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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ADHD 특징은 툭하면 버럭, 일 끝맺음 부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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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1호 22면


서울 마포구에 사는 워킹맘 이모(37)씨는 올 초 초등학생 딸을 데리고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평소 산만하고 주의력이 떨어지는 딸이 걱정돼서다. 상담 결과 딸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초기 증상이었다. 그런데 의사에게 ADHD 증상에 대해 듣다 보니 놀랄 만큼 자신의 요즘 상태와 딱 맞아 떨어졌다. 일에 집중이 안 되고 마감 시한이 있는 중요한 일을 미루기 일쑤였다. 돌이켜보니 회의나 미팅 중에 상대방의 말을 자르고 귀담아 듣지 않았다. 약속을 잊거나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도 잦았다. 별것 아닌 일에 벌컥 화부터 내기도 했다. 이런 일이 쌓이면서 직장상사와의 트러블도 많아졌다. 의사의 권유로 정식 검사를 받아보니 ‘성인 ADHD’였다. ADHD는 그동안 소아질환으로만 여겨졌다. 주로 아동기에 나타나는 일종의 정신장애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당수의 아이들이 ADHD를 겪는다. 미국 소아정신과학회 통계에 따르면 학령기 아동의 3~8%가 ADHD를 경험한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서울시와 서울대학교병원의 국내 역학조사 결과 유병률이 6~8%로 나타났다. 소아정신과 질환 중 유병률이 높은 편이다. 하지만 ADHD는 아동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신동원 교수는 “ADHD로 진단된 소아 중 60~80%는 청소년 때도 진행되고, 성인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35~65%나 된다”며 “전체 성인의 3~4%는 ADHD를 앓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대인 관계 망치고 일 능률 떨어뜨려 그런데 왜 ADHD가 아이들의 병으로 여겨졌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ADHD는 성인이 돼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라 12세 이전에 발병하는 질환이다. 어렸을 때 ADHD 소견을 보이거나 진단을 받았던 사람은 성인이 돼도 증상이 나타난다는 얘기다. 문제는 누구도 자신에게 ADHD가 있었는지조차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증상도 소아와는 약간 다르다. ADHD의 핵심 증상 유형은 과잉행동, 충동성, 부주의성(집중장애) 세 가지다. 성인에게는 과잉행동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충동성과 부주의성이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신동원 교수는 “어렸을 때는 과잉행동이 많은데 나이가 들면서 이런 증상은 사라지지만 일의 끝맺음을 잘 못하고 욱하는 경우가 많다”며 “늑장을 부리거나 무례한 것처럼 보여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천근아 교수는 “성인 ADHD 환자는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거나 꼼지락거리고, 잘 잊거나 잃어버리곤 한다”며 “일을 마무리하는 게 어려워 직장 상사나 동료와 트러블이 많아져 이직이 잦은 것도 특징”이라고 말했다. 환자 중에는 신호위반 딱지를 떼이는 경우도 의외로 많다. 신 교수는 “성인 ADHD 환자는 극도의 수면 부족으로 나타나는 증상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일 계속 벌이는 경향 ADHD 환자는 추진력이 강한 사람으로 보이기도 한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경향(Novelty Seeking)이 강해서다. 천 교수는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새로운 일을 자꾸 벌여 일의 질과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생전에 습작과 미완성 작품이 많았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정신건강의학 분야에서 성인 ADHD로 추정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ADHD 환자 중에는 최고경영자(CEO)나 전문직이 많은데 직업적 환경과 관련이 깊다. 고도로 집중이 필요한 환경에서 내재돼 있던 ADHD 성향이 표출되기 쉽다. 천 교수는 “환자 중에는 기업 CEO나 회장, 회계사 등이 많다”며 “멀티태스킹을 해야 하는 직업은 잠재된 ADHD가 잘 표출되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성인 ADHD가 무서운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진단·치료 없이 방치하면 합병증이 생긴다. 우울증·불안장애·알코올중독 등이 동반된다. 진단도 쉽지 않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조차 오진하기 쉽다. 무엇보다 환자 본인이 증세를 자각하지 못한다. 벌컥 화를 잘 내면서도 본인은 차분한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의료진 입장에서는 합병증에서 ADHD를 감별해 내는 것이 쉽지 않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직장동료 등 세 명 이상의 면담이 반드시 필요하다. 환자의 초·중·고 생활기록부나 학창 시절 선생님과의 상담이 진단에 참고가 되기도 한다.


메모 생활화 하고 약물치료 받아야 성인 ADHD도 치료는 가능하며 약물치료가 기본이다. 메칠페니데이트·아토목세틴·클로니딘 등 세 가지 약물이 주로 쓰인다. 메칠페니데이트와 아토목세틴은 식욕부진과 복통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클로니딘은 졸리거나 혈압이 약간 떨어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원래는 고혈압치료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메칠페니데이트와 아토목세틴은 ADHD 환자 중 체중감량을 원하는 환자에게, 클로니딘은 고혈압 가족력이 있으면 처방한다. 생활 처방도 도움이 된다. 잘 잊어버리는 증상은 메모를 생활화 하는 것으로 교정한다. 잊기 쉬운 스케줄을 다이어리나 스마트폰에 적어두는 식이다. 냉장고나 책상 등 자주 접하는 물건에 포스트잇으로 붙여 놓는 것도 필요하다. 메모를 확인하는 것마저 잊을 수 있어서다. 정리함을 활용하는 것도 좋다. 퇴근 후에는 주머니에 있는 소지품을 정리함에 넣어 놓고 출근할 때 챙기는 방법이다. 자기만의 규칙도 필요하다. 호주머니에 고무공을 갖고 다니면서 화나는 순간에 주무르는 식이다. 신 교수는 “ADHD 환자에게는 증상에 따라 생활습관을 교정하는 라이프 코치도 치료법으로 활용한다”고 말했다.


류장훈 기자 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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