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쾌한 청와대 "5가지 우려" 공개 표출

중앙일보

입력

30일 오전 11시50분, 청와대 관계자가 예고 없이 기자실을 찾아 ‘익명의 브리핑’을 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합의한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오전 5시20분, 미국 뉴욕 순방을 마치고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박 대통령이 귀국한 지 6시간30분 만에 청와대 관계자가 기자들 앞에서 여당 대표를 비판한 점, 안건이 정당 소관인 총선 룰이라는 점이 모두 이례적이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안심번호 국민 공천제에 대해 우려스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며 제도의 문제점을 5가지로 나눠 지적했다. 청와대가 내년 총선 공천룰 논란의 전면에 나서는 순간이었다.

그는 “첫째, 역선택을 차단할 수 있느냐, 민심 왜곡을 막을 수 있느냐’가 문제”라고 했다.“안심번호가 있다고 하지만 먼저 지지정당을 묻고 난 뒤에 (여론조사를) 하겠다는 얘기 같은데, 그럴 경우 역선택 또는 민심왜곡을 막을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가장 크다”면서다.

두번째 문제점으로 조직선거를 꼽았다. 그는 “통상 여론조사 응답률이 2%도 안되는데, 결국 조직력이 강한 후보한테 유리해지는 것 아니냐. 인구수가 적은 선거구는 안심번호에 동의한 유권자가 노출되기 쉽고 얼마든지 조직선거가 될 우려도 있다”고 했다.

세번째 문제점으론 '세금공천'문제를 들었다. 이 관계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경선을)관리하면 그 비용이 굉장히 많이 들 것"이라며 “국민공천이라는 대의명분에 대한 공감보다 '세금공천'이랄까, 이런 비난의 화살이 더커지는 건 아닐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네번째론 절차상 하자, 다섯번째론 졸속 협상을 지적했다. 그는 “전화여론조사와 현장투표는 근본적으로 다른데, 이런 중요한 일이 새누리당의 최고위원회라든지 내부적 절차없이 합의됐다"며 "졸속이라는 비판도 나오는데, 과연 바람직한지 우려하고 있다"고 했다.

브리핑 도중 기자들이 ‘당에서 정하는 공천 룰에 청와대가 관여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청와대 관계자는 “안심번호 공천제가 굉장히 바람직한 것으로 알려져, 우려할 점을 얘기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답했다. 다른 청와대 참모는 “만약 전화로 총선 후보자를 결정하는 방식이라면 전세계에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청와대 관계자가 여당 대표를 직접 비판한 것은 박 대통령의 지시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또한 이날 브리핑엔 김 대표가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공천제)를 추진하며 설정한 ‘정치개혁’ 프레임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겠다는 의도가 담겼다는 분석이다. 여기엔 총선 공천 룰 문제를 더 이상 김 대표에게 맡겨둘수만은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그간 친박계가 요구하는 ‘전략공천'에 김 대표가 불가 입장을 굽히지 않는 것에 대해 내심 불쾌한 입장이었다. 김 대표의 구상대로 총선 룰이 정해질 경우 청와대가 공천에 관여할 여지가 없어져 안정적 국정운영을 위한 국회내 ‘친박 확장’은 불가능해진다.

김 대표에 대한 청와대의 공개적 불만 표출은 이번이 두번째다. 공교롭게 모두 박 대통령 순방중 갈등이 빚어졌다. 김 대표는 지난해 10월 박 대통령이 금기시했던 개헌론을 꺼냈다가 공개사과하면서 충돌을 피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참석차 이탈리아를 방문중이었다. 청와대 인사들은 "이번에도 박 대통령의 방미 기간 중 김 대표가 충분한 사전교감없이 전격적으로 일을 저질렀다"며 불쾌해하고 있다.

신용호 기자 nov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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