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형 기자의 강남 이야기] 자신이 발의한 조례 반대한 구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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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회 무용론'. 구의원이 조례를 발의 안 하거나, 구청을 제대로 견제 안 해 그 기능이 유명무실하단 얘기입니다. 실제로 서울을 비롯한 자치구 의회를 폐지해야 한단 논쟁은 최근에도 여러 번 불거졌지요. 지난 12일자 江南通新 이슈클릭은 강남구의회의 지난 1년간 조례 발의가 부실하단 지적을 했습니다. 단순히 건수만 살펴봐도 서초·송파(17)의 절반 가량(8건)에 불과하죠. 다음은 취재 과정에서 만난 강남구의회 소속 의원들과의 대화입니다.

기자: 구의회 의원이 총 21명인데 발의한 조례가 8건이에요. 3명 중 1명만 발의했단 얘긴데…
A의원: 의원이 발의만 하는 게 아니에요. 구정 질문도 해야 하죠.
기자: 지난 1년간 그게 가장 바빴나요.
A의원: 구와 말이 잘 안 통했어요. 구청 사업을 물어보거나, 예산을 삭감할 때 고성이 오간 적도 있었죠. 상대적으로 시간을 많이 쏟아부었어요.
기자: 구정 질문은 1년에 100일 안팎인 본회의 등에 하는 거잖아요. 조례는 이 외 시간에 만들 수 있는데…
A의원:

사실 A 의원이 언급한 구정 질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구청의 행정과 사업 방향을 감시하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강남구를 비롯한 구의회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이들의 열띤 논의가 느껴지는 회의록도 찾아볼 수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행부만 견제하느라 의원 본연의 역할인 조례에 소홀했다는 건 설득력이 부족해 보입니다.

기자: 지난해 뽑히셨는데 발의하신 조례가 없어요. 혹시 지역구에 대해 어떤 문제의식이 있었는지….
B의원: ○○동에 아파트가 건립 중이라는데 "교통 체증을 유발시킨다"며 주민 반발이 심하네요.
기자: 구체적으로 몇 가구나 들어오는데 그런 문제가 생기는 건가요.
B의원: 자세히는 몰라요. 그런 얘기가 있다는데 자세한 건 저랑 가까운 지역구의 C의원에게 물어보세요.

지역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니 문제의식에서 비롯돼야 할 조례가 나오지 못 하는 건 당연한 결과겠지요. 이뿐 아닙니다. 강남구의회는 조례 발의를 10여 명이 무더기로 하는 것으로 유명하지요. 1~2명이 공동발의하는 서초·송파와는 대조됩니다. '조례 실적을 부풀린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인데요. 이와 관련된 D의원과의 대화입니다.

기자: 지난해 말에 E의원이 발의한 조례를 공동 발의하셨더라고요. 발의한 취지가 무엇이신지…
D의원: 조례를 직접 만든 건 아니고요. 내용이 좋아서 간단한 의견만 전달한 거예요.
기자: 조례를 만든 게 아니시라면 (발의가 아니라) 찬성만 하셨어도 됐을텐데…
D의원:

단체로 발의를 하는 건 조례 통과에 힘을 실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례 내용을 직접 만들거나, 내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발의자 명단에 이름만 올리는 건 실적에 급급하단 비판을 피하기 어렵지요. 한 구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F의원이 과거 다른 의원이 발의한 조례에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가 이 사실을 까맣게 잊고 나중에 반대를 했다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있었다는군요. 물론 구의원들도 할 말은 있습니다. "상위 법령과 겹치다보니 조례 만들기가 어렵다" "국회의원처럼 협조를 구할 보좌진이 없다"고 고충을 토로합니다. 강남구의회의 '불편한 현실', 어떻게 봐야할까요.

강남통신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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