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 시효 지난 채권으로 16억원 뜯어낸 불법 추심업체

중앙일보

입력

소멸 시효가 지난 채권을 헐값에 대량 매입해 16억원을 챙긴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효력이 사라진 채권이라도 대법원 전자소송 시스템을 통해 지급 명령을 신청하면 채무 효력이 다시 발생한다는 허점을 악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 연제경찰서는 2일 사기 등 혐의로 최모(36)씨 등 9명을 구속하고 법무사 서모(53)씨 등 2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최씨 등은 브로커에게 건강식품·도서·생활용품 등을 할부로 구매한 뒤 대금을 갚지 못한 이들의 채권 11만 건을 원금의 2~6% 수준의 헐값에 사들였다. 그러고는 대법원 전자소송 시스템을 통해 지급 명령을 신청, 채무자로부터 16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다.

일반적으로 채권은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3년간 추심을 하지 않으면 효력이 상실된다. 하지만 이들은 대법원 전자소송 시스템을 통해 지급 명령을 신청할 경우 채무자가 이의신청을 하지 않으면 지급 명령 금액이 확정된다는 점을 악용했다.

이들은 법무사 3명에게 자문료 명목으로 100만~130만원을 지급하고 법무사 명의로 소송을 냈다. 합법적인 소송으로 가장해 채무자로부터 돈을 쉽게 뜯어내기 위해서였다. 법원 집행관을 사칭해 ”집을 압류하겠다“ ”원금 일부를 먼저 갚으면 압류 절차를 중단하겠다“고 협박해 돈을 받기도 했다.

이런 방법으로 최씨 등은 2012년 3월부터 지난 1월까지 2만6851명을 상대로 303억6000만원 상당의 지급명령을 법원에 신청했다. 벌어들인 부당이득은 최소 16억원에 달한다.

경찰 관계자는 ”법원 시스템의 허점을 악용한 지능형 범죄”라며 “같은 방법으로 돈을 뜯어내는 불법 채권추심업체가 전국에 더 있는 것으로 파악돼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부산=차상은 기자 chazz@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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