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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귀 뚫고 당첨됐는데…기약없는 보금자리 사전예약

중앙일보

입력

김요한(43·서울 거여동)씨는 2010년 11월 4.6대 1의 청약경쟁률을 뚫고 경기도 하남시 감일지구의 보금자리주택 사전예약에 당첨됐다. 김씨는 이때만 해도 처음으로 내집을 마련한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입주는 커녕 계약도 하지 못해 한숨만 깊어간다. 2012년 12월 정식 분양계약(본청약)을 거쳐 2015년 6월 입주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6월 감일지구의 사업 완공시기가 2015년에서 2020년으로 조정됐다. 김씨는 “사전예약 당시 태어난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입주할 줄 알았는데 앞으로 남은 5년을 어떻게 기다려야 하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분양시장의 ‘로또’로 불리던 보금자리주택 사전예약에 당첨된 7000여 가구의 무주택자가 한숨 짓고 있다. 정권이 바뀐 뒤 당초 계획과 달리 완공시기가 계속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보금자리주택은 서울 도심에서 가까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지역에 공급되는 집으로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주택정책이다.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훨씬 싸 ‘반값 아파트’로 불렸다. 당시 정부는 주택수요를 분산하기 위해 사전예약제도를 도입했다. 착공에 앞서 전체 주택의 일부에 대해 미리 당첨자를 뽑아두는 것이다. 사전예약 당첨자는 일반분양인 본청약 때 계약만 하면 입주권을 받게 된다.

2009~2010년 3차례에 걸쳐 보금자리주택 3만7564가구의 사전예약이 실시됐다. 이중 2만9940가구는 본청약을 거쳐 대부분 입주까지 끝났다. 나머지 7624가구는 아직 본청약도 하지 못했다. 2010년 사전예약을 접수한 경기도 구리시 갈매지구(552가구)와 시흥시 은계지구(3787가구), 감일지구(3285가구) 등이다. 사전예약 당시 이들 주택의 본청약 예정시기는 2012년 9~12월이었다. 3년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본청약 지연 이유는 정부 정책이 바뀌면서 보금자리주택이 뒷전으로 밀려나서다. 박근혜 정부 들어 보금자리지구 추가 개발이 중단됐다. 기존 지구의 사업도 지지부진해졌다. 일부 지구는 지정이 해제되기도 했다. 3차 지구인 광명 시흥지구와 4차 지구인 하남감북지구다.

LH 관계자는 “토지 소유자의 사업 취소 민원이 거세 토지보상이 늦어지면서 착공과 본청약을 할 수 없는 곳이 많다”고 설명했다.

사전예약 당첨자는 ‘전세난민’이 됐다. 주택을 구입하거나 다른 주택 분양에 당첨되면 사전예약 당첨자격을 잃기 때문에 전셋집을 전전하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몇천 만원씩 오른 보증금도 올려줘야 한다.

분양금액 마련도 걱정이다. 사업기간이 길어지면 사업비가 늘어 사전예약 때 발표된 추정분양가보다 분양가가 오를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9월 본청약을 실시한 하남시 미사지구 전용 84㎡형 분양가는 2011년 사전예약 때의 추정분양가보다 1000만원가량 상승했다.

강원대 이재수 교수(부동산학과)는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사전예약 당첨자의 금전·심리적 피해가 상당하다”며 “입주 지연 기간에 주택도시기금을 통해 전세보증금을 저리로 대출해주거나 다른 지구에 우선 입주하는 방법 등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LH 관계자는 “사업을 최대한 서두르고 있다”며 “입주 지연에 대한 보상으로 분양가를 올리지 않고 평면·마감재 등 품질에 신경을 많이 쓸 것”이라고 말했다.

한진 기자 jinnyl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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