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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군지뢰” “자작극” … 누굴 위한 괴담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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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유성운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유성운
사회부문 기자

‘목함지뢰일 확률은 2%… 아군의 발목지뢰일 확률 98%.’

 4일 경기도 파주 인근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과 관련해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익명으로 올라온 글의 제목이다. 작성자는 “1980년대 최전방 수색대에서 복무했다”는 예비역 병사였다.

 그는 “여름철 폭우 때마다 발생하던 전방 지역의 지뢰 휩쓸림 현상에 의한 통상적인 사고”라며 “(우리 군이 매설한) M-14 발목지뢰의 전형적인 피폭현상”이라고 주장했다. 해당 글이 게시된 시점은 지난 15일 0시44분이었다. 북한 국방위원회가 전날 정책국 담화를 통해 ‘남측의 모략극’이라고 주장하고 12시간 후 글을 올린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글은 괴담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사고 지점과 부상 부위 모두 괴담의 내용과는 동떨어져 있다. 양욱 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우리 군이 사용하는 M-14 지뢰는 목표 부위가 발목에 국한되나 북한의 목함지뢰는 이번에 보듯 하반신 전체를 다치게 한다”고 말했다. 양 위원은 “사고지점이 고지대라는 점도 폭우 때 발생하는 지뢰 휩쓸림 현상과 상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김기호 한국지뢰제거연구소장은 “우리 수색대원들이 자주 지나던 곳에 목함지뢰 3개가 나란히 묻혀 있었던 것으로 볼 때 북한군의 의도적인 매설”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전문가들의 과학적 설명보다 전직 병사의 가설에 더 호응하는 분위기다. 16일 오후 5시 현재 문제의 글에 대한 반응은 찬성 1015건, 반대 64건이었다. 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우리 군의 자작극’이란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북한은 오락가락하는 국방부의 해명에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을 지적했다” “미국 놈들이 ‘북한 소행으로 몰아가라’고 하고 그에 충실히 따르는 것 같다”는 주장들이다.

 과거 대형 사건·사고 때마다 이러한 괴담과 의혹 제기가 끊이지 않았다. 천안함 폭침 사건 때도 전직 부사관·장교, 선박 전문가 등이 인터넷을 통해 좌초설, 사고설 등을 주장했지만 사실로 판명된 건 하나도 없었다.

 정부 발표에 의문이 있을 때 문제점을 지적하고 공론화하는 건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일이다. 그런 절차를 거쳐 사실이 정리되고 국론이 통일되는 게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이다. 하지만 의문점 지적이나 의혹 제기도 어디까지나 팩트(사실)를 기초로 해야 한다. 다행인 것은 여야 정치권이 천안함 폭침 사건 때와 달리 북한의 사과를 촉구하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일방적인 주장에 휩쓸릴 경우 북한 의도대로 ‘남남(南南) 갈등’에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유성운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