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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년 176세’ 다윈의 거북, 기네스북 오른 최장수 동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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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3호 25면

1 거북의 등딱지는갈비뼈와 척추,어깨뼈와 엉덩이뼈일부가 융합돼서만들어졌다.

2006년 6월 24일 전 세계 언론에는 어떤 거북의 부고가 실렸다. 1831년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해리엇이 전날 심장마비로 숨졌다는 것이다. 향년 176세. 해리엇은 찰스 다윈이 갈라파고스 제도를 탐사하고 돌아올 때 데려온 세 마리 거북 중 한 마리였다. 찰스 다윈은 한 해군 장교에게 거북을 맡겼는데, 그 장교가 호주로 부임하면서 데리고 갔다. 처음에는 수컷인 줄 알고 해리라고 불렀지만 유전자 조사를 통해 암컷임을 알고 이름을 해리엇으로 바꿨다. 해리엇은 세계 최장수 동물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거북이 장수하는 까닭은 등과 배에 있는 단단한 껍질이 내장과 머리를 포함한 온몸을 감싸주기 때문이다. 단단한 껍질이 있는 동물은 많지만 껍질의 구조가 거북과는 완전히 다르다. 예를 들어 게의 껍질은 피부가 단단하게 변한 것이다. 게는 껍질을 바꾸기 위해 연한 몸이 단단한 껍질에서 빠져나와야만 한다. 하지만 거북의 껍질은 갈비뼈, 배갈비뼈, 척추 그리고 어깨뼈와 일부 엉덩이뼈를 포함한 49~50개의 뼈가 통처럼 변형된 것이다. 따라서 무거운 껍질 때문에 속도가 느리다고 껍질을 버리고 몸만 빠져나오는 만화영화의 장면은 불가능하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허파가 있는 동물들은 가슴을 확장시키면서 숨을 들이쉬고 가슴을 수축시키면서 숨을 내쉰다. 거북은 이게 불가능하다. 거북은 갈비뼈가 등딱지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동물과 같은 방식으로는 숨쉴 수가 없다. 배 근육을 수축시키거나 목 바닥을 진동시키는 특이한 방식으로 공기를 허파로 들이쉬어야 한다. 다른 동물들이 거북과 같은 껍질을 발달시키지 않은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2 갈라파고스 제도에서?태어나 176년을 살다가?2006년 6월 호주동물원에서 숨진?해리엇.


창조론자들 “진화의 중간형태 없다” 주장거북은 개체의 수명만 긴 것이 아니다. 거북류는 중생대 트라이아스기부터 지금까지 살아 온 파충류의 한 분류군이다. 등딱지(背甲)와 배딱지(腹甲), 두꺼운 가죽 피부, 느린 움직임으로 거북은 다른 동물군과 쉽게 구분된다. 바다 거북에게는 헤엄치기에 좋은 지느러미발이 있고, 육지 거북에게는 단단하고 짧은 다리가 있다.


거북은 흔히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불린다. 2억 1000만 년 전의 거북도 오늘날의 거북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도대체 거북의 등딱지와 배딱지가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주는 화석 증거가 나타나지 않았다. 등딱지와 배딱지는 진화론자들에게는 초기 파충류 진화에 있어서 가장 큰 수수께끼였다. 심지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거북의 진화는 척추동물의 역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하지만 거북이 다른 척추동물에 비해 더 잘 보존된 화석을 많이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거북의 기원을 알려주는 초기 화석은 없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창조론자들은 거북을 창조의 강력한 근거로 주장했다. 정말로 진화가 일어났다면 초기 파충류에서 거북에 이르는 진화 경로를 보여주는 전이 형태가 쉽게 발견돼야 하는데, 그런 중간화석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초기 파충류에서 등딱지와 배딱지가 생기는 과정은 미묘한 것이 아니라 확연한 변화를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트라이아스기에 처음 나타난 거북은 현대 거북의 전형적인 특징을 모두 지닌 매우 발달된 형태의 거북이었음을 창조론자들은 강조한다.


그들은 또한 등껍질이 없던 동물이 등껍질을 진화시켜야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불완전한 등딱지는 보호 기능이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장점보다는 포식자로부터 도망치는 데 성가신 방해물이 되는 단점이 더 컸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창조론자들은 거북은 처음부터 등딱지와 배딱지 같은 거북의 독특한 특징을 완전히 갖추고 창조됐으며, 이것은 각 동물들이 종류대로 창조됐다는 성서의 말씀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한 마디로 살아 있는 화석인 거북은 진화라는 것이 애당초 없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강력한 증거라는 것이다.


이렇게 서툰 논거는 자가당착에 빠지는 위험을 자초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전이과정을 보여주는 화석이 하나라도 나타나면 한번에 무너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화석 증거들이 최근 10년 사이에 속속 나타나면서 거북의 진화 과정이 서서히 베일을 벗고 있다.


창조론자들이 가장 오래되었다고 주장하는 거북은 2억 1000만 년 전에 살았던 프로가노켈리스(Proganochelys)다. 물론 프로가노켈리스도 현생 거북과는 달리 입 끝이 뾰족하고 이빨이 있기는 했지만 이런 소소한 차이는 없는 것으로 쳐주자. 거북에게 중요한 특징인 등딱지와 배딱지는 완벽하니 말이다.

거북의 할아버지 파포켈리스. 진화학자들이 예상한 대로 거북의 조상에우노토사우루스와 거북의 아버지 오돈토켈리스의 중간 형태를 띠고 있다.

시간은 진화론자들에게 미소진화론자들이 거북류의 조상동물로 거론하는 화석 생물은 2억 6000만 년 전 고생대 페름기에 살았던 에우노토사우루스(Eunotosaurus)다. 에우노토사우루스는 갈비뼈 아홉 개가 넓적하게 확장되었다. 거북의 특징이다. 하지만 현생 거북에서 보이는 확장된 척추는 보이지 않는다. 등딱지와 배딱지도 없다. 에우노토사우루스는 전문화된 등딱지가 있는 현생 거북과 다른 파충류 사이의 중간 형태의 해부학적 특징이 있는 셈이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에우노토사우루스의 발견을 거북의 딱지가 다른 신체구조와 마찬가지로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를 통해 점진적으로 변형돼 형성된 것을 보여주는 증거로 받아들였다. 이제 에우노토사우루스(확장된 갈비뼈)-프로가노켈리스(이빨)-현생 거북(배딱지?등딱지?부리)이라는 연결이 확인됐다.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에 살았던 오돈토켈리스는 배딱지만 있고 등딱지는 없다. 거북이 처음부터 현생 거북과 같은 모습으로 창조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완고한 창조론자들에게는 턱없는 소리였다. 그들에게 에우노토사우루스의 확장된 갈비뼈와 거북의 등딱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또 다른 중간화석을 요구했다.


마침내 2008년 중국에서 거북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화석이 발견되었다. 2억 2000만 년 전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에 살았던 오돈토켈리스(Odontochelys)가 바로 그것이다. 오돈토켈리스의 배딱지는 완전히 발달했지만 등딱지는 부분적으로만 형성되었다. 오돈토켈리스는 에우노토사우루스와 현생 거북의 중간 형질을 갖는다. 배딱지가 먼저 형성되었다는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 왜냐하면 거북류의 배아 발생 과정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거북류의 수정란이 발생할 때 항상 배딱지가 등딱지보다 먼저 형성된다. 그런데 오돈토켈리스의 뼈에는 잠수병의 흔적인 무혈성 괴사 흔적이 있다. 배딱지와 잠수병의 흔적이 말하는 것은 분명하다. 육상에서 기원한 파충류가 물로 들어갔다. 밑에서 공격하는 포식자를 막을 수 있는 배딱지는 만들었지만 아직 수중 생활에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한 것이다. 신생대까지도 나타나던 거북류의 잠수병 흔적은 현생에 들어서야 사라졌다.


거북류에서 등딱지는 훨씬 후에 발생하는데 그 시기는 공룡이 등장하는 시기와 일치한다. 등딱지는 갈비뼈와 척추 그리고 어깨뼈가 융합돼 만들어진다. 이때 어깨뼈는 어쩔 수 없이 갈비뼈 아래로 이동해야 한다. 실제로 현생 거북의 배아발생 과정에서도 어깨뼈가 처음에는 갈비뼈 위쪽에 있다가 갈비뼈 아래로 이동한다. 오돈토켈리스의 경우 어깨뼈가 두 번째 갈비뼈에 걸쳐져 있다. 아직 등딱지는 없지만 등딱지가 생기는 중간 과정에 있는 것이다.


이젠 에우노토사우루스(확장된 갈비뼈)-오돈토켈리스(배딱지)-프로가노켈리스(이빨)-현생 거북(배딱지와 등딱지, 부리)이라는 연결이 확인됐다. 그러면 이젠 창조론자들이 두 손을 들었을까? 그럴 리가 없다. 그들은 또 다른 중간화석을 요구한다. 하지만 시간은 그들의 편이 아니다.


지난달 25일 과학 매거진 ‘네이처’에는 2억 4000만 년 전 원시 거북에 관한 논문이 실렸다. 독일과 미국 공동연구팀은 독일 남부 벨베르크에서 몸 길이 20㎝의 원시 거북 화석을 발견하고 파포켈리스(Pappochelys)란 이름을 붙였다. 그리스어로 ‘할아버지(Pappos)’와 ‘거북(chelys)’의 합성어다. 거북의 조상 에우노토사우루스와 거북의 아버지 오돈토켈리스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이름이다. 파포켈리스는 에우노토사우루스와 오돈토켈리스의 중간 형태를 띤다. 파포켈리스는 예상한 대로 막대 모양의 뼈가 늘어선 형태의 배 구조를 갖고 있다. 이젠 에우노토사우루스(확장된 갈비뼈)-파포켈리스(막대 모양으로 늘어서 갈비뼈)-오돈토켈리스(배딱지)-프로가노켈리스(이빨)-현생 거북(배딱지와 등딱지)이라는 일련의 고리가 만들어졌다.


거북의 배딱지와 등딱지 형성은 생물에서 흔히 나타나는 대진화 현상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이면서 초기 파충류 진화의 극적인 사건이다. 


공대 교수의 창조론 강의는 부적절 거북은 장수한다. 거북류는 정말로 오래된 분류군으로 남아 있고, 거북의 진화를 부인하려는 창조론자들의 노력도 참으로 오래간다. 최근 연세대의 한 공과대학 교수가 신입생을 대상으로 하는 창조론 강의를 개설했다가 여론에 밀려 취소했다. 적어도 대학에서는 전공자가 가르쳐야 한다. 우리나라 대학에 개설되어 있는 창조론 관련 강의는 상당수가 지질학자나 생물학자가 아닌 공학자와 신학자가 개설한다는 것은 일종의 코미디이며 학문적인 근거 없이 신앙을 강요하는 행위는 학생들에 대한 인권침해다.


동물 이름에 장수도마뱀, 장수지네, 장수하늘소처럼 앞에 ‘장수’가 붙는 경우가 많다. 오래 산다는 뜻이 아니라 장군처럼 크다는 뜻이다. 장수거북도 마찬가지다. 현생 거북 가운데 가장 큰 종인 장수거북은 놀랍게도 등딱지가 없다. 가죽이 등을 덮고 있다. 거북의 진화에 대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창조론자의 투정을 받아줄 만큼 한가하지 않다.


이정모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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