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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예측할 순 없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뉴스위크]

미국의 영매는 심령술사인가 사기꾼인가… 구글 등에서 정보 찾거나 떠보기 기술로 고객의 마음 사로잡아

“물론 죽은 사람과 살아 있는 사람의 다른 점은 수없이 많다.” 최근에 심리학자 리처드 와이즈먼 교수가 내게 말했다. “그중 하나는 죽은 사람의 경우 대화 상대를 아주 까다롭게 고르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죽은 사람은 상상력이 아주 풍부한 사람과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창의적이고 아주 민감한 사람을 선호한다.” 와이즈먼 교수는 ‘무슨 의미인지 알지?’하는 식으로 내 쪽을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남의 말을 잘 믿고, 잘 속고, 착각이 심한 사람들 말이다.”

와이즈먼 교수는 아주 특이한 학자다. 직업 마술사 출신으로 영국 하트퍼드셔대학에서 ‘심리학의 공공 이해(Public Understanding of Psychology)’를 가르친다. 그는 영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심령술 회의론자로 꼽힌다. 따라서 내가 그에게 망자와 소통한 적이 있다고 말한 것은 판단 착오였을지 모른다. 아니, 이 주제를 논할 때마다 되풀이되는 표현이지만 나는 그런 경험이 있었음을 믿는다고 그에게 말했다.

사전 정보 없을 땐 ‘떠보기 기술’로나는 6년 전 영국인 여자 영매 샐리 모건과 인터뷰할 때 그런 경험을 한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모건의 TV쇼와 무대 공연을 직접 본 것을 바탕으로 그가 혼령과 너무도 많은 대화를 나누는 심령술사일 뿐만 아니라 그 분야의 최고 사기꾼이라고 결론지었다. 인간의 그런 활동에서 쉽게 얻을 수 없는 칭호다.

그 이래 치과 간호사 출신인 모건은 영국의 각지를 돌며 장내를 가득 메운 관중 앞에서 공연하면서 영국의 최고 인기 영매로 부상했다. 최근에도 모건이 영국 남부 도시 브라이턴의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950석 좌석이 매진된 극장 밖에선 두 남자가 ‘동성애자 혼령에게도 동등한 권리를!’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조용히 시위를 벌였다.

무슨 연유인지 알아보니 지난해 4월 모건의 런던 공연 직전 극장 앞에서 심령술을 비판하는 전단을 나눠준 마크 틸브룩과 모건 측 사람들 사이의 사소한 언쟁을 가리키는 슬로건이었다. 틸브룩은 최근에야 그 언쟁이 담긴 동영상을 공개했다. 그 동영상에서 모건의 남편인 존(채소장수 출신으로 체격이 거대하다)과 그의 사위 대런 윌트쉬어는 틸브룩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당신 마약했어? 아니면 동성애자 남자친구와 너무 섹스를 많이 했어? … 계속 이러면 내가 혼을 내주지. 그러니 어서 꺼져.”

모건이 2008년 쓴 회고록 ‘나의 심령술사 일생(My Psychic Life)’에 따르면 남편 존에게 샐리 모건은 ‘매일 아침에 해가 뜨는 이유’다. 그런 터무니없는 동영상이 유튜브에 오른 직후, 그리고 브라이턴 공연이 있기 직전에 발표한 성명서에서 샐리 모건은 이렇게 말했다. “남편 존과 사위의 행동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몹시 부끄러운 일이다. 그들은 내 일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 이제 결혼생활을 어떻게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와 모건의 만남은 틸브룩과 그의 만남보다는 부드러웠지만 심란하긴 마찬가지였다. 올해 63세인 모건은 지금 런던 외곽의 저택에서 산다. 그러나 당시엔 런던 남부의 뉴몰든(한인타운으로 잘 알려진 곳)에 살았다. 불빛도 보이지 않고, 열린 창문도 없으며, 사람이 살고 있다는 흔적조차 없는 그의 집으로 걸어갔다. 1950년대 인기 시트콤 ‘필 실버스 쇼’에서 주인공 빌코 상사와 루퍼트 리트직이 룰렛 도박에서 횡재하게 해달라고 한 영매의 집을 찾아가는 장면이 떠올랐다. 빌코는 리트직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주 조용한데. 블라인드도 다 내려져 있고. 아무런 움직임도 없어. 그래도 저 집 안에 영매가 있는 게 분명해.”

그러나 모건이 나에게 해준 점 풀이는 전혀 웃기지 않았다. 당시 모건은 대면으로 점을 볼 때 사진을 이용했다. 나는 학생일 때 돌아가신 아버지 사진을 포함해 우리 가족이 담긴 사진 몇 장을 들고 갔다. 그 몇 주 전 동생과 이야기하면서 아버지가 폐쇄공포증이 있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관중이 가득한 축구장 관람석에 가면 아버지 얼굴에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모건은 수년 전에 찍은 우리 부모 사진을 들고 이렇게 말했다. “부친께서 왼손에 들고 있는 무엇을 내게 보여주네요. 체인이나 열쇠고리 같은데요.” 전형적인 떠보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에 관한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그의 속마음을 간파해내는 기술을 말한다. 점을 보러 온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정확한 정보를 선뜻 내놓을 때까지 일반적인 이야기를 마냥 늘어놓는 ‘콜드 리딩(cold-reading)’ 기법이다. 모건은 말을 이었다. “부친께선 자신이 폐쇄공포증이 있었다는 것을 당신이 알기 바라는데요. 하지만 당시엔 자신도 몰랐다고 말씀하시네요. 그때는 사람들이 그런 증상을 뭐라고 부를지도 몰랐지요.”

모건은 간호사를 그만두고 작은 세탁소를 운영하다가 동네 술집에서 영혼의 세계를 보게 되면서 영매가 됐다고 한다. 나는 모건을 만나기 전날 밤 친구들에게 내가 잉글랜드 북부의 국립공원 피크 디스트릭트 부근에서 자라서인지 동남부의 평평한 풍경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말했다. 터무니없는 허세처럼 들리지만 나는 산이 펼쳐진 곳에서 소설을 쓰기가 더 쉽다고 친구들에게 주장했다. 그런데 갑자기 모건이 종이 한 장을 꺼내 오르락내리락하는 선을 네댓 개 그렸다. 정말 귀신 같았다.

“당신은 언덕이 많은 곳에서 살면 아주 행복할 것 같네요”라고 모건이 말했다. “아니면 산악지대나. 산이 당신에게 영감을 주죠. 당신의 작품은 조망이 좋은 곳에서 더 쉽게 흘러나와요. 당신이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삶이 영원히 달라질 겁니다.”

인터넷에서 정보 찾는 ‘구글의 유령’수년 전 감리교 목사였던 고(故) 소퍼경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심령술을 “영적인 파시즘(fascism)”으로 규정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스스로 책임져야 마땅한데도 자신이 아는 세계 밖에서 답을 찾는다.”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하자 모건은 이렇게 말했다. “있잖아요, 이런 능력을 갖고 살기는 쉽지 않아요. 난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머리가 어떻게 되지도 않았어요. 난 우연히 아주 특이한 일을 잘하게 됐거든요.”

내가 옛 여자친구의 사진을 보여주자 모건은 깊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나는 사진 속 인물이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친척인지 아닌지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이 여자에게는 정신적으로 특이한 면이 있네요.”

“그럼요.”

“어떤 사람은 그녀를 미쳤다고 말할지 몰라요. 그녀에겐 아주 깊은 슬픔이 있어요. 버림 받은 느낌이라고 할까? … 어떤 사람은 노력해보기도 전에 서로의 관계를 끝내버려요. 어차피 끝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이 여성도 그런 느낌을 갖고 있어요.” 그러곤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의 혼령이 곁에 왔다며 우리 가족 사진을 다시 들었다.

“조안이 누구죠?”

“어머니예요.”

“마이클 존은 누군가요?”

“내 동생이죠.”

“어머니는 돌아가셨나요?”

“아뇨. 맨체스터에 살고 계세요.”

“그럼 당신 어머니의 어머니가 어린 자녀를 잃었군요.”

“내가 아는 한 그런 일은 없는데요.”

“어머니에게 한번 물어보세요.”

나중에 와이즈먼 교수에게 말했지만 내가 어머니에게 그런 사실이 있느냐고 묻자 어머니는 자신의 오빠가 태어나 얼마 안 돼 죽었다고 말했다.

심령술 회의론자인 와이즈먼 교수에게 설명했듯이 나는 심령술을 전혀 믿지 않는 상태에서 모건을 만났다.

모건은 무대 공연을 시작하기 전 극장 앞에 유리 항아리 2개를 놓아둔다. 관람자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할 메시지와 그들의 사진을 그 안에 넣는다. 공연이 시작되면 그 항아리를 무대 위에 올려놓는다. 모건이 그 메시지들을 사전에 읽을까? 모건은 읽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도 그녀를 믿는다. 그러나 ‘영매 샐리’가 TV쇼에서 공연하는 유명한 장면을 보고 많은 시청자는 ‘구글의 유령’이 그곳에 존재한다는 느낌을 확실히 받았다고 했다. 사전에 인터넷을 열심히 찾아보고 안 그런 체했다는 이야기였다.

영매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그러나 모건이 내게 말해준 것은 그 어느 하나도 인터넷으로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와이즈먼 교수도 그 점에는 동의했다. 모건이 나와 관련해 떠올린 이름들은 사전에 몇 시간 여유가 있었다면 찾기 힘든 사이트에서 어렵게 얻어낼 수 있었을지 모른다. 와이즈먼 교수도 모건이 그런 식으로 정보를 얻은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모건은 내게 아무런 의미 없는 세세한 사실들을 언급했지만 일반적인 사기처럼 무작위로 찍어 말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모건을 만나기 전에 나는 리버풀 출신의 데렉 애코라 등 다른 영매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말이나 몸짓으로 ‘콜드 리딩’을 당하지 않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콜드 리딩 기법에 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채널 포의 시리즈물 ‘데런 브라운의 탐사(Derren Brown Investigates)’ 중 2010년 에피소드 ‘망자와의 대화(Talking to the Dead)’를 보라. 유튜브에 있는 그 에피소드는 자칭 영매인 조 파워의 사기를 철저히 폭로한다.

그 에피소드에서 브라운의 전문 조언가로 나온 와이즈먼 교수는 콜드 리딩 기법을 자세히 논한다. 예를 들어 영매는 점 보러 온 사람에게 작고한 친척이 그 자리에 있다고 설득시킨다. 주로 이런 말로 그런 효과를 얻는다. “존 … 조니 … 잭, 제이크 … 재키, 재클린 …. J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진 누군가의 혼령이 여기에 왕림하셨다.”

그러면 대개 사람들은 자신이 먼저 그에 관해 자세한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영매는 나중에 그들에게 그 이야기를 약간 비틀어 다시 전한다. 의미 없는 이름이나 날짜를 기억하지 못하면 고객 잘못이 돼버린다(“나중에 생각해보면 알 거예요”).

그 과정에서 발림 칭찬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영매는 절대로 이렇게 말하진 않는다. “당신 부친의 혼령이 여기 오셨어요. 그는 나에게 당신이 아주 지저분하고 쓸모없는 친구라고 말하고 있어요. 당신이 ‘음식만 축내는 식구’로만 기억한다고 말하네요. 그는 당신의 나쁜 점을 더 말해줄 수 있지만 어차피 엿새 뒤엔 당신이 죽을 것을 아니까 머지않아 지옥에서 만나 그 문제를 계속 이야기하자고 하네요.”

나중에 와이즈먼 교수를 다시 만났을 때 그는 모건과 내가 나눈 대화의 녹취록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모건을 만나면서 가진 주된 의문이 바로 영매를 시험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을 알려준다.”

여러 명의 피시험자가 영매를 직접 대면하지 않은 상태로 실시한 대조 실험에서 피시험자들은 여러 명의 점 풀이 중 자신의 것을 정확히 짚어내지 못했다. 와이즈먼 교수는 “여섯 가지 점 풀이 중에서 자신의 것을 알아낼 수 있을까?”라고 내게 물었다. 난 이렇게 대답했다. “알 수 있다. 동생 이름 같은 사소한 사실이 없더라도 내 것은 알 수 있다.”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와이즈먼 교수가 말했다. “그 문제에선 우리가 이견이 있는 게 분명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만약 모건이 맹검 실험(blind test)에 동의한다면 아주 흥미진진해질 것이다. 내가 아는 한 모건은 언제나 그런 실험을 거부했다.”

나쁜 영매들은 두 가지 방법으로 고객을 속인다. ‘핫 리딩(hot reading, 친구들이나 인터넷을 통해 상대방에 관한 정보를 얻는 방법)’으로 불리는 기법과 앞서 말한 ‘콜드 리딩’ 기술이다.

심령술 공연자가 꼬투리를 잡히지 않고 넘어갈 수 있다는 게 참 놀라울 따름이다. 최근 어느 강신론 교회(spiritualist church) 한 곳을 찾아갔다(교인들을 존중하는 뜻에서 교회 이름은 밝히지 않겠다). 그곳에서 90분 동안 펼쳐진 영매 공연을 끝까지 지켜봤다. 도중에 그는 내게 “알파벳 P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뜨끔했다. 당연히 나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내 개인적인 삶의 정확히 어떤 부분을 혼령세계로부터 전달한 것일까? 페로니(Peroni, 이탈리아 맥주)? 옛 여자친구 폴라(Paula)? 프론 단삭(Prawn dhansak, 인도 새우 요리)? 페르노(Pernod, 프랑스 독주)? 옛 여자친구 파멜라(Pamela)? 프레스턴 노스엔드(Preston North End, 영국 프로축구단)? 과연 P와 관련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 다음 그 영매는 70세쯤 돼 보이는 남자 해롤드와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영매: 당신 모친의 혼령이 여기 오셨어요.

해롤드: 그래요? 감사합니다.

영매: 그렇죠. 모친이 요리하고 있네요. 스튜를 많이 만들고 있어요.

해롤드: 어머닌 요리를 한 적이 없는데요.

영매: 모친이 아니라 당신의 조모군요. 조모가 스튜를 요리했어요. 개도 있는데 흰색이네요.

해롤드: 검은색이었는데요.

영매: 그럼 개 이름이 … 스튜군요.

해롤드: 플로시였어요.

영매: 아. 그렇군요. 그 개가 스튜를 달라고 애원하네요. 그래서 스튜라는 이름이 떠올랐나봐요.

나는 학술지 사이킥 뉴스(Psychic News) 편집장 슈 패로에게 그게 바로 심령술의 최악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패로는 이 분야에서 일하는 다른 사람과 대조적인 인물이다. 똑똑하고 언변이 좋다. 뮤지션으로 25년을 일하다가 2007년부터 사이킥 뉴스 편집장을 맡았다. 패로는 ‘스튜로 불리는 개’ 이야기를 듣고는 코웃음을 쳤다.

영국 국립발레단의 지휘자였던 스튜가 이 분야와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패로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 직업을 택한 것은 사람들이 대부분 내세의 존재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이건 아주 중요한 문제로 철저한 검토와 조사가 필요하다. 지적인 호기심이 나를 이 주제로 이끌었다.”

내가 패로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플로시가 스튜를 달라고 애걸하는 모습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패로는 그 점에 관해선 더 말할 게 없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영매 수백 명 중에 가족을 잃은 사람에게 감히 추천할 만한 영매는 단 3명뿐이다.” 실제로 영매가 되는 데는 운전교사 면허나 축구코치의 자격증 같은 요건이 필요 없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란 뜻이다.

좋은 영매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한다나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 있는 아서 코난 도일 센터를 방문했다. 의사이자 추리작가로 ‘셜록 홈스’를 탄생시킨 도일은 심령론을 열정적으로 신봉해 많은 사람의 조롱을 받았다. 유명한 마술사 후디니도 거기에 포함된다. 후디니는 한때 도일의 친구였지만 나중엔 그에게 등을 돌렸다.

나는 13명의 영매 수련자가 있는 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그중 9명이 여성이었다(이 기사에서는 전부 가명으로 처리했다). 이본이라는 한 여성이 진행하는 그 강습은 15분 명상을 한 다음 각자가 상대의 점을 보는 것으로 진행됐다. 덜컥 겁을 먹고 빠지려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했다. 이전에 ‘콜드 리딩’을 많이 당해본 터라 점을 보기가 그리 어렵진 않았다. 나의 상대 엘런은 나이 많은 여성이었다. 심령술의 도움 없이도 그 여인이 남편에게 가정폭력을 당했고 음주 문제가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는 발림식의 일반적인 이야기로 시작했다. “주변에서 나쁜 일이 계속 일어나도 바위처럼 든든히 묵묵히 견디는 사람이었던 것 같네요.”

“맞아요.”

“남자가 나쁜 행동을 했나요?”

“가끔씩 그랬죠.”

“당신이 술집에 있는 게 보입니다.”

“난 술을 좋아하지 않아요.” 엘런이 말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첫 남편이 폭음을 일삼았고 완력을 사용한 적이 있었다.

“아일랜드와 관련 있죠?” (사실 에든버러 주민 중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래요.”

와이즈먼 교수가 지적했듯이 고객이 나 같은 명백한 사기꾼을 대하면 ‘영매’가 아니라 고객이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런 사실 덕분에 나는 수월하게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에든버러 영매 강습은 흥미로웠을 뿐 아니라 장점도 있었다. 대개 참석자들은 이런 모임에서 위안을 얻는 상처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외부인을 가슴 뭉클할 정도로 친절하고 관대하게 대했다. 하지만 그중 로라는 예외였다. 로라는 인기 가수 크리시 하인드를 닮았고 단도직입적이고 도전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런 정감 넘치는 모임이 무심코 또 다른 기자를 받아들인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혼령과 교감하는 이유가 도대체 뭔가요?” 로라가 이본에게 따져 물었다. “혼령이 우리와 교류하고, 우리도 나중에 죽으면 남은 사람들과 대화하는 이유가 뭔가요?” 이본은 이렇게 대답했다. “혼령도 사람처럼 진화하죠. 이승에서 좋지 않은 사람이었다면 내세에서도 똑같은 사람이 됩니다.”

그때 내 옆에 있던 셰일라가 불쑥 끼어들었다. “우리 아버지는 생의 마지막 12년 동안 파킨슨병을 앓았어요. 정말 끔찍한 상태였어요. 그렇다면 아버지가 지금도 그렇다는 말인가요?” 이본은 “그렇진 않다”고 말했다. “이제 그는 혼령이 됐기 때문에 이승의 고통은 느끼지 않아요.”

심령술에 관심이 많은 회의론자들과 열렬한 옹호자들 모두에게 ‘좋은’ 영매에 관해 물었을 때 똑같은 몇몇 이름이 거론됐다. 그중에서 나는 고든 스미스(52)를 택했다. 스미스는 소위 ‘영매 이발사’다.

스미스는 영매답지 않은 영매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출신으로 허식 없이 수수한 그는 별명처럼 직업이 이발사다. 그 후 영매로서 고든이라는 이름을 바꾸지 않고도 국제적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공연은 하지만 개인적으로 고객을 받을 때는 돈을 받지 않는다. 그는 글래스고에서 북서쪽으로 약 50㎞ 떨어진 헬렌스버러 부근의 해변에 지은 아담한 집에 산다.

“영매에겐 한 가지 가치가 있을 뿐”이라고 스미스는 말했다. “사람들의 치유를 돕는 것이다. 누군가가 끔찍하게 죽으면 그걸 되돌릴 순 없다. 좋은 영매는 망자의 혼령을 보여줌으로써 남은 사람이 그 상처를 치유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스미스는 나에게 뭔가 보일 때만 내 점을 봐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점을 봐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작동 원리가 뭔가?

스미스는 “나와 그 사람 사이에 교감이 일어난다”고 했다. “진동이 느껴진다. 누군가의 혼령이 그곳에 있다는 뜻”이라고 그가 덧붙였다. “당신이 이 방에 들어오자마자 당신 뒤에서 아주 밝은 빛이 보였다. 지금까지 그런 경험은 한두 번뿐이다. 좋은 느낌이다. 하지만 그게 뭔지는 알 수 없다. 그게 뭔가 특별한 것이긴 하지만 내 영매 활동과는 무관하다. 그게 뭔지 모르겠다.”

“영매가 ‘여기 당신 조부가 왕림했어요’라고 말할 때가 많은데 당신은 실제로 혼령과 소통하는가?”

“그렇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텔레파시와 연결돼 있다. 영매로서 혼령의 메시지를 받지 못하면 앞에 앉은 사람의 심리상태와 과거 등을 간파해야 한다. 모든 영매는 심령술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심령술사라고 해서 반드시 영매는 아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좋다.” 스미스가 말했다. “당신의 모친을 예로 들어 보자. 모친은 최근에 돌아가셨지만(내가 알려준 정보가 아니다) 그 혼령은 아주 가까이 있다. 내가 당신과 이야기하는 동안 당신 모친이 보인다. 모친에게서 깊은 피로감이 느껴진다.” 스미스는 목소리를 바꾸진 않았지만 혼령의 말을 일인칭으로 전했다.

“모친은 이렇게 말한다. ‘그냥 내 몸이 포기해 버렸어요. 몸이 감옥이 돼버렸어요. 나는 그렇게 느껴요.’ 하지만 모친은 가족의 사랑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죽음을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제 모친은 평화롭다.”

무엇이든 좋게 말해주는 일반 영매와 달리 스미스는 내 어머니를 어느 정도 정확하게 묘사했다.

“모친의 성미가 좋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마지막엔 그런 자신을 혐오했다. 자신의 삶에 슬픔이 가득했지만 왜 슬픈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젠 이해한다. 모친은 분노나 죄책감이 남아 있기를 원치 않는다.” 그러고는 어머니의 몇 안 되는 가까운 친척 중 1명의 이름을 댔다.

스미스는 대다수 영매처럼 강신론 교회에 다닌 후 심령술에 빠졌다. 그때 나이 24세였다. “그런 곳은 처음이었다. 그 교회의 영매는 나와 함께 간 사람에게 말했다. ‘당신 곁에 앉은 사람도 영매군요. 당신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요?’”

나는 스미스에게 끝없는 공연으로 거액을 벌어들이는 심령술사가 문제라고 말했다. 스미스는 이름이 잘 알려진 한 심령술사를 두고 “저급하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장사를 한다”고 흉보면서도 이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이게 생계수단이 돼선 안 되는 이유를 모르겠다. 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에게 돈을 받지 않는다. 나는 늘 열심히 일하고 그 덕분에 출판 계약을 따고 강연도 하게 됐다. 그렇게 자꾸 발전한다.”

어떤 사람은 심령술이 실제로 효과가 있다면 스미스는 넓은 수영장이 딸린 대저택에서 살아야 한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스미스는 이렇게 말했다. “미래를 예측할 순 없다. 누군가를 아무리 뚫어지게 쳐다봐도 그를 콜드 리딩하거나 그와 관련된 망자의 이름을 알 수 없다. 알 수 있다면 그건 다른 곳에서 오는 거다. … 사람에겐 사후에도 남아 있는 부분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나는 심령 세계를 천국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유명한 오페라 감독 조나선 밀러는 사람 눈의 정확성을 고려할 때 “텔레파시 같은 따분한 ‘기적’”에 사람들이 그토록 사로잡히는 게 놀랍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영매가 되는 게 그 자신에게 도움이 될까?

“아주 큰 도움이 된다”고 스미스가 대답했다. “난 죽음의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삶의 두려움도 없다. 그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자신이나 자녀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삶에 방해를 받는다. 영적인 교류가 그토록 중요하고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게 왜 중요할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사는 것도 두렵지 않기 때문이다.”

글=로버트 챌머 뉴스위크 기자
번역=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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