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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학생칼럼

대낮 도서관에서 마주치는 아버님들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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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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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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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준
세명대학교
사회복지학과 4학년

 아버님, 저는 오늘 도서관에 왔습니다. 대학 4년 중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내년 1월 치러질 국가시험을 앞두고 갈수록 마음이 초조해집니다. 도서관에 앉아 공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저와 같은 학생들이겠지요? 앉거나 일어설 때 조그만 소리라도 내면 눈총을 받는 이곳에 오늘도 저는 조용히 공부를 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아버님은 어쩐 일로 평일 대낮에 여기 앉아 계신가요? 단순히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메모를 하고 밑줄을 그어가며 읽고 계시네요. 지금쯤이면 직장에서 일하고 계실 시간인데…. 졸음을 쫓기 위해 눈을 비비고, 커피와 자양강장제, 비타민 음료까지 갖다 놓으셨네요. 무엇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시는 건가요?

 아버님 같은 분들을 ‘베이비부머’라 부른다는 얘기를 방송과 신문에서 봤습니다. 정년을 못 채우고 직장을 나와 일명 ‘반퇴 시대’를 살게 된 탓에 노후 대책은커녕 자식들 뒷바라지에 등골이 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버님과 같은 처지에 있는 분들이 700만 명이나 된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대부분 얼마 안 되는 퇴직금으로 창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실패해 밑천을 몽땅 잃었다는 가슴 아픈 사연도 읽었습니다.

 언론 매체를 통해서만 접하던 분들을 이렇게 눈앞에서 뵈니 가슴이 미어집니다. 누가 아버님을 회사에서 강제로 쫓았나요?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신 건 아닌 것 같은데…. 저로선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동안 저는 학교를 졸업한 뒤 취직하는 모습만을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취직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쫓겨나 또다시 도서관에서 재취업 준비를 해야 하는 건가요?

 저는 두렵습니다. 아버님 세대와 저희 세대 간 갈등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지금 저희들의 실업률이 올라가니, 앞으로 아버님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저희들에게 주는 정책이 일상화될까 봐 걱정입니다. 서로 갈등 없는 사회를 살아갈 순 없을까요? 서로의 것을 뺏고 뺏기는 약육강식의 사회풍조 속에 한숨만 깊어집니다.

 저도 현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제 앞에 앉아 공부하고 있는 아버님을 보면, 마치 나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허탈한 마음뿐입니다. 가장이라는 이유로 실업의 고통을 가족에게 호소하지 못하고 혼자 삭혀야 하는 아버님은 얼마나 더 허탈하실까요? 얼마 전까지 아버님들은 저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너희들은 나 젊었을 때보다 훨씬 치열한 경쟁사회에 태어나 안타깝다”고요. 그러나 이제는 그 말씀이 부메랑이 돼 아버님들에게 돌아왔습니다. 똑같이 힘든 처지가 됐으니 안도해야 하는 걸까요?

 무엇 하나 어찌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저희가 어찌하겠습니까. 그럼 내일 또 뵙겠습니다.

백세준 세명대학교  사회복지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