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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수출 빠르게 식는 한국, 미시·거시정책 총동원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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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5호 3 면

1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있는 대형 TV 화면에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이 중계되고 있다. 이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정례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워싱턴 AP=뉴시스]

금리는 그 나라 경제의 거울이다. 모든 나라의 금리가 다 의미 있지만 미국의 기준금리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전 세계가 다 사용하는 달러 자금의 가격이 이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국제결제가 달러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특히 자본 거래의 경우 달러 자금의 비중은 엄청나다. 당연히 달러 금리 수준은 모든 투자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기축통화가 아닌 원화를 쓰는 한국은 달러가 부족해지면 외환위기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는 커다란 교훈을 얻은 바 있다.


대공황 뒤 통화·재정정책 필요성 절감 달러 금리의 변화는 대개 세 가지 통로를 통해 우리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첫째는 유동성 채널이다. 달러 유동성 자체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미국의 부동산 가격이나 주가는 자금의 가용성 여부에 많이 의존한다. 그런데 미국 금리 상승은 달러 유동성의 감소와 연결돼 있다. 달러 자금이 기본적으로 줄어들면 국내외의 다양한 자금 흐름이 변화할 수 있다. 특히 자금의 가용성이 줄면 금융회사 자금 사정이 나빠지면서 대출도 줄어들 수 있고 투자 등의 행태에 변화가 생긴다.


둘째는 수익률 채널이다. 기본적으로 기준금리는 무(無)위험수익률의 크기를 결정한다. 따라서 미국 기준금리 상승은 미 금융상품의 전반적 수익률 상승을 가져오면서 미국으로의 자금 회귀를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흥국에 투자된 자금이 미국으로 회귀하면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이 받는 타격은 커진다. 물론 2013년 버냉키 쇼크 당시 다른 신흥국에서 빠져나온 자금이 한국으로 유입된 적이 있기 때문에 모든 신흥국이 일률적으로 동일한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자금 유출 가능성에 대해서는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셋째는 환율 채널이다. 미국 금리 상승은 미 달러 가치를 상승시키면서 원화 약세로 연결될 가능성이 커진다. 원화 약세는 기본적으로 우리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수출 증가로 연결되면서 한국 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달러 금리 상승이 가진 긍정적인 측면이 이 부분인데 이를 잘 활용해야 한다. 이처럼 기축통화인 달러의 금리가 가진 의미는 매우 크다.


1929년 대공황이 남긴 교훈은 상당했다. 특히 경기 침체 시에는 팽창적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통해 적자를 내고 돈을 푸는 게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 또한 자기 혼자 살겠다며 수출 증가와 수입 감소를 시도하면 남들이 모두 힘들어지는 근린궁핍화 정책의 폐해를 경험한 것도 소득이었다. 이러한 대공황의 교훈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미국발 위기가 터지면서 많은 국가가 팽창적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시행했다. 그런데 재정정책에서는 문제가 발생했다. 국가 채무가 많은 국가들이 추가적 재정적자를 통해 빚을 늘리자 국가 부채가 급증하면서 재정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이러다 보니 재정정책보다 통화정책에 대한 의존도가 커졌다. 돈을 열심히 풀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미국이 비전통적 통화정책인 양적완화 정책을 시작하자 다른 나라도 앞다퉈 양적완화 정책을 도입했다.

미국 금리 연내 인상 불가피 전망 금리가 0%가 돼도 돈을 계속 푼다는 양적완화 정책은 큰 의미가 있다. 중앙은행이 금융회사 보유 채권을 매입하면서 돈을 지급하면 본원통화가 공급된다. 문제는 금융회사다. 금융회사가 소극적으로 대응하면 돈이 잘 돌지 않는다. 하지만 양적완화는 금융회사에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하면서 금융회사 자체의 파산 가능성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자금 사정이 힘들었던 금융회사로 유동성이 공급돼 금융회사가 일단 한숨을 돌리면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대출을 늘릴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금융회사의 건전성과 유동성이 개선되고, 위기 가능성이 작아지고 회복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한다. 유럽과 일본이 아직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하는 이유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 17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9월 인상설이 물 건너가면서 한국 경제를 비롯한 세계 경제가 일단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연내 금리 인상은 불가피하다. 내년 얘기도 나오고 있지만 미국 금리는 이제 방향을 잡았다. 미국 Fed 관계자들은 “Fed가 미국의 중앙은행이지 세계의 중앙은행은 아니다”는 언급을 종종 한다. 너무 기대하지 말라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정책이 이뤄지는 것을 보면 전 세계 경제상황을 고려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번 금리 동결의 경우 미국 내에서 물가가 매우 안정적인 것도 고려 대상이 됐지만 중국 경제의 성장 둔화나 유럽 경제의 부진에 대한 고려도 이뤄졌다. 사실 양적완화 기조를 지속하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지나치게 불어난 유동성이 언제 어떻게 경제에 위험요인이 될지 예측하기 힘들다. 비상시의 대책을 평상시까지 끌고 가는 것은 위험하다. 언젠가는 전통적 정책으로 돌아가야 하고 이제 그 시점이 도래한 것이다. 하지만 미국 경제의 나 홀로 독주 또한 어려운 얘기이므로 Fed는 균형 있는 접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통화정책이 매우 완만하고 안정적으로 진행되면서 대규모 자금 유출 등 큰 규모의 자금 이동이 발생할 가능성이 작아진 것은 한국 경제에 호재다. 더구나 최근 한국 경제에 가뭄 속 단비 같은 희소식이 전해졌다. 신용평가사 S&P가 한국 경제의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한 것이다. 우리 경제에 대한 등급은 5등급에 해당하는 A+에서 4등급에 해당하는 AA-로 조정됐다. 그런데 일본은 거꾸로 4등급에서 5등급으로 강등됐다. 사실 일본 경제에서 가장 큰 문제는 재정 적자와 국가 부채다. 일본 정부는 약 50조 엔을 세금으로 걷어 100조 엔을 지출하고 있다. 매년 50조 엔 가까운 적자가 나면서 이 적자로 인해 발행된 국채를 중앙은행이 사들이고 있다. 이것이 아베노믹스의 첫 번째 화살이다. 이러한 정책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재정 균형의 원년을 2020년으로 책정하고 있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일본에서 위기가 발생한다면 필시 재정위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일본 재정위기는 한국에는 재앙이다. 이웃 나라의 부진함이 우리에게 전이될 가능성이 매우 큰 상황이므로 일본의 재정상황에 대해 예의 주시해야 한다. 한국의 신용등급 향상은 고마운 일이지만 다른 부분은 여전히 어려운 구석이 많은 것이다.


수출도 주시해야 한다. 1~7월의 누적 액수를 보면 전년 동기 대비 수출은 10.6% 감소했고, 수입은 18.7% 줄었다. 경상수지는 624억 달러 흑자로 전년 동기 대비 32% 증가했지만 좋아하기만 할 상황은 아니다. 내수도 안 좋다. 2분기 경제성장률은 1분기 대비 0.3%(전년 동기 대비 2.2%)라는 빈약한 성장세를 보였다. 특히 소비의 경우 전 분기 대비 0.2% 감소(전년 동기 대비 1.7% 성장)를 기록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상반기 건물 공실률이 13.1%에 달했는데 2008년 위기 시에도 5.4%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매우 급격한 증가다.


자영업 위기 막고 신규 진출 억제해야 내수와 외수가 빠르게 식어가는 현 상황에서 미시와 거시적 정책 패키지를 총동원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 완화적 거시정책 기조를 계속 유지하면서 노동개혁을 포함한 미시적 정책에 주력해야 한다. 특히 한국 경제의 3대 뇌관인 자영업·부동산·가계부채 문제가 서로 얽혀 있는 점을 잘 감안해 이에 대한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 NICE 신용평가에 따르면 자영업에 유입된 부채가 600조원 정도다. 내수를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고, 특히 자영업발 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정년연장 조치 등은 퇴직자의 숫자를 줄이면서 자영업 진입 숫자를 줄인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의무교육 혹은 자격증 취득요건을 강화하는 등 다양한 진입 억제정책과 함께 이미 진입한 자영업자의 매출에 도움이 되는 많은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내수에 직접적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이는 김영란법의 시행은 대승적 관점에서 재고해야 한다. 취지와 명분은 좋지만 손실이 너무 크다. ‘상처뿐인 영광’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명분만이 아닌 실리를 고려한 대안이 필요하다.


이번 미국의 금리 동결 조치를 통해 우리는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내수와 외수가 빠르게 식고 있어 시간이 우리 편만은 아니다. 불확실성은 오히려 커졌다. 증권업계 등에서는 미국 금리 동결이라는 호재가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양한 노력을 속도감 있게 진행해 경기 둔화와 위기 예방에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할 시점이다.


윤창현?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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