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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나쁜 대한민국 저출산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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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전수진 기자 중앙일보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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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정부서울청사 복도엔 근무시간 중간에 몰래 통화를 하는 여성 공무원이 많다. 대역죄라도 저지르는 양 고개를 수그린 채 휴지통 옆에서 “이모님, 오늘 야근을 하게 됐는데, 아이 1시간만 더 봐주시면 안 될까요” “선생님, 급식 당번 바꿔 주실 수 없을까요”라고 읍소한다. 통화 후엔 깊은 한숨을 쉬고 종종걸음으로 사무실로 들어간다. 바늘구멍을 뚫고 대한민국 관료사회로 진입한 유능한 공무원들의 비루한 일상을 엿보며 드는 생각은 하나다. ‘아이, 낳기 싫다’.

 이번 명절에도 “결혼은 언제?”부터 “아이는 언제?”까지라는 질문 릴레이를 하실 터다. 착한 조카며느리 코스프레를 하며 “곧 낳아야죠”라는 여자들 속마음을 대신 말씀드린다. “당신이 길러줄 것도 아니면서 웬 참견이심? 너나 잘하세요.”

 정부가 다음달 저출산 3차 대책 보따리를 풀 예정이라지만 큰 기대는 안 하기로 했다. 기대를 안 하면 실망할 일도 없으니까. 참 이상한 건, 복잡할 게 하나 없는 저출산 문제의 핵심을 정부가 못 짚는다는 거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아이를 낳아도 지금처럼 일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면 된다. 출산율 1.18이라는 숫자를 들이밀며 “이 매국노들아 왜 안 낳는 거냐” 닦달해봤자 우린 안 낳는다. 어느 순간부터 “힘들어도 애는 낳아야지”라고 하는 이들은 남자들뿐이다. 이모님과 선생님에게 읍소 전화를 하느라 지친 여자들은 “아이 낳고 말고는 자기 자유야”라는 말로 “낳으면 고생이야”라는 속마음을 눙친다.

 핵심은 여자에게만 씌워진 육아의 굴레다. 남자들이 육아를 하면 ‘도와준다’는 표현을 쓰지 않나. 비겁하기 짝이 없다. 차라리 시계를 거꾸로 돌려라. 여성들에게 고등교육을 금지하고, 현모양처를 최우선 가치로 주입시키면 우수한 한국 여성들은 훌륭한 결과를 도출할 게다. 이렇게 되면 올림픽 메달 수도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지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이름은 북한과 나란히 인권 랭킹에서 꼴찌를 기록하며 유엔 등 국제사회는 규탄 결의안을 제출하겠지만.

 일하는 여성들은 안다. 지금 이 판이 얼마나 불평등한지. 직장마다 야간 탁아소를 의무적으로 짓고, 부모가 육아 책임을 균등히 나눌 것을 법으로 적시하며, 5000만 국민 모두가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지”라는 낡은 사고방식을 버리지 않는 이상 출산율은 0으로 수렴할 뿐이다. 과감한 대책을 세워야 대한민국이 산다. 그리고 이번 추석부터는 금하자. “아이는 언제”라는 그 질문.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