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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사랑과 자녀의 미래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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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6호 34면

객지로 떠났던 자식들이 내 집 처마 밑으로 모여드는 때가 되었다. 어리다고 생각했던 내 아이들도 이젠 훌쩍 커서 추석 상에 술잔을 놓고 두런두런 세상 이야기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자식들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면 대견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반반이다. 실수투성이 아버지였지만, 아이들은 들판의 꽃처럼 스스로 잘 커주었다.


아이들은 내가 한창 어려웠던 때 태어났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지역감정의 벽을 넘겠다며 부산에서 출마하고 번번이 떨어지던 시절, 비서였던 나의 삶도 점점 힘들어졌다. 경제적 여유도, 아이들을 안아주며 정을 나눌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좋은 아빠, 좋은 가장이 되고 싶다는 마음과 그렇지 못한 현실 사이에 괴리가 생기면서 아이들에 대한 자책감이 커졌다. 거기에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아이들로 키우겠다는 욕심에 아이들을 엄하게 대했다. 자책감에 사로잡히고 엄하기까지 한 아버지를 아이들이 반길 리 없었다. 아이들과 관계가 소원해지고 내 마음도 상처투성이었다.


운 좋게 멘토에게 내 어려움을 고백하면서 마음의 평온을 찾았다. 아이들에 대한 자책감과 강박감을 모두 내려 놨다. 어차피 처음 겪는 부모 역할이 완벽할 수 없다며 스스로 위로했다. 내 마음이 편안해지자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도 변했다. 내 틀 안에 아이들을 맞추려는 욕심을 버리자 아이들은 자기의 개성과 행복을 찾아 스스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모 자식 사이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자책을 내려놓는 것 외에도 부모와 자식이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선 또 하나 필요한 것이 있다. 아이 스스로 미래를 설계하도록 지켜보는 것이다. 얼마 전 청소년들을 만난 자리에서 “내일 일을 모르는 것은 여러분이나 쉰 살 넘은 저나 똑같다. 그러니 우리는 모두 같은 출발선에 있는 거야. 누가 누구에게 충고해 주겠니. 우리 모두 열심히 살자”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내가 경험한 지난 50여 년은 과거의 세계이다. 과거 경험은 급변하는 세상의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어제의 지식이 내일이면 쓸 모 없어지는 세상이다. 아이들에게 펼쳐질 새로운 시대의 과제들은 아이들의 방식으로 푸는 것이 맞다.


그러나 자식 교육에 있어 우리 부모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경험에 기댄다. 경쟁이 치열한 한국 사회에서 앞서 가기 위해 어릴 때부터 입시 교육에 매달려야 한다고 믿고 있다. 초·중·고 12년과 대학 생활 내내, 심지어 직장을 잡고 가정을 꾸리는 일까지 부모의 돌봄과 수고는 멈추질 않는다.


이러한 부모의 노력은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경쟁적 교육 속에서 거의 모든 아이들이 패배자가 된다. 일류대, 일류 직장에 들어가 승자가 되는 것처럼 보여도 이는 잠시 뿐이다. 또다시 새로운 승자와 패자가 갈린다. 우리 교육은 모든 아이들을 예정된 패배자로 키우고 있는지 모른다.


둘째, 부모가 바라는 좋은 직장과 좋은 직업이 10년 뒤, 20년 뒤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미래학자들은 기술이 사람의 일자리를 빠르게 대체하면서 전문직종도 상당수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세계적인 대기업의 생존도 10년 앞을 장담할 수 없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선망 받는 직업이 아니라 미래의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할 힘을 키우는 것이다. 그 힘은 자신을 사랑하고 스스로 자긍심을 가질 때 나온다. 자긍심을 가진 아이는 사막에서도 꽃을 피운다. 반면 열등감은 아이들의 힘과 의지를 갉아먹는다.


자긍심을 키우는 것은 결국 부모의 사랑이다. 우리가 부모로서 평안을 유지하고, 자책에 빠지지 않으며, 아이들을 열등감으로 몰아넣지 않으면 된다. 그저 애정 어린 눈으로 지켜봐주면 자식들은 스스로 커 나간다.


중학생이 되어 어머니보다 훌쩍 커졌을 때, 어머니는 내가 잘못을 저지르면 나를 붙들고 우셨다. 그 눈물이 나를 바로 세웠다는 것을 나이가 들면서 깨닫는다.


추석이다. 올해 보름달은 예년보다 더 밝고 크다고 한다. 이번 추석엔 잠들기 전에 하늘에 뜬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바라보며 조상들께, 부모님께 그리고 우리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해보자. "사랑합니다."


안희정충청남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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