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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푸른 하늘 보면 눈물 나나요, 가을이 선물한 감성 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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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싱숭생숭한 60대 사업가

01 해외여행보다 행복한 하늘 보기

Q (조울증일까 걱정하는 남성) 60대 남성입니다. 가을이 되니 마음도 약간 울적하고 별것 아닌 것에도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마음이 울적해질 만큼 스트레스받을 일이 현재는 없는데도 말이죠. 몇 년 전에 건설회사에서 퇴직하고 지금은 그와 관련된 사업을 스트레스 안 받을 정도로 조그맣게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도 잘 커서 하나는 결혼하고 하나는 직장생활 잘하고 있고요.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는데도 기분이 울적하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저 우울증인가요.

A (촉촉 감성 즐기라는 윤 교수) 화창한 날에 가을 하늘을 물끄러미 보고 있으면 그 푸른 색깔이 주는 투명함과 자연스러움이 마음에 청량감을 줍니다. 가을을 타게 되면 마음이 싱숭생숭하고, 기분이 좋다가도 푹 꺼지며, 갑자기 울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비극적인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도 들고요. 높고 파란 가을 하늘과 대조돼 내 삶이 더 건조하고 외로움이 더 나를 쓸쓸하게 만듭니다.

 ‘왜 이러지, 조울증 아닌가’라며 계절이 주는 감정의 롤러코스터에 걱정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조울증을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가을의 감정 기복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날씨이기에 우리 마음엔 이완이 일어나고 이완은 삶에 대한 철학적 사고를 활성화 시킵니다. ‘삶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하는 본질적인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누구의 시린 눈물이 넘쳐 저리도 시퍼렇게 물들었을까’라는 시처럼 시적 감수성도 섬세해집니다.

 성취를 향해 돌진하는 사람에게 갑자기 끼어든 철학적 사고와 시적 감수성은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정신 차려야지 왜 이러는 거야, 잡생각 말고 열심히 살아야지’ 하며 스스로 의지력이 약한 걸 탓하고 마음을 다잡기 위해 애써봅니다. 그러나 쉽지가 않습니다. 계절에 대한 마음의 반응은 이성적 통제를 넘어선 자연스러운 감성 시스템의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요,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습니다. 가을은 내 마음을 멀리서 바라보는 줌렌즈를 활성화 시키는 계절입니다. 멀리서 볼 때 삶이 희극으로 느껴지는 건 멀리서 본 삶이 꼭 아름답기 때문은 아닙니다. 멀리서 보면 더 넓게 보이고 내가 고민으로 여겼던 부분에 대해 집착이 옅어지며 여유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빠르게, 더 크게, 더 높게’라는 표어가 우리 삶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삶이 너무 피곤해집니다. ‘인생 뭐 특별한가’라는 약간의 염세주의적 사고를 할 때 사람의 행복감이 오히려 잘 유지됩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본디 쓸쓸하고 허무한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삶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철학적 용기에 가볍지 않은, 중후한 행복감이 내 마음에 자리 잡게 됩니다.

 짧은 가을입니다. 날씨 좋은 날 파란 하늘을 바라보는 여유의 시간, 10분을 가져 보세요. 먼 인도양까지 여행 가는 것보다 더 큰 이완의 행복이 찾아옵니다.

02 잠 못드는 가을밤과 화해하기

Q 가을이 주는 감성을 즐겨봐야겠네요. 그런데 또 한 가지 문제는 잠입니다. 누워도 잠이 잘 오지 않아 몇 시간씩 뒤척이게 됩니다. 그리고 어렵게 잠이 들어도 자꾸 깹니다. 가을을 타면서 수면 문제도 더 커진 것 같습니다. 잘 자는 법을 알고 싶습니다.

A 좋은 수면은 누우면 빨리 잠들고, 잠들면 깨지 않고, 그리고 일어나서 개운해야 합니다. 빨리 잠드는 것을 수면의 진입이라 하고 깨지 않고 잘 자는 것을 수면의 유지라고 합니다. 지금 수면의 진입과 수면 유지가 모두 잘 안 되는 상황입니다. 잠은 시간도 중요하지만 깊이도 중요합니다. 수면의 깊이는 지하 4층까지 있습니다. 지하 3~4층까지 수면의 깊이가 쭉 내려가야 깊은 잠이고 깊은 잠이 충분히 있어야 아침에 개운함이 느껴집니다. 뇌가 수면을 통해 충분히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잠잔다고 10시간씩 누워 있어도 깊은 잠을 자지 못하면 자도 잔 것 같지 않습니다. 지하 1~2층의 얕은 잠만 잤기 때문이죠. 뇌의 스위치가 다 꺼지지 않고 언제든 일어날 준비를 한 채 ‘스탠드 바이’ 상태로 살짝 잠들었던 것입니다. 야간 경계 근무를 밤새 한 셈입니다.

 수면 문제는 조기에 잘 해결해야 합니다. 불면증은 만성화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계절의 변화든 실제적인 어려움이든 특정 이유에 의한 스트레스 때문에 불면이 시작됐는데, 나중에는 그 요인이 사라져도 잠이 계속 잘 오지 않아 당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트레스 요인이 사라져도 계속 잠이 잘 오지 않는 것은 불면 자체가 스트레스 요인이 되어 다시 불면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입시에 성공해야 할 텐데, 힘들지는 않나’라는 스트레스 요인이 불면을 일으켰다면 나중에는 ‘오늘도 새벽에 깨서 홀딱 새면 어떡하지’라는 걱정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어 내 수면을 방해하게 됩니다. 불면에 대한 걱정이 불면을 일으키게 되면 악순환의 고리가 생겨 남들 보기엔 걱정거리가 없어도 불면이 지속합니다.

 수면 문제가 어려운 건 세상일은 열심히 하면 해결이 되는데 이 문제는 열심히 해결하려 노력할수록 더 잠이 오지 않는다는 점 때문입니다. 잠 잘 자는 분은 불면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잠을 안 재우는 것이 고문의 한 방법일 정도로 불면은 괴로운 일입니다. 괴로운 만큼 이런저런 노력을 하게 되는데 오히려 불면의 늪에 더 빠지기 일쑤입니다.

 ‘노력을 안 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만성화된 불면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략의 핵심은 앞에서 ‘오늘 잠을 못 자면 어떡하지’에 대한 불안을 줄어들게 하는 겁니다. 잠에 대한 염려가 오히려 내 잠을 망치고 있는 황당한 상황입니다. 오후 시간부터 잠이 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하고 그래서 운동 등 여러 행동도 하게 되지만 오히려 이 불안 반응이 불면을 만들어 버리는 것이죠.

 불안 반응은 뇌를 각성시켜 생체 시계가 밤을 인식해 잠들려고 해도 잘 안 되고 잠이 들어도 깊은 잠에 이르지 못하게 합니다. 불안에 의한 뇌의 각성 상태를 낮춰 줘야 수면이 개선되는데 쉽지 않습니다. 세상일은 열심히 하면 해결되는데 불면증은 의지력을 갖고 열심히 자려고 노력할수록 오히려 불안-스트레스 반응이 커져 괴롭기만 합니다. 불면증이 너무 괴로워 잘 자기 위해 저녁 먹고 오후 7시부터 이부자리에 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눕는다고 잠이 오지 않습니다.

 ‘난 오늘 새벽 1시까지 자지 않을 거야, 소중한 나의 시간을 즐길 거야’라는 역설적 접근이 도움이 됩니다. 잠을 자기 위해 노력하면 잠과 전투를 벌이는 상황이 되어 불안감이 더 증가하게 됩니다. 잠자리에서는 안 오던 잠이 회의나 강의 시간에는 쏟아집니다. 자면 안 되는 상황이라 청개구리 반응처럼 불면에 대한 불안감이 오히려 줄고 뇌가 이완되기 때문입니다.

 잠이 오지 않는다면 잠자리에 20분 이상 누워있지 마세요. 일어나 마루에서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다가 다시 잠이 오려고 하면 그때 잠자리에 드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잠도 오지 않는데 계속 뒤척이며 누워있다 보면 잠자리가 수면과의 전쟁터가 되어 버립니다. 이미 잠자리가 전쟁터라면 잠자리를 바꾸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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