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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캡’ 초고속 충전 10분 만에 전기차도 씽~씽~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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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0호 02면

수퍼커패시터의 한계로 지목됐던 낮은 에너지 저장력이 소재공학의 발달로 극복되면서 수퍼커패시터의 활용 범위도 재생에너지 저장 시스템(왼쪽), 전기자동차 등으로 넓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조연의 자리에 머물렀던 수퍼커패시터가 차세대 에너지 저장장치로 주목받고 있다. 수퍼커패시터는 한 번 쓰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충전해 여러 번 쓸 수 있는 2차전지다. 흔히 접하는 자동차와 스마트폰·노트북에 사용하는 배터리도 2차전지다.
 기존의 배터리는 충전시간이 오래 걸리고, 충전을 반복할수록 성능이 떨어진다. 반면에 수퍼커패시터는 충전 속도가 분초 단위로 빠르고, 같은 크기의 배터리보다 5~10배 높은 출력을 낸다. 충전을 반복해도 배터리 성능이 거의 떨어지지 않아 수명이 반영구적이다. 테슬라모터스 최고경영자(CEO)이자 솔라시티 회장인 일론 머스크가 “전기 운송 수단의 미래는 배터리가 아닌 수퍼커패시터에 달려 있다”고 말한 이유다. KAIST 신소재공학과 강정구 교수는 “배터리를 뛰어넘는 성능의 수퍼커패시터가 상용화하면 전기자동차 충전시간이 10분 이내로 단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차세대 에너지 저장 장치 상용화 눈앞

에너지 저장 표면적 늘려 용량 증대
수퍼커패시터가 기존 배터리보다 빠르게 충전하고 수명도 반영구적인 이유는 뭘까. 전기에너지를 저장하는 방법이 달라서다. 인하대 신소재공학과 김용선 교수는 “배터리는 전극물질 내부에 전하를 저장하지만 수퍼커패시터는 전극물질 표면에만 전하를 저장한다”고 말했다.
 교실을 예로 들어 보자. 복도를 따라 두 개의 교실(전극물질 내부)이 있다. 1반 교실(-극)은 지루한 수업이, 2반 교실(+극)에선 흥미진진한 수업이 진행된다. 학생들(전하)은 자연스럽게 2반으로 몰려간다. 전류가 흐르는 것이다. 이때 선생님이 나타나 학생들을 강제로 1반 교실로 다시 돌아가도록(충전)한다. 배터리의 충·방전 과정이다.
 수퍼커패시터는 학생들이 교실 안까지 들어가지 않고 창문(전극물질 표면)에 우르르 붙어 수업을 듣는 것과 같다. 교실 안까지 들어가지 않으므로 빠르게 이동(충·방전)할 수 있다. 문이나 책걸상(전지 수명)을 사용하지 않으니 시설이 닳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높은 출력을 내고, 전지의 수명이 반영구적인 이유다. 반면에 창가에는 많은 학생이 자리할 수 없다. 용량이 작은 것이 단점인 것이다.
 이런 탓에 수퍼커패시터는 아직까지 백업용·보조전원으로 활용된다. 수퍼커패시터는 저용량으로 급속 충전이 필요한 분야에, 리튬이온전지는 고용량이 요구되는 분야에 주로 쓰인다. 김용선 교수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에너지 저장 표면적을 늘리는 나노·다공성 소재를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핀은 2004년 영국 맨체스터대의 안드레 가임과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교수가 발견한 나노 소재다.
 탄소 원자가 벌집 모양으로 연결돼 단층을 이룬다. 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크기의 얇은 종이 모양이지만 실리콘 반도체보다 100배 이상 전기를 잘 흘려보내고, 강철보다 200배 더 단단하다. 에너지를 저장하는 표면적도 넓다. 휘거나 비틀어도 깨지지 않을 만큼 강하고 전기 전도성이 높아 플렉서블 디스플레이와 나노메모리·태양전지 등 적용 범위가 무궁무진하다.

신소재 그래핀 전도율 반도체의 100배
국내에서도 그래핀을 이용해 수퍼커패시터 성능을 높이는 기술을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그래핀 구조를 다양화해 초고속 충·방전 기능을 잃지 않으면서 에너지 저장밀도를 높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광전하이브리드연구센터 손정곤 박사 연구팀을 꼽을 수 있다. 그는 올 5월 그래핀 분말을 성게처럼 뾰족한 공 모양으로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단층 판 모양의 그래핀에 전기를 흘려보내면 그래핀끼리 달라붙어 표면적이 줄어든다. 이 때문에 이온이 달라붙는 면적이 줄어 전지의 성능이 떨어진다. 이에 비해 불규칙하게 돌기가 솟은 성게 모양의 그래핀은 표면적이 넓어 이온과 반응하는 면적이 늘어난다.
 이렇게 제조된 그래핀 공은 기존 그래핀에 비해 중량과 부피당 전기 저장 용량이 세 배 이상 높다. 이는 이론적으로 가능했던 그래핀의 전기 저장 용량에 근접한 수준이다. 충·방전 속도는 기존 배터리에 비해 100배 이상 빨랐다. 손정곤 박사는 “아직은 배터리보다 전기 저장 용량이 떨어지지만 기존 수퍼커패시터보다 용량을 크게 늘렸다”고 말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구조물리연구단은 올해 초 3차원 탄소나노튜브와 그래핀으로 이뤄진 수퍼커패시터를 만들었다. 탄소나노튜브를 그래핀 사이에 수직으로 배열해 이온이 출입하도록 기공을 만들고, 최대한 넓은 표면에 이온을 흡착하도록 3차원 구조를 설계했다. 이온의 이동이 원활하도록 경로를 제공하고 탄소나노튜브·그래핀 판을 골고루 분산해 표면적을 최대화해 이온을 흡착한다. IBS 나노구조물리연구단 이영희 단장은 “저장력을 유지하면서 장시간 사용할 수 있도록 전극 두께를 현재의 5배인 100㎛(마이크로미터·1㎛는 100만 분의 1m)로 키우는 기술을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NASA, 수퍼캡 활용 無정전 장치 추진
수퍼커패시터의 응용 분야는 넓다. 도요타자동차는 자동차 엔진에 수퍼커패시터를 장착해 연비를 10% 이상 높였다. 시동을 걸거나 높은 언덕을 오를 때 수퍼커패시터가 작동한다. 중국 광저우시는 지난해 6월 수퍼커패시터로 운행하는 트램을 공개했다. 한 번 충전으로 4㎞를 달릴 수 있다. 트램 한 대는 4량으로 최대 386명의 승객을 태우고 운행한다. 전문가들은 수퍼커패시터의 에너지 저장 밀도를 배터리만큼 높이면 미래 재생에너지와 전기자동차, 모바일기기의 핵심 동력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전기자동차와 신재생에너지 저장 시스템을 위한 중대형 전지, 웨어러블 전자기기에 안정적인 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글렌 연구센터는 수퍼커패시터로 무정전 전원장치(UPS·uninterruptible power supply)를 구축하는 데 나섰다. UPS는 사용할수록 수명이 짧아져 정기적으로 교체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었다. 강정구 교수는 “기존 배터리의 짧은 수명과 저출력을 해결하고 에너지 저장 밀도를 배터리 수준 이상으로 높이는 연구가 진행되는 만큼 수퍼커패시터는 앞으로 배터리를 대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일본은 우수한 소재 기술을 기반으로 정부 주도하에 수퍼커패시터를 산업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김기일 연구원은 “국내에서는 나노 소재 분야의 기술개발에 주력하지만 전극 재료와 전극 구조, 전해질 같은 핵심 소재는 여전히 수입에 의존한다”며 “가격경쟁력을 높이려면 소재를 국산화하는 정책도 뒤따라야 한다”고 제언했다.



수퍼커패시터 super capacitor
고출력 에너지 저장장치. 울트라커패시터로도 불린다. 기존 배터리에 비해 충전 속도가 빠르고 수명이 길다. 에너지 저장 용량이 적다는 단점 때문에 주로 기본 배터리와 함께 사용하거나 이를 보조하는 수준으로 이용해 왔다. 최근에는 그래핀, 나노 기술 같은 첨단 소재 공학이 발달하면서 전기자동차, 로봇, 신재생에너지 저장 등으로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이민영 기자 lee.m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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