택까지 걱정해가면서 여론으로 정하는 건 웃기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게 된 이유가 그 ‘다른 셈법’ 때문이었다는 건 주지의 사실 아닌가.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밀실공천 말이다.

 기득권 운운하면서 물갈이를 위해서라도 전략공천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웃기다. 자기를 물갈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아닐 테니 말이다. 솎아내야 할 의원과 새로 꽂아야 할 신진의 기준은 불 보듯 뻔하다. 그걸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공천학살’의 최대 피해자였던 김무성 대표와 박 대통령일 터다. 두 사람이 대립하는 건 한 사람은 그걸 막고자 하고 한 사람은 그걸 다시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 그리고 거의 물 건너간 상황이 돼버리고 있음에도 내가 김무성 대표의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지지하는 이유다. 국민을 무시하고 거수기를 양산하는 전략공천보다는 ‘안심공천’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게 더 빨리 서울에 도달하는 길인 까닭이다.

이훈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