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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스푼 5] 수제버거 1위는 화려하지 않아도 자꾸 생각나는 소박한 그 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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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철판에서 구운 쇠고기 패티와 치즈, 볶은 양파로만 맛을 낸 서래마을 ‘브루클린더버거조인트’의 치즈버거. 기름기가 많지 않아 끝맛이 깔끔하다.

江南通新이 ‘레드스푼 5’를 선정합니다. 레드스푼은 江南通新이 뽑은 맛집을 뜻하는 새 이름입니다. 전문가 추천을 받아 해당 품목의 맛집 10곳을 선정한 후 독자 투표와 전문가 투표 점수를 합산해 1~5위를 매겼습니다. 이번 회는 수제버거입니다.

버거라는 말보다 햄버거라는 명칭이 더 익숙하던 때가 있었죠. 정크푸드나 패스트푸드의 상징처럼 여겨졌고요. 물론 아직도 대기업이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매장의 버거를 영양식이라고 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수제버거 가게들은 다릅니다. 당일 구운 빵, 육즙 풍부한 쇠고기 패티, 블루 치즈나 신선한 루꼴라…. 버거의 조합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풍성해졌습니다. 버거와 함께 마시는 음료도 콜라나 밀크셰이크 정도에서 하우스 맥주, 칵테일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수제버거 대표 맛집 5곳을 전문가와 독자가 함께 선정했습니다.

[브루클린더버거조인트]
빵·패티 맛의 균형까지 생각했다

"버거 속재료와 빵의 비율이 완벽하다. 화려한 장식이나 기교는 없지만 담백하고 맛있어 자꾸 생각난다.” (독자 김지혜)

 서래마을 골목을 걷다 보면 미국 브루클린을 연상케 하는 활기찬 분위기의 식당 하나가 눈길을 끈다. 노천 테이블에 앉은 사람, 전봇대에 기대 버거를 먹는 사람, 길가에 앉아 먹는 사람 등 편안한 자세로 버거를 먹는 모습이 보인다. 브루클린 더 버거 조인트는 음식점이 자주 바뀌는 서래마을에서 2011년 이후 꾸준히 사랑받은 ‘동네 맛집’이다. 박현 대표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자주 가던 압구정동 한양쇼핑센터 ‘아메리카나’에서 햄버거와 사랑에 빠졌다. 맛있고 신선한 버거를 만들고 싶어 이 가게를 냈다. 빵은 ‘화이트 번’(둥그렇게 부푼 버거 전용 빵)을 쓴다. 빵이 너무 맛있으면 버거의 균형이 깨진다는 게 박 대표의 생각이다. 깨를 살짝 뿌린 빵은 끝맛이 고소하다. 빵 사이에 끼우는 패티는 쇠고기 목심·양지·갈비를 갈아 철판에 구워 만든다. 패티를 만들 땐 살코기와 지방의 비율을 8대 2로 한다. 그래야 씹는 맛과 고소한 맛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대표 메뉴는 치즈버거다. 빵과 패티, 구운 양파와 치즈만 넣어 맛이 깔끔하다.  

○ 대표 메뉴 : 더치즈버거(7500원), 브루클린 웍스(9500원), 크림버거(9500원)
○ 운영 시간: 오전 11시30분~오후 9시30분(명절 휴무)
○ 전화번호: 02-533-7180
○ 주소: 서초구 반포동 551-32
○ 주차: 불가

[파이어벨]
버터 듬뿍 넣은 빵 … 매운 버거도

“재료들이 잘 어우러져 먹고 나면 기분 좋은 포만감이 든다. 매운맛 버거가 있다는 점이 기발하다.” (독자 이효순)

 조용하던 대치동 도성초등학교 사거리 뒷골목이 붐비기 시작한 건 임용재·김태훈 공동대표가 파이어벨을 오픈한 이후다. 화재 경보를 뜻하는 가게 이름처럼 내부를 소방서 분위기로 꾸몄다. 곳곳에 소방 물품과 관련 표지판을 설치했고 벽과 바닥은 흰색과 빨간색으로 포인트를 줬다. 파이어벨에는 외국인 손님이 많다. 한국 수제버거 가게를 소개하는 페이스북 ‘버거 러버 서울’에 등장한 이후의 변화다. 매주 새로운 외국인 친구를 데려오는 재미교포 폴을 포함해 재밌는 단골이 많이 생겼다. 맛의 비결은 버터를 듬뿍 넣어 만든 빵 ‘버터롤 번’이다. 담백한 맛이지만 버터 특유의 부드러운 풍미가 있다. 패티는 목심을 포함한 세 가지 부위의 쇠고기를 섞어 만든다. 소금과 후추 외에 별다른 간은 하지 않는다. 대표 메뉴는 멕시코 하바네로 고추 소스를 넣은 ‘콜911버거’. 구급차를 부를 정도로 맵다는 뜻이지만, 매운 정도를 조절할 수 있다. 마카로니와 치즈를 섞은 음식인 ‘맥앤치즈’를 듬뿍 넣은 ‘맥버거’도 인기다.

○ 대표 메뉴: 콜911버거(8500원), 맥버거(7500원)
○ 운영 시간: 오전 11시~오후 9시30분(월요일 휴무)
○ 전화번호: 02-6489-0041
○ 주소: 강남구 대치동 908-17
○ 주차: 전용 주차장에 3~4대 가능

[길버트버거앤프라이즈]
입안 가득 꽃등심 패티의 고소함

“미국에서 먹던 정통 버거의 맛을 그대로 재현했다.” (독자 조영록)

 여성 고객이 많은 가로수길 여느 식당과 달리 남성 고객이 더 많은 곳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아기자기하고 로맨틱한 분위기 대신 나무 바닥과 거친 원목 테이블이 있는 남성적 느낌의 매장이 보인다. 버거도 장식적인 요소를 없애고 재료에만 충실하게 집중했다. 상단과 옆면에 통깨를 잔뜩 뿌린 빵은 씹을수록 쫄깃하고 고소하다. 빵이 두툼하고 폭신한 편이라 속재료를 가득 채워 넣어도 흘러내리지 않는다. 패티는 쇠고기 최고급 부위인 꽃등심을 갈아 만든다. 지방 함량이 높은 부위라 씹으면 지방질이 부드럽게 녹으며 입안 가득 고소함이 가득 퍼진다. 대표메뉴는 ‘길버트버거’다. 치즈·베이컨·채소를 듬뿍 넣어 맛이 담백하다. 버거에 밀크 셰이크를 곁들이는 미국인들의 입맛을 재현하기 위해 셰이크 메뉴도 고루 갖췄다.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오레오 쿠키를 섞은 ‘오래오래’, 아이스크림에 누텔라 초콜릿 크림과 견과류를 넣은 ‘노 넛츠, 노 글로리’ 등의 달콤한 셰이크가 버거 맛을 더한다.

○ 대표 메뉴: 길버트버거(1만500원), 마리오버거(1만2000원), 로켓버거(1만2000원)
○ 운영 시간: 오전 11시30분~오후 9시30분(명절 휴무)
○ 전화번호: 02-546-5453
○ 주소: 강남구 신사동 545-3
○ 주차: 발레파킹(3000원)

[버거비]
그릴에서 구워 불맛 깊어진 패티

“강한 불맛과 스모키한 풍미가 밴 패티가 예술이다” (독자 김수희)

 활기차고 캐주얼한 분위기의 서교동 버거비는 젊은 손님으로 붐빈다. 버거와 함께 파는 하우스 맥주를 곁들이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여느 버거 레스토랑과 달리 이곳은 ‘개스트로 펍’(술과 음식을 함께 즐기는 캐주얼 식당)을 표방한다. 널찍한 테이블과 벽난로가 있는 편안한 공간에서 바비큐나 스테이크도 먹을 수 있다. 버거비는 대기업 외식업체를 다니던 최석준 대표가 2009년 오픈했다. 빵과 패티가 맛있다고 소문이 나며 서교동 홍대 앞 수제버거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았다. 빵에 들어가는 버터의 함량이 20%가 넘어 부드럽고 폭신하다. 패티는 쇠고기 목심으로만 만드는데 패티만 주문하는 손님이 있을 정도로 소문난 맛이다. 넓은 철판 대신 석쇠 형태의 그릴에서 조리한다. 굽는 동안 불맛이 스며들어 풍미가 깊고 풍부하다. 대표 메뉴는 ‘얼티밋 B.B 버거’. 아이올리 소스로 맛을 내는 기본기에 충실한 버거다. ‘미소버거’는 최 대표가 개발한 된장 향을 가미한 미소 버터를 빵에 바른 버거다.

○ 대표 메뉴: 고르곤졸라버거(9000원), 비비큐 나초(1만2000원), 칠리치즈 프라이(7500원)
○ 운영 시간: 오전 11시30분~오후 10시(명절 휴무)
○ 전화번호: 070-8870-9220
○ 주소: 마포구 서교동 362-7 2층
○ 주차: 불가

[오케이버거]
루꼴라·블루치즈 등 깐깐 속재료

“한 끼 식사로 든든하고 재료와 소스가 담백해 질리지 않는다.” (독자 오혜연)

 점심시간이면 근처 직장인들이 줄 서서 찾는 맛집 ‘오케이버거’. 광화문과 여의도에서 레스토랑 ‘오키친’을 운영하는 오정미, 스스무 요나구니 부부의 두 번째 레스토랑이다. 은은한 조명을 설치하고 화려한 술병을 비치한 바가 있어 데이트하기 좋은 분위기를 낸다. 오정미 대표는 “뉴욕에서 수제버거는 고급음식이에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재료가 다양해서 잘 만들자면 한없이 까다롭죠.” 그는 농장에서 수확한 루꼴라, 블루치즈, 아삭한 양배추 피클 등으로 버거를 만든다. “처음엔 버거에 무슨 정성을 이렇게 많이 들이느냐고 핀잔 주던 사람들이 이젠 단골이 됐다”고 한다. 빵은 발효기·반죽기·오븐을 갖춘 매장에서 매일 직접 만든다. 버터 대신 올리브오일을 넣어 만들기 때문에 느끼하지 않다. 쇠고기 패티는 소금과 후추로만 간을 한다. 래어·미디엄·웰던 등 패티의 굽기 정도를 주문할 수 있다. 기본 메뉴인 ‘오케이버거’는 마요네즈, 양파 슬라이스, 토마토, 체다 슬라이스 치즈, 양배추 피클을 넣어 만든다.

○ 대표 메뉴: 오케이버거(8000원), 김치버거(9000원)
○ 운영 시간: 오전 11시~오후 10시(평일), 오후 12시~오후 9시(주말), (명절 휴무)
○ 전화번호: 02-761-6420
○ 주소: 영등포구 여의도동 23-8 동양증권 빌딩 지하1층
○ 주차: 주중 빌딩 내 주차 가능

독일 ‘하크 스테이크’에서 유래
79년 롯데리아 88년 맥도날드 국내 상륙

브루클린더버거조인트의 박현 대표는 버거를 먹으며 자란 자신이 ‘햄버거 1세대’라고 했다. 박 대표의 기억 속에 있는 최초의 햄버거 가게는 ‘롯데리아’였다. 말끝마다 “생큐”를 붙이는 유니폼 입은 예쁜 직원이 전용 쇼케이스(유리 진열장)에서 버거를 꺼내줬다. 1984년부터는 한양쇼핑센터(현 갤러리아 백화점)에 있는 ‘아메리카나’의 단골이 됐다. 당시 아메리카나는 미국 햄버거 브랜드 ‘빅보이’와 제휴해 충무로에 1호점을 내면서 롯데리아를 잇는 외식업계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박 대표는 “당시엔 아메리카나로 친구들을 불러 생일 파티를 하는 걸 자랑으로 여기는 분위기였다”고 회상했다.

 당시 아메리카나를 시작한 박주원 부장은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이탈리아 레스토랑이 없던 당시만 해도 패스트푸드 햄버거 가게는 고급 외식 장소였다”고 말했다. 당시엔 햄버거, 감자튀김 같은 서양식 음식을 먹는 게 최신 유행이었고, 버거는 고급 요리 대접을 받았다.

 88년 압구정동에 맥도날드 1호점이 들어왔고, 이어 버거킹·파파이스 같은 글로벌 패스트푸드 체인점이 잇달아 상륙했다. 이제 버거는 더 이상 귀한 음식이 아니었다. 높은 열량의 음식이라는 점, 오래 사용한 기름에 튀기고, 만들어진 음식을 빨리 내준다는 것 때문에 ‘정크푸드’로 이미지가 추락했다. 그랜드하얏트호텔 ‘더 델리’이나 W그랜드워커힐 ‘키친’에서 파는 고급 버거는 꾸준히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햄버거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는 오랫동안 변하지 않았다. 좋은 재료로 만든 수제버거 가게가 처음 서울에 등장한 건 2000년대 후반이다.

 버거의 유래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다. 공통점은 독일 함부르크에서 시작된 음식이라는 것이다. 레드스푼 5에 선정된 버거 레스토랑 대표들은 모두 “햄버거가 빵에 고기를 끼워 먹는 음식인 ‘하크 스테이크’(Hac Steak)를 미국으로 이주한 독일 이민자들이 만들어 먹으며 햄버거가 됐다”고 말했다. 햄버거라는 명칭은 21년 미국 뉴저지에 문을 연 식당 ‘화이트 캐슬’이 처음 썼다. 이어 45년 시카고에서 맥도날드, 53년 플로리다에서 ‘인스타버거킹’(지금의 버거킹)이 처음 문을 열었다. 20년간 뉴욕에 살면서 현지 수제버거를 다양하게 맛본 오케이버거의 오정미 대표는 “미국에서 정크푸드가 고급 수제버거로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한 건 90년대 초반”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외식 기업에서 ‘미다스의 손’이라고 불리는 대니 메이어의 ‘쉐이크셱’이 등장하며 수제버거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미국식 버거 레스토랑은 크게 조인트(Joint)와 개스트로 펍(Gastro Pub) 두 가지로 나뉜다. 최석준 버거비 대표는 “조인트는 분식집 같은 가볍고 캐주얼한 분위기이고, 개스트로 펍은 정찬에 가까운 공들인 버거를 만드는 곳”이라고 말했다. 개스트로 펍의 수제버거는 나이프와 포크를 사용해 메인 요리로 먹고, 맥주나 칵테일을 함께 곁들인다. 손으로 잡고 입으로 베어 먹는 것보다 더 격식있는 분위기다.

 레드스푼 1위부터 5위를 차지한 수제버거 맛집 모두 대표의 공통적인 바람은 그들이 미국에서 맛본 맛있는 수제버거의 맛을 제대로 구현하고 싶다는 것이다. 잘 만든 수제버거는 한 끼 식사로 훌륭한 영양 잡힌 식단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현 대표는 미국 전역의 버거 레스토랑을 100곳 넘게 다니면서 수제버거와 패스트푸드 햄버거의 차이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수제버거는 주문을 받은 후 빵을 굽고 패티도 만들지만 패스트푸드 햄버거는 모든 재료를 미리 만들어 두기 때문에 신선도가 떨어지고 고기의 질에서도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파이어벨’을 운영하는 임용재 대표는 맛있는 버거의 조건으로 빵, 패티, 소스의 삼박자가 잘 맞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빵은 모든 재료를 지탱하고 자극적인 속재료 맛을 완화해 주기 때문에 신중하게 골라야 한다.

 미국에는 ‘인앤아웃’ ‘파이브가이즈’ ‘쉐이크셱’ 등 인기 있는 버거 브랜드가 여럿 있다. 최근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인기인 브랜드는 ‘4505버거’인데 이곳 버거의 빵은 반죽에 양파를 갈아 넣고 치대지 않아 푹신하게 만든다.

 패티는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갈아서 만든다. 오래 보관하면 신선도와 맛이 떨어진다. 패티는 보통 ‘그리들’(Griddle)이라고 부르는 납작한 철판에서 굽는다. 레드스푼 5 맛집 중 버거비는 가스불로 작동하는 그릴을 사용하는데 석쇠 위에 패티를 살짝 구워 육즙이 빠져나가지 않게 하고 훈연 향을 입힌다.

글=이영지 기자 lee.youngji@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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