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수 '남북경협 일지'] "5억弗은 현대 經協과 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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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2000년 6월 대북 송금 전 가진 북측과의 접촉에서 경협사업에 대해서는 '아이디어 수준'의 의견 교환만 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는 현대와 북측이 사업 대가로 돈을 보낼 만큼 합의된 게 없었다는 얘기다. 특히 현대는 대북 송금이 있기 전 한달 동안은 북측과 공식적인 접촉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김대중 정부의 핵심 관련 인사들이 밝힌 "대북 송금은 7대 경협사업에 대한 합의 대가로 5억달러를 송금했다"는 주장을 뒤집을 수 있는 내용이다.

현대아산이 1989년 대북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작성한 대외비 문서인 '남북 경협 사업일지'를 특검에 제출함으로써 제기된 의문이다.

사업일지에는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에서 4천억원을 대출받아 국정원 계좌와 현대건설 계좌를 통해 송금한 내용이 모두 빠져 있다.

이와 관련, 현대의 한 관계자는 "비록 현대상선과 현대건설을 통해 돈이 갔더라도 현대아산이 북한과 공식 창구이기 때문에 이 같은 내용이 빠진 것은 이 돈이 현대의 사업과 무관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사업일지에는 대북사업을 총괄하는 현대아산의 정몽헌 회장과 김윤규 사장의 일거수 일투족이 빠짐없이 기록돼 있다.

현대와 북한 아태위원회 간의 대북창구 일원화 차원에서 98년부터 현재까지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을 대리인으로 공식 임명했음도 기록돼 있다. 최근 특검이 정몽헌 회장 대신 굳이 김윤규 사장을 대북 송금 사건 주범으로 기소한 것도 이와 관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송금 직전까지 합의된 게 없어=현대의 사업일지를 보면 2000년 대북 송금을 하기 직전 현대와 아태위원회 간의 접촉은 4월 20일뿐이었다. 현대와 아태위원회의 '25차 실무대표 북경 방문'으로 기록돼 있다. 현대에서는 김윤규 사장과 윤만준 전무, 북측에서는 아태위원회의 강종훈 서기장과 황철 참사가 참석한 것으로 돼 있다.

이 때 협의한 내용을 보면 '금강산 관광사업 및 기타 협력사업 협의'라고 기록돼 있다. 즉 ▶금강산 관광 사업 관련▶통천공단▶공항.스키장.골프장 등을 계속 협의했다.

이에 앞서 베이징(北京)에서 이뤄진 현대의 23, 24차 실무대표 협상에서도 다양한 남북 협력사업 아이디어를 서로 교환한 것으로만 기록돼 있다. ▶제3국 건설 공동 진출▶인터넷 통신사업▶양어.양돈사업▶서해안 공단사업▶석재사업 등 10여건에 대한 논의를 한 것이다.

최소한 당시만 해도 현대가 북한에 뭉칫돈을 보낼 만한 뚜렷한 명분이 없음을 보여 주고 있는 대목이다. 다만 일지에는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지기 직전인 2000년 5월 30일 정상적으로 금강산 관광사업대가 18차분인 1천2백만달러(누계 2억5천8백만달러)를 보냈다고 적혀 있다.

한편 당시 정몽헌 회장과 김윤규 사장이 현대그룹 차원에서 남북 경협 논의와 관련한 특별한 움직임이 없었음을 기록해 놓고 있다.

정몽헌 회장의 경우 공식적으로는 남북 정상회담 직전 북한의 금강산에 있는 고성항 부두 준공식에 참여한 것 외에는 다른 행보를 하지 않은 것으로 적혀 있다.

◆전화통보 내용까지 꼼꼼히 기록=일지에는 현대의 대북사업 전모가 모두 기록돼 있다. 정몽헌 회장과 김윤규 사장의 서신 내용 일부, 김정일 면담 기록, 전화통보 내용, 선물한 물건 등을 꼼꼼하게 적었다.

특히 98년 베이징에서 이뤄진 정몽헌 회장과 북한의 송호경 아태위 부위원장 간에 이뤄진 첫 면담 내용도 기록돼 있다. 이 자리에서 宋부위원장은 "남북 관계는 특수한 관계니 (현대가)수익성 차원을 떠나 도와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강병철.이수기 기자

*** '남북 경협 일지' 주요 내용

▶1989년 1월 24일 정주영 명예회장.김윤규 당시 현대아산 전무 등 첫 북한 방문

▶98년 2월 9일 남북 금강산 관광 실무대표단 1차 면담

▶2월 24일 정몽헌 회장.송호경 북한 아태평화위 부위원장 1차 면담

▶6월 16일 鄭명예회장 소 5백마리 싣고 판문점 통해 북한 방문

▶6월 22일 금강산 관광 개발 원칙 의정서 체결

▶10월 27일 鄭명예회장 소 5백1마리 싣고 3차 방북

▶11월 18일 현대 금강호 鄭명예회장 등 8백82명 싣고 첫 금강산 관광 출항

▶99년 1월 15일 금강산 관광사업 대가 1차분 2천5백만달러 송금

▶4월 30일 금강산 영농사업 합의서 체결

▶6월 21일 금강산 관광 중단

▶8월 5일 금강산 관광 재개

▶9월 4일 평양 실내종합체육관 건설 등 합의서 체결

▶9월 27일 鄭명예회장 방북, 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

▶2000년 5월 30일 금강산 관광사업 대가 18차분 1천2백만달러 송금(누계 2억5천8백만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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