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미운 오리를 백조로 만든 존 리의 위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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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의도엔 ‘존 리 펀드’와 ‘그 외 펀드’가 있다는 말이 나온다. 메리츠자산운용의 메리츠코리아 펀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 펀드가 업계 돈을 쓸어담고 있어서다. 과장이 아니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최근 1개월 간 일반 국내 주식형 펀드로 약 6900억원의 돈이 모였는데, 그 중 3200억원 가량이 메리츠코리아로 유입됐다.

메리츠코리아펀드가 ‘존 리 펀드’로 불리는 데엔 이유가 있다. 2013년 12월 존 리 대표 취임 이후 메리츠운용은 말그대로 환골탈태했다. 메리츠운용의 2011~2013년 수익률은 -9.36%, 0.58%, -3.47%로 업계 꼴지 수준이었다. 하지만 2014년엔 14.86%로 전체 운용사 중 두 번째로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본지의 올 상반기 펀드 평가에서도 수익률은 2위(31.25%), 자금 유입액은 1위(8121억원)였다.

미운 오리를 백조로 만든 비결이 뭘까. 존 리 대표는 “상사가 아니라 고객을 위해 일하는 문화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존 리 대표는 연세대 재학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2013년 메리츠운용 대표가 되기 전까지 미국에서 살았다. 1991년 상장된 미국 최초의 외국인 투자 전용 한국 펀드 스커더인베스트먼트 코리아펀드를 만들고 그 뒤 20여년 간을 운용하기도 했다. 그는 “스커더인베스트먼트가 쥬릭보험그룹, 도이치방크에 인수될 때마다 소속이 바뀌긴 했지만 투자 철학과 일하는 스타일은 스커더에서 배웠다”고 했다. 그가 배운 투자 철학과 일하는 스타일이 바로 ‘고객 중심’이다.

존 리 대표는 “처음 메리츠운용에 와서 봤더니 직원들이 고객이 아니라 상사를 위해 일하더라”고 말했다. 직원들은 상사에게 제출할 보고서를 ‘화려하고 아름답게’ 만드느라 야근을 했다. 그것부터 없앴다. 그는 “아이디어는 실행하기 위한 것이지 보고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직급제도 없앴다. 사원에서 대리, 과장, 부장, 상무로 이어지는 직급 때문에 직원들이 직속 상사의 눈치를 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메리츠운용에선 e-메일 보고가 원칙이다. 매니저들은 보고서를 만들 시간에 기업 탐방을 다닌다. 보고는 해당 사안과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보고자가 정해진다. 사원도 사장에게 직접 메일로 보고할 수 있다.

보고는 e메일로 간소하게 하지만 운용보고서는 반대다. 메리츠운용의 운용보고서는 구어체로 쓴 장문의 편지 형식이다. 지난 분기에 어떤 종목은 왜 담고 왜 제외했는지, 중국 탐방에 가서는 무엇을 봤는지 같은 것들이 상세하고 읽기 쉽게 쓰여 있다. 존 리 대표는 “고객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읽기 쉬운 운용보고서를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율 출퇴근제도 존 리 대표 취임 후 생긴 변화다. 메리츠운용에선 e메일 한 통이면 아이의 유치원 행사에 참석한 후 출근하는 게 가능하다. 메일로 내용을 공유하면 끝이다. 결제를 받을 필요가 없다. 회식도 없앴다. 여타 운용사와는 다른 문화를 적창시키기 위해 사무실도 여의도에서 북촌으로 이전했다. 그가 이런 변화를 시도하는 건 “직원이 행복한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다. 고객이 행복하려면 수익률이 높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직원이 행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직원이 회사 가기 싫어 하는데 수익률이 잘 나오겠느냐”고 반문했다.

코스피가 급락한 최근 1개월 사이에도 존 리 펀드의 인기는 꺾이지 않았지만 수익률도 그런 건 아니다. 제로인에 따르면 메리츠운용의 최근 1개월 수익률은 -10.78%으로 하위권이다. 연초 이후 수익률은 여전히 25.15%로 2위지만, 최근 급락장에선 방어를 제대로 못한 것이다. 하지만 존 리 대표는 “단기 수익률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번 사면 최소 3년은 투자할 종목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주가가 빠진 건 기업 펀더멘털(기초체력)이 아니라 투자 심리, 센티멘트 때문”이라며 “메리츠 펀드는 펀더멘털이 튼튼한 종목을 들고 있는 만큼 장기투자를 권한다”고 말했다.

정선언 기자 jung.sunean@joongang.co.kr
[사진 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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