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준의 진밭골 그림편지] 6월 14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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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작년 이맘 때 이 깊은 산골에도 라디오를 타고 "오, 필승 코리아!"가 들렸습니다. 한국축구를 응원하는 인파가 전국 거리를 메운다는 소식에 더는 참지 못하고 뛰쳐나갔습니다. 상경 길에 오른 나는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감회에 젖었습니다.

8.15 해방 이후 이런 감격이 있었을까요. 과거의 광장은 늘 우울을 달래고 통한을 쏟아내는 갈등과 대립과 동원의 상징이었습니다.

이제 비로소 시민의, 시민에 의한 평화의 광장문화가 탄생하는 순간 같았습니다. 역사에 비약이 있겠습니까. 전쟁과 독재와 분단의 대립적 역사가 시민 스스로 만드는 평화의 광장문화를 이토록 오래도록 미루어 왔던 것입니다. 모이면 고스톱이나 치고 먹고 마시는 술판뿐인 놀이문화의 상실시대로 수십년 견뎌왔습니다.

마침내 함께 놀 줄 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월드컵 축제, 붉은 악마는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일상 속의 작은 놀이, 마당놀이가 결여된 광장놀이는 시민을 객꾼으로 전락시킬 위험도 있게 마련입니다. 잘 논다는 것은 신명이 나서 스스로 생생하는 이치(生生之理), 곧 태극이니까요.

김봉준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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