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중국 전승절 행사가 세계의 축복을 받으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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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사흘 뒤인 9월 3일 베이징에선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행사가 열린다. 박근혜 대통령이 고심 끝에 참석하기로 결단을 내린 이 행사는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지구촌의 빅이벤트다. 이를 앞두고 우리는 중국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이웃인지, 또 국제사회에서 어떤 존재인지 숙고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기대는 중국이 미국과 함께 세계를 이끄는 주요 2개국(G2)에 걸맞은 리더십이 있느냐는 질문으로 집약된다. 그 답은 중국이 늘 강조하는 ‘책임 있는 신형대국’ 같은 레토릭에 있지 않다. 덩치에 걸맞게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진정으로 기여하는 나라인지 행동으로 보여줄 때 답이 나온다. 강압과 통제, 패권과 아집을 버리고 개방된 보편 국가로 나아가는지, 이웃 나라들을 호혜적이고 대등한 파트너로 인정하는지가 관건인 것이다.

 그동안 중국이 보여준 행보는 이중적이었다. ‘세계의 공장’으로 지구촌 경제에 핵심 동력을 제공했고, 빈곤에 시달리는 제3세계 국가들에 아낌없는 지원을 해준 나라가 중국이다. 그러나 국력이 급팽창하면서 패권주의로 흐른다는 의구심도 급증했다. 베트남·필리핀의 반발을 무시하고 남중국해에서 세력을 확장했고,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서 일본과 군사충돌도 불사하며 대치하고 있다. 중국은 이번 행사에서 장병 1만2000명을 동원해 성대한 열병식을 열기로 하고 박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정상들을 대거 초청하는 공을 들였다. 그 의도는 충분히 짐작된다. 종전 70년 만에 세계 2위의 대국에 올라선 역사를 부각시켜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것일 게다. 중국의 성장은 한국을 비롯한 각국 경제에도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된 지 오래다. 그런 점에서 중국이 오욕의 역사를 딛고 국민적 에너지를 모으는 데 전승절 행사가 촉매가 되기 바란다.

 하지만 이 행사가 주변에 중국의 위력을 과시하고 패권을 강요하는 이벤트가 돼선 곤란하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정상들은 미국까지 타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 둥펑(東風) 등 첨단무기를 앞세운 열병식에 거부감을 느끼고 중국의 초청에 불응했다. 이런 생각은 한국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도 정도만 다를 뿐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다.

 그런 만큼 중국은 대립과 대결 대신 대화와 협력에 전승절의 방점을 둬야 한다. 미국 등 서방과 각을 세울 게 아니라 그들과 공존공영을 추구하는 신세계질서를 제안하는 무대로 전승절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제국주의 일본에 승리한 역사를 기념하는 한편으로 동아시아의 핵심 파트너인 일본과 관계를 개선해 지역 평화를 증진하겠다는 의지도 함께 보여야 한다.

 특히 한반도 문제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 북한 핵과 동북아 긴장 해소에 성과를 내는 것이야말로 전승절에 대한 국제사회의 의구심을 해소시켜줄 최고의 카드이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전승절 행사 직후 열릴 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분명한 어조로 북한의 비핵화를 촉구하고, 한·중·일 정상회담의 연내 서울 개최에 합의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