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을 환영합니다"…정부 거부에도 난민 환영하는 유럽인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28일(현지시간) 그리스인 산드라 실리게리두(43)는 유명 관광지 칼리노스섬에서 요트를 타던 중 의식을 잃고 바다에 떠있는 한 남성을 발견했다. 시리아 난민인 무함마드(28)는 이날 새벽 그리스로 넘어오다 배가 뒤집혀 목숨을 잃을 처지였다. 실리게리두 일행이 극적으로 난민을 구출한 이야기를 인디펜던트가 1일 보도하자 유럽 사회에서는 큰 반향이 일었다. 실리게리두는 페이스북에 “인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함께 행동하자”며 “난민 보호 캠페인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갈수록 악화하는 난민 사태에 유럽 시민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노골적으로 난민을 추방하거나 심지어 장벽까지 쌓는 유럽 정부들의 배타적인 행동과 대비된다. 각국이 난민 사태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는 동안 시민들은 이들에게 집과 생필품을 제공하며 온정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독일 난민 구호단체 ‘난민을 환영합니다’에는 지난달 말부터 자신의 집에 난민을 머물게 하고 싶다는 요청이 800건 가까이 들어왔다. 이 단체는 난민들이 독일에 정착해 독일어를 익히고 정착할 수 있게 도와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많은 난민이 몰리고 있는 독일 뮌헨역 앞에는 최근 시민 봉사자 수백명이 일하고 있다. 1일 오스트리아 빈 역 앞에서는 시민 2만명이 모여 “난민을 환영합니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정부의 소극적인 난민 대응을 규탄했다.

앞서 지난달 31일 아이슬란드의 여성 작가 브린디스 비요르그빈스도티르도 페이스북에 “정부가 더 많은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전날 아이슬란드 정부가 “인도적 차원에서 시리아 난민을 50명 받겠다”고 밝힌 데 대한 반발이다. 비요르그빈스도티르가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자 만 하루도 안돼 아이슬란드인 1만 여명이 “난민을 우리집에서 지내게 하겠다”고 글을 올렸다. 아이슬란드 전체 인구는 32만 명이다. 시민들의 호소에 정부는 “난민 수용 쿼터를 대폭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난민 사태는 지난달 27일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국경 인근 냉동트럭에서 시리아 난민 시신 71구가 발견되면서 촉발됐다. 이후 헝가리 정부가 ‘난민 열차’를 허용했다가 번복하면서 난민들은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됐다. ‘난민은 처음 발을 디딘 국가에 망명 신청을 해야한다’는 유럽연합(EU)의 더블린 조약을 무시하고 난민의 이동을 방조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1일 “독일 정부가 최근 더블린 조약 적용을 유보하면서 도덕적 해이를 유발했다”며 잘못을 인정했다.

국제이주기구(IOM) 발표에 따르면 올 들어 지중해를 건너서 유럽에 유입된 난민은 35만1314명. 작년 1년간 들어온 난민 21만9000명을 넘어섰다. 올해 유럽으로 넘어오다 숨진 난민은 2643명이다. 독일ㆍ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들은 “유럽 각국이 난민 책임을 나눠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체코ㆍ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들은 “난민에 대한 부담을 나누는 시스템에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EU는 다음주 중 난민을 국가별로 나누고 경제적인 목적으로 넘어온 이주민들은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등의 내용을 담은 초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사진설명]
"정부가 시리아 난민을 더 받아들여야 한다"며 캠페인 펼치는 아이슬란드 여성 작가 브린디스 비요르그빈스도티르
바다에서 표류하고 있던 시리아 난민을 구해낸 그리스 여성 산드라 실리게리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