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목요일] 피곤한 당신, 오늘 점심 메뉴는 링거 한 방? 차라리 밥 한 끼 잘 드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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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이모(29·서울 광진구)씨는 지난달 초 서울 중구의 한 가정의학과 의원에 갔다. 전날 술을 많이 마셔서 힘들다고 하자 회사 동료가 가보라며 추천한 곳이다. 점심시간에 맞춰 갔더니 직장인으로 보이는 10여 명이 수액을 맞으며 누워 있었다. 의사는 “과음했을 때는 비타민 주사를 맞는 게 좋다”면서 한 시간 동안 맞을 주사약을 처방해줬다. 이씨는 “수액을 맞고 나서 컨디션이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주사 덕인지, 한동안 가만히 누워 있었기 때문인지 알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직장인에 인기 ‘수액주사’의 진실

피로·과음 이유로 찾는 이 많지만
탈수·몸살 정도 외엔 큰 효과 없어

만성질환자에겐 오히려 부작용
노인은 많은 양 빨리 맞으면 쇼크

무허가 업소에서 맞는 건 피해야
수액 맞을 땐 질병·몸 상태 상담을

 만성피로나 과음 등을 이유로 병·의원에서 수액을 맞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오래전에 영양실조나 탈수증으로 죽어가던 사람들이 살기 위해 맞던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인터넷에서는 마늘 주사, 비타민 주사, 감초 주사 등 자체적으로 이름 붙인 주사액을 홍보하는 ‘수액클리닉’ 광고도 볼 수 있다. 환자를 가장해 지난달 중순 서울 강남구의 한 대형 수액클리닉에 전화해 진료 내용을 문의했더니 병원 직원은 대뜸 “원장님 상담을 짧게 받고 영양제 수액을 맞으면 된다”고 했다. 그는 “만성피로·과음 외에도 식욕 저하, 체력 보충, 피부미용 차원에서 많이 맞으러 온다”고 덧붙였다.

 수액은 보통 기초·영양·특수의 세 가지로 분류된다. 병·의원은 이 중에서 생리식염수나 포도당이 들어간 기초 수액과 아미노산·단백질·비타민 등의 영양소를 공급하는 영양 수액을 섞어서 정맥에 주입하는 경우가 많다. 특수 수액은 수술 등 특별한 경우에 주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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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 전문가들은 수액 남용을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탈수 증세가 있거나 감기·몸살 등으로 몸이 심하게 안 좋은 경우를 제외하면 그다지 효과도 없다고 한다. 오상우 동국대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수액의 영양소나 열량은 제대로 먹는 밥 한 끼도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사를 꽂고 쉬면서 기분이 나아지는 ‘플라시보’ 효과는 있겠지만 건강한 사람이 굳이 돈을 써가며 맞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의료 관련 시민단체들은 병·의원들이 수입을 늘리기 위해 수액의 효과를 과대 포장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건강세상네트워크의 김정숙 간사는 “몸이 조금 안 좋아서 병원을 찾는 사람들에게도 수액을 맞게 하는 등 일부 병·의원의 행태가 도를 넘고 있다. 비보험 진료라는 점을 노려 의술이 아닌 상술로 환자를 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몸과 맞지 않는 성분이 들어 있으면 되레 탈이 날 수도 있다. 드물긴 하지만 만성질환자를 중심으로 부작용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들어 있는 성분이 많은 수액이 더 좋다고 볼 수도 없다. 당뇨 환자는 고농도의 포도당 주사를 맞으면 몸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 혈당 수치가 급격히 높아지면 인슐린(췌장에서 나와 당 수치를 조절하는 호르몬) 분비가 그만큼 활발해져 오히려 당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고혈압이나 심장 질환이 있는 사람이 수액을 맞으면 혈관 확장·수축 능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체내 혈액량이 갑자기 증가해 심장에 과부하가 걸릴 수 있다. 노인이나 어린이는 많은 양을 빨리 맞으면 급성 쇼크 증세를 보일 수도 있다. 지난 8월 경기도의 한 종합병원에서는 수액을 맞던 8세 여자아이가 발작을 일으킨 뒤 숨졌다. 박은정 제일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1회성으로 맞는 건 괜찮더라도 지나치게 빈도가 높으면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본인이 가진 만성질환과 알레르기 반응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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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는 속도와 양에 대한 기준이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도 위험성을 높인다. 박경희 한림대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환자의 나이·체중·키 등을 고려해 의사들이 체액량을 추정한 뒤 수액을 얼마쯤 넣으면 된다고 계산한다. 명확한 기준은 없다”고 말했다.

 병·의원이 아니라 가정이나 무허가 업소에서 수액을 맞는 것은 피해야 한다.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약품이나 오염된 주사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 오상우 교수는 “병·의원이 아닌 곳을 찾았다가 혈액으로 전파되는 C형 간염이나 바이러스 감염이 발생하는 환자를 종종 봤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수액에 대한 지나친 믿음을 버리고 의사와 사전 상담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수화 대전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일부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항상 피곤하거나 몸이 무겁다면 일시적인 회복만 바랄 게 아니라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찾는 게 건강을 위한 올바른 행동”이라고 말했다. 강재헌 인제대 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수액을 맞기 전에 자신이 가진 질병과 정확한 몸 상태를 의사에게 반드시 알려야 한다”고 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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