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 친위대 만들겠다는 건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노무현 대통령이 13일 "정부 각 부처에 공식.비공식 개혁주체조직을 만들겠다"고 한 발언은 국정책임자로서는 대단히 부적절하다. 아직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공직사회에 이런 조직이 생긴다면 혼란과 분열은 불을 보듯 뻔하다. 더구나 대통령이 인사조치 가능성까지 비췄으니 공무원들로서는 압박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는 조직들이 정부 부처 내에 생기기 시작하면 장.차관들의 말이 먹힐 리 없고, 서로 의심하고 감시하는 풍조가 생기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렇지 않아도 새 정부 들어 이념과 노선에 따른 사회의 갈등과 분열이 위험수위를 넘었다는 지적이 많은데, 이제 공직사회마저 우군(友軍)과 적군(敵軍)으로 편가르기를 하겠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대통령이 공무원들에게 "내게 투자하라"며 줄서기를 요구하고 있으니 국가를 어디로 끌고가겠다는 건지 안타깝다.

비록 盧대통령이 "'하나회'같은 비선조직이 아니라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로 가는, 희망의 시대로 가는 개혁세력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친위대'를 만들겠다는 취지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공무원 조직과는 별개로 대통령과 '직접 대화하거나 e-메일을 주고받는' 조직이 생겨난다면 그 조직이 어떤 성격을 띨 것인지는 분명하기 때문이다. 盧대통령은 대선 때의 '노사모'같은 펜클럽을 공직사회에 만들겠다는 얘기로 들리기도 한다.

공무원 조직은 특정 대통령의 사조직이 아니다. 우리는 정치적.정권적 이해관계를 떠난 독립적 행정부 조직을 위해 직업공무원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 직업공무원은 특정 정권에만 봉사할 수 없는 것이다.

대통령의 철학을 실천하려면 정상적인 계통과 조직을 통해야지 비선조직이나 별동대를 둔다면 그것은 정당이며 정파다. 대통령의 위치를 다시 한번 돌아보기 바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