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하마 도시 재생, 빌딩 색깔까지 시민에게 물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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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일본 요코하마는 ‘미나토미라이21’을 통해 낙후된 항만 도시에서 역사성 있는 시설과 현대적 건물이 공존하는 도시로 변모했다. [사진 서울시, 사진작가 히데오 모리]
이 사업을 주도한 구니요시 나오유키는 “지역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 서울시, 사진작가 히데오 모리]

“빌딩 색과 높이까지 일일이 주민들과 상의해 기준을 정했습니다.”

 구니요시 나오유키(70) 전 일본 요코하마시 도시디자인실장은 지난 22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1971년부터 40년간 도시디자인 업무만 담당했던 그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지금의 요코하마 도시경관을 만들어낸 설계자다. 1981년 본격적으로 시작된 ‘미나토미라이(港未來·미래항구)21’ 프로젝트를 통해 노후 항만과 낙후된 조선소, 폐창고가 전부였던 요코하마를 역사적 유물과 현대적 마천루가 공존하는 ‘걷기 좋은 도시’로 탈바꿈시켰다.

 구니요시는 “도시디자인에는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주민 참여의 중요성은 그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난 것이다. 그는 도쿄처럼 기존 건물들을 전부 허무는 재개발 방식으로 요코하마를 개발하려다 큰 반발에 부딪혔다. 지역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주민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일본 최초의 개항도시’라는 정체성과 보행 친화적 환경을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구니요시는 “지역에 실제로 살고 활동해온 이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도시를 바꿔나가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행정공무원의 일방적 주도로 도시를 개발하면 주민들이 불편할 수도 있고, 이용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단계부터 지역민들을 참여시켜야 합니다.”

 구니요시는 주민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선 작은 성공사례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미나토미라이21’은 요코하마시 전체의 외관을 바꾼 거대 프로젝트이지만 처음부터 거대했던 것은 아니다. 요코하마 도심 간나이 지역 주민들과 어떻게 도시를 정비할 것인가에 대한 아이디어를 찾는 것부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소규모 광장을 만드는 성과를 냈고, 여기에 만족감을 느낀 주민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계속 제안했다는 얘기다. 그는 “주민들과 시가 ‘미나토미라이21 마을 만들기 협정’을 맺는 데까지 이어졌다”며 “빌딩 색을 정할 때에도 디자인팀이 색채 시뮬레이션 결과를 주민들에게 보여주고 선호도를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구니요시 나오유키(왼쪽)가 22일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보행도시의 조건 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

 서울은 보행도시로서 어떨까. 그는 대중교통이 잘 발달돼 있다는 측면에서 매력적인 보행도시의 조건을 갖췄다고 했다. 하지만 보행로와 그 주변 사이의 연결 고리가 미흡하다는 점은 문제라고 평가했다. “청계천은 누가 봐도 가고 싶은 거리입니다. 하지만 다른 보행로들과 잘 연결돼 있지 않아요. 광화문광장도 있지만 동떨어져 있지요. 기존에 개발된 보행공간들을 효율적으로 연결하면 시민들이 더 자연스럽게 걸어다닐 수 있을 겁니다.”

 구니요시는 박원순 서울시장을 만나 서울시가 2017년을 목표로 추진 중인 ‘서울역고가 공원화’ 계획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두 사람은 박 시장이 2008년 요코하마를 방문했을 때 만난 인연이 있다. 구니요시는 “역사성이 있는 시설물을 보존해 지역의 기억을 살리면서 현대적 역할을 다시 부여하는 프로젝트 자체는 매력적”이라면서도 “주민들의 의견을 많이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처음엔 주민들이 당연히 동의할 것으로 생각하고 성급하게 추진해 반발이 많았다”며 “앞으로 주민 참여를 더 적극적으로 늘려나갈 것”이라고 답했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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