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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독해지는 식인 박테리아 매년 7억명 감염, 50만명 사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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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5호 25면

강력한 항생제 메티실린에도 죽지않는 메티실린내성균(MRSA).

2009년 3월, 아프리카 남아공의 소설작가 알 존슨은 무펜자티 호수에서 평소처럼 수영을 즐겼다. 하지만 악몽은 시작되고 있었다. 발가락에 가벼운 상처를 입었다. 피는 바로 멎었지만 대수롭지 않던 상처는 다음날 심하게 부어올랐다. 동네의원 입구에서 졸도한 그는 대학병원 중환자실로 급히 옮겨졌다. 고열과 함께 혈압이 떨어지는 응급 상황 속에서 감염된 왼쪽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모두 48 시간 내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식인박테리아 (Flesh-eating bacteria)‘가 원인이다. 그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었다. 최근 일본에서는 식인박테리아가 급격히 늘어 3년간 712명이 감염돼 사망률이 30%에 육박했다. 일본은 주거환경이 한국과 비슷하다. 한국은 이런 감염균에 안전할까. 항생제는 이들을 잡기에 역부족인가.

10세기 중국소녀들의 발을 졸라맨 전족 풍습으로 상처와 감염이 생겨 사망자가 속출했다.

식인 박테리아 이용했던 중국의 전족 존슨의 왼발을 앗아간 병원균은 호수로 유입된 축산폐수가 원인이었다. 이 병원균들은 1000년 전 또 다른 발에 침투해서 수많은 소녀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10세기 중국 여인들의 전족(纏足) 문화 때문이다. 발을 감싼 형태로 사뿐거리는 춤을 추는 후궁의 모습이 ‘섹시 미인’의 아이콘이 됐다. 작은 발이 되기 위한 기이한 행동은 곧 여염집까지 퍼졌다. 졸라매는 정도가 점점 더 가혹해졌다. 여섯 살 난 계집아이의 발가락을 부러뜨리고 일부러 깨진 유리를 넣어 감염시켰다. 동물의 피와 약초를 섞은 물에 발을 담가서 감염 괴사부분을 떼어냈다. 이로 인한 전신 감염으로 사망한 소녀들이 10%에 달했다. 중국 여인들의 1000년 잔혹사 덕분에 이 병원균들이 더 독해진 것은 아닐까.


‘식인(食人)박테리아’는 이름과는 달리 무엇을 ‘먹지는’ 않는다. 다만 내뿜는 독소로 피부·근육아래의 연한 살을 괴사시킨다. 원래 이놈들은 우리 피부에 살고 있는 피부상재균(常在菌)들과 사촌간이다. 평상시 피부에 침투하는 병원균을 막아준다. 행여 피부 상처로 피부상재균이 피부장벽을 뚫고 들어간다해도 가벼운 종기정도로 그친다. 이런 ‘순한 놈’들이 왜 갑자기 돌변했을까. 왜 근육을 녹여 하루 만에 다리를 절단케 하고 매년 세계에서 7억명 감염, 50만 명을 사망하게 하는 걸까. 최근 과학자들은 이놈들이 정상 피부균과 모양새가 같지만 특별한 무기로 교묘하게 공격함을 확인했다.


저명학술지 『Cell』(2014년)에 의하면 ‘용혈성 연쇄상구균’이라 불리는 이놈들은 피부장벽을 뚫고 인체로 침입하면 일단 대기한다. 한두 놈이 공격해봐야 인체의 면역경보만 울려서 박멸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기다리던 놈들은 인체세포에 독소를 주사한다. 이 독소(스트렙토신)는 인체세포로 하여금 신호물질(아스파라긴)을 많이 만들어내게 한다. 이 신호를 받은 주변의 침입균들은 급속히 몸집을 불리고 동시에 포문을 연다. 마치 군대가 적을 공격하기 위해 기다리다가 공격신호를 받는 순간 모든 포를 동시에 쏘며 진격하는 것과 같다. 면역이 미처 준비가 안 된 틈에 전면공격을 하는 통에 인체는 고열·혼수상태가 된다. 응급수술로 감염부분을 절제해내고 항생제를 급히 투여해도 25%가 사망한다. 응급실·중환자실에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면 70% 이상이 죽는다. 연구자들은 이제 식인박테리아들에게 무기(독소)를 공급한 특정 바이러스들을 찾고 있다.


일본학자들은 일본 내의 식인박테리아와 항생제(에리쓰로마이신)사용량이 동시에 증가한 것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 항생제는 일본에서 6년 사이 5배나 많이 사용되었다. 감기환자에게도 다량 처방했기 때문이다. 결국 식인박테리아가 일본에서 기승을 떨치는 이유는 정상 피부 상재균들이 바이러스와의 밀매로 무기를 갖춘 변종이 나타났고 이놈들이 항생제 내성이 생긴 것이다. 실제 미국에서 식인박테리아는 전체 내성균의 20%에 육박한다. 생활환경이 우리와 유사한 일본에서 급증하고 있는 식인박테리아를 우리는 대비해야 한다. 하지만 식인박테리아 보다 훨씬 더 걸릴 위험이 많은 놈들은 여러 항생제에도 죽지 않는 수퍼박테리아(다제내성균)이다. 수퍼박테리아는 동네 슈퍼에서 사 온 고기에도, 병원의 건강검진 내시경에서도 옮긴다.

1 다제항생제 내성박테리아. 보통 균은 7개 항생제(흰 동그라미)에 모두 죽어서 투명해지나 다제내성 박테리아는 4종류 항생 제에도 끄떡없다.

수퍼박테리아는 내시경으로도 전염?


올해 초 미국 UCLA 대학병원에서 담도내시경 검사를 한 179명의 환자 중 7명이 수퍼박테리아에 감염돼 그 중 2명이 사망했다. 내시경이 제대로 소독이 안돼서 다른 환자의 수퍼 박테리아에 감염된 것이다. 일부 내시경의 구조에 문제가 있었다지만 환자들이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도 내성균이 4년 새 3.7배로 늘었다. 항생제가 가장 많이 쓰이는 곳인 병원에 수퍼박테리아가 제일 많다. 국내 대학병원 내과계 중환자실 환자의 50%가 내성균에 감염되어 있다. 또 외부요양시설은 내성균이 22%이고 이 중80%는 가장 독한 메티실린 내성균(MRSA)다. 수퍼박테리아에 감염된 환자는 치료효율이 떨어져서 사망률도 높고 치료기간도 길어진다. 이는 전 세계 문제다.


올해 3월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항생제 내성균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1조3000억원의 예산을 지원키로 했다. 최고 의료시설을 가진 미국에서도 매년 200만 명의 감염환자, 2만3000명의 사망자가 나온다. 인류는 이들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인가. 플레밍은 1928년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을 찾아낸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하지만 수상식 자리에서 그는 페니실린내성균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예언은 적중했다. 페니실린이 발견된 지 12년 뒤 내성균이 출현했다. 이어서 1950년의 테트라싸이클린은 9년 뒤 내성균이 나타났다. 강력하다고 소문난 1960년대의 메티실린은 6년 뒤 메티실린 내성균(MRSA)이 확인되었다. 1972년의 반코마이신은 16년 뒤 내성균이 나타났다. 신규항생제가 사용되면 내성균은 생길 수 있다. 죽이겠다는데 당연히 살아남는 변종이 생길 수 있다. 문제는 너무 빨리 생긴다는 것이다.


항생제는 생명체들의 방어수단이다. 숲속에서 나무들이 내뿜는 피톤치드도 나무에 달라붙는 곰팡이·세균들을 막아주는 항생제역할을 한다. 상용화된 대부분의 항생제는 땅속 미생물이 생산한다. 하지만 때리는 놈이 있으면 그걸 막는 놈도 생긴다. 아예 항생제가 들어오는 구멍을 막아버리거나 항생제를 분해하는 내성균도 나타났다. 사람뿐만 아니라 가축사료에도 항생제가 쓰였다. 그걸 먹이면 잘 자랐기 때문이다. 국내 유통 중인 고기에서 분리한 대장균의 44%가 항생제 내성, 10.5%가 다제내성이다. 결국 내성균은 항생제 오남용으로 발생하고 병원뿐만 아니라 세상 곳곳에 퍼져있다고 봐야 한다.

2 임질을 금방 치료한다는 페니실린 광고. 쉽게 자주 썻던 항생제덕분에 지금 임질균의 30~50%가 페니실린 내성이다.

흙에서 찾은 27년 만의 신규 항생제내성균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는 항생제를 적량 사용해야 한다. 둘째는 내성균을 막을 강력한 새로운 항생제를 찾아야 한다. 첫째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고 둘째는 과학자의 몫이다. 하지만 둘 다 만만치 않다. 내가 항생제를 많이 쓰면 나는 쉽게 낫지만 다른 사람은 내성균으로 죽는다. 항생제 남용에 국가의 강력한 규제가 필요한 이유다. 또한 새로운 항생제가 못 나오는 이유는 그동안 찾을 만큼 찾았고, 항생제가 큰돈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한 번 맞고 나면 병이 낫는 항생제보다는 계속 쓰이는 만성병치료제나 항암제시장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구촌의 수퍼박테리아의 확산으로 더 이상 미룰 수만은 없다. 정작 과학자들이 고민하는 문제는 그동안 찾을 만큼 찾아서 더 이상 지금의 방식으로는 새로운 항생제를 찾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2016년 브라질 리우에서 올림픽이 열린다. 요트경기가 열릴 호수에서 미리 연습하던 미국선수 13명이 집단 복통에 걸렸다. 리우하수의 70%가 정화되지 않고 호수로 들어온다. 게다가 신규 수퍼박테리아(MRSA)가 브라질 강에서 최근 발견되었다. 이들 수퍼박테리아를 완벽하게 억제하는 새로운 타입의 항생제는 없는가? 최근 답이 나왔다. 27년 만에 신규항생제를 발견한 것이다.

수퍼박테리아는 항생제를 오남용한 역풍이다. 지구촌은 이들과의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삽화 박정주]

저명학술지 『네이처』에 발표된 항생제(타이소박틴)는 종전과는 다른 방법으로 찾았다. 지금까지는 1928년 페니실린 발견당시의 방법과 유사하다. 즉 항생제를 생산하는 놈들이 일단 실험실에 자라야 했다. 하지만 흙 1g 속에 있는 백만 마리 균 중 99%는 실험실에서 못자란다. 연구진은 흙속에 마이크로 배양용 칩을 박아놓고 그곳에서 직접 키웠다. 덕분에 여러 놈들이 합쳐야만 만드는 항생제도 찾을 수 있었다. 게다가 새로 발견된 항생제(타이소박틴)는 변종이 만들어지기가 힘든 종류다. 즉 다른 대안을 찾아서 내성균이 생기기가 쉽지 않다. 결국 수퍼박테리아를 죽일 수 있는 놈은 흙속의 다른 균들이다. 이이제이(以夷制夷)의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셈이다. 물론 일반인은 개인위생과 면역을 높이는 것이 최고의 방어책이다. 식인박테리아나 수퍼박테리아는 메르스처럼 기침, 재채기로 옮긴다. 외출 후 반드시 노출부위를 잘 씻는 기본방비가 최고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2011)’에서 주인공은 낭만의 중세시대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야 할 곳은 바로 지금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한 마디 한다. ‘중세에는 항생제가 없어’. 항생제는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질병에서 구해냈다. 비록 인류가 항생제 남용으로 내성균의 역풍을 맞고 있지만 인류는 이를 교훈삼아 넘어설 것이다. 존슨 대통령은 말했다. ‘사람은 패한 게임에서 교훈을 배워 얻는 것이다. 나는 이긴 게임에서 아직 배움을 얻은 일이 없다’.


항생제 오남용 욕심에 지구촌은 수퍼박테리아의 싸움에서 패하고 있다. 이제 지구촌은 수퍼내성균과의 전쟁준비에 모든 지혜를 모아야 한다.


김은기 인하대 교수ekkim@in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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